이한우의 노자 강의

『도덕경 』 5천 자에 담긴 무위자연의 제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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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4/10/21
Pages/Weight/Size 152*225*40mm
ISBN 9791171178391
Categories 인문 > 독서/비평
Description
‘하지 않음’으로 모든 것을 이끄는 ‘무위의 리더십’을 말하다!
『도덕경』 5천 자를 제왕학 관점에서 해석한 노자 강의

총 5천 자로 된 짧은 책 『도덕경』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해석과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여전히 신비에 둘러싸여 있다. “모든 거짓과 인위적인 것에서 벗어나 자연과 합일을 이룬다”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가 사상을 담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이한우는 이 책 『이한우의 노자 강의』에서 『도덕경』으로 『도덕경』을 풀어내는 독법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도덕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제왕학을 주제로 삼았다고 강조하며, 제왕학 중에서도 군왕의 심술(心術)에 집중했다고 한다. 치술(治術)이 빈약한 제왕학 교과서라는 것이다. 『논어』 등 유학 사상과의 비교, 그리고 노자 사상의 영향을 받은 한비자, 여불위 등의 후대 저술 등을 살펴볼 때 『도덕경』의 핵심이 제왕학이라는 주장은 큰 설득력을 지닌다.

왕필(王弼) 해석을 기본으로 삼은 이 책은 크게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으로 나뉘며 『사기(史記)』와 『한서(漢書)』를 주로 인용했고, 이한우의 역주(譯註)를 덧붙여 이해를 높였다. “임금이 무위(無爲)하면 신하는 유위(有爲)하게 되고 그렇게 될 경우라야 백성은 자연(自然)스럽게 교화된다”라는 노자 제왕학의 구조와 원리를 입체적으로 규명하며, 노자 사상에 대한 해석학적 지평을 넓힌다.
Contents
들어가는 말
『도덕경』 5000자를 제왕학 관점에서 해석하다

도경

제1장 / 제2장 / 제3장 / 제4장 / 제5장 / 제6장 / 제7장 / 제8장 / 제9장 / 제10장 / 제11장 / 제12장 / 제13장 / 제14장 / 제15장 / 제16장 / 제17장 / 제18장 / 제19장 / 제20장 / 제21장 / 제22장 / 제23장 / 제24장 / 제25장 / 제26장 / 제27장 / 제28장 / 제29장 / 제30장 / 제31장 / 제32장 / 제33장 / 제34장 / 제35장 / 제36장 / 제37장

덕경

제38장 / 제39장 / 제40장 / 제41장 / 제42장 / 제43장 / 제44장 / 제45장 / 제46장 / 제47장 / 제48장 / 제49장 / 제50장 / 제51장 / 제52장 / 제53장 / 제54장 / 제55장 / 제56장 / 제57장 / 제58장 / 제59장 / 제60장 / 제61장 / 제62장 / 제63장 / 제64장 / 제65장 / 제66장 / 제67장 / 제68장 / 제69장 / 제70장 / 제71장 / 제72장 / 제73장 / 제74장 / 제75장 / 제76장 / 제77장 / 제78장 / 제79장 / 제80장 / 제81장
Author
이한우
1961년 부산 송도해수욕장 근처에서 태어나 여름만 되면 팬티만 입고 송도해수욕장을 오가던 개구장이였다. 중학교 때는 가방에 책 대신 야구 글러브를 넣고 다닐 정도로 야구에만 미쳐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영화 [친구]에 나오는 교사 못지않은 선생님들한테 자주 맞아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1981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해 데모하다 얻어맞는 여학생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겁이 많아서인지 결국 혁명가의 꿈을 접고 공부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1985년 대학원에 들어가 철학을 공부했다. 마르크스에 대한 미련이 컸지만 대학원 과정 때 우연히 접하게 된 하이데거에 매료되어 석사학위 논문으로 [마르틴 하이데거에 있어서 해석학의 문제]를 썼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1985년부터 번역을 시작해 첫 작품으로 《헤겔 이후의 역사철학》을 냈다. 그 후 지금까지 평균 1년에 한 권 정도 번역 작업을 해왔다. 심지어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번역병으로 근무할 때에는 네 권을 번역해 계급마다 한 권씩 번역한 셈이 됐다. 번역은 나의 운명을 바꿔놓기까지 했다. 1990년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찾아간 곳이 [중앙일보]의 《뉴스위크》였다. 그때 정식기자로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고 ‘번역하는 기자’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기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삶은 점점 그쪽으로 몰고갔다. 1991년 《월간중앙》에 김용옥의 《대화》를 비판한 것이 계기가 돼 [문화일보] 학술 담당기자로 자리를 옮겼다. ‘번역하는 기자’에서 ‘기사 쓰는 기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문화일보] 기자 생활 만 3년째 되던 1994년 12월에 [조선일보]의 제의를 받았다. [조선일보] 학술 출판 담당기자로 일하면서 한국 지식인 사회의 명암을 볼 수 있을 만큼 봤다. 2001년부터 1년 동안 독일 뮌헨에서 연수 생활을 하면서 촌티도 많이 벗었다. [조선일보] 국제부에서 일했고, 지금은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61년 부산 송도해수욕장 근처에서 태어나 여름만 되면 팬티만 입고 송도해수욕장을 오가던 개구장이였다. 중학교 때는 가방에 책 대신 야구 글러브를 넣고 다닐 정도로 야구에만 미쳐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영화 [친구]에 나오는 교사 못지않은 선생님들한테 자주 맞아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1981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해 데모하다 얻어맞는 여학생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겁이 많아서인지 결국 혁명가의 꿈을 접고 공부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1985년 대학원에 들어가 철학을 공부했다. 마르크스에 대한 미련이 컸지만 대학원 과정 때 우연히 접하게 된 하이데거에 매료되어 석사학위 논문으로 [마르틴 하이데거에 있어서 해석학의 문제]를 썼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1985년부터 번역을 시작해 첫 작품으로 《헤겔 이후의 역사철학》을 냈다. 그 후 지금까지 평균 1년에 한 권 정도 번역 작업을 해왔다. 심지어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번역병으로 근무할 때에는 네 권을 번역해 계급마다 한 권씩 번역한 셈이 됐다. 번역은 나의 운명을 바꿔놓기까지 했다. 1990년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찾아간 곳이 [중앙일보]의 《뉴스위크》였다. 그때 정식기자로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고 ‘번역하는 기자’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기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삶은 점점 그쪽으로 몰고갔다. 1991년 《월간중앙》에 김용옥의 《대화》를 비판한 것이 계기가 돼 [문화일보] 학술 담당기자로 자리를 옮겼다. ‘번역하는 기자’에서 ‘기사 쓰는 기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문화일보] 기자 생활 만 3년째 되던 1994년 12월에 [조선일보]의 제의를 받았다. [조선일보] 학술 출판 담당기자로 일하면서 한국 지식인 사회의 명암을 볼 수 있을 만큼 봤다. 2001년부터 1년 동안 독일 뮌헨에서 연수 생활을 하면서 촌티도 많이 벗었다. [조선일보] 국제부에서 일했고, 지금은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