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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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4/03/29
Pages/Weight/Size 135*210*20mm
ISBN 9791171175079
Categories 소설/시/희곡 > 고전문학
Description
국립중앙도서관 선정 고전 100선
국립중앙도서관 선정 청소년 권장 도서 50선
서울대학교 선정 동서 고전 200선

흔들리며 성장해 가는 젊은 영혼들을 위하여
헤르만 헤세가 들려주는 자전적 이야기

“그 누구도 여윈 소년의 얼굴에 나타난 어쩔 줄 모르는 미소 뒤에 좌절한 영혼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고,
물에 빠져서 겁에 질리고 절망한 채 주위를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 같았다.”

“왜 한스는 가장 예민하고 위험한 소년 시절에 날마다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 했을까? 왜 그에게서 토끼를 빼앗고,
의도적으로 친구들한테서 떼어 놓았으며, 왜 낚시와 느긋한 산책을 못 하게 하고, 그에게 공허하고 천박한 이상을 불어넣었을까?
지나치게 내몰린 망아지는 이제 길에 쓰러져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헤세의 대표작

20세기 독일의 대표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헤세의 대표작인 『수레바퀴 아래서Unterm Rad』가 아르테 고전문학 클래식 라이브러리 시리즈의 열한 번째로 출간되었다. 충남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이자 한국헤세학회 회장을 역임한 박광자의 번역으로 헤세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다.

헤세의 부모는 모두 인도에서 선교사로 활동했고, 헤세가 태어날 무렵에는 독일에서 종교서적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1877년에 독일 뷔르템베르크 주의 소도시 칼프에서 태어난 헤세는 라틴어학교를 졸업한 후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그다음 해에 학교를 무단이탈하는 사고를 내고 신학교를 나오게 되었다. 13세 때부터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헤세는 신학교를 나온 후 신경쇠약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서점과 공장 등에서 일했다. 그사이 시집과 산문집을 출간했지만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1904년에야 『페터 카멘친트Peter Camenzind』로 큰 성공을 거두고 1906년 자전적 소설인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한다.
Contents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해설
작가 연보
Author
헤르만 헤세,박광자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출간했다.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면서 문학적 지위도 확고해졌다. 같은 해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나 1923년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1906년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에는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데미안》과 《동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을 출간했다. 인도 여행을 통한 체험은 1922년 출간된 《싯다르타》에 투영되었으며,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다.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출간했다.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면서 문학적 지위도 확고해졌다. 같은 해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나 1923년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1906년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에는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데미안》과 《동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을 출간했다. 인도 여행을 통한 체험은 1922년 출간된 《싯다르타》에 투영되었으며,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