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중국 저장성 츠시현에서 태어났다. 은행가였던 아버지가 파산하면서 어려움을 겪다가 1929년 광화 대학 서양문학과에 입학해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 첫 단편소설 〈우리의 세계〉를 발표하며 류나어우, 스저춘, 다이왕수 등의 신감각파 작가들과 조우했고, 1932년부터 《남북극》, 《공동묘지》(1933), 《백금의 여체 조각상》(1934), 《성스러운 여자의 감정》(1935) 등 네 권의 소설집을 연달아 펴냈다. 무스잉은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 가난과 부가 뒤엉킨 근대화 도시 상하이의 이중성을, 그런 도시에서 어느 쪽에도 몸담지 못하는 상하이 사람들의 불안감을 폭스트롯 댄스 리듬에 맞춘 듯한 감각적인 문장으로 포착해내며 단숨에 신감각파 작가의 대표자로 발돋움했다. 1934년 대학 때부터 사귀던 상하이의 유명 댄서 추페이페이와 결혼했고, 항일 전쟁이 발발하자 홍콩으로 건너가 《성도일보》의 편집장을 지냈다. 이후 상하이로 돌아와 친일파 왕징웨이 정부의 기관지인 《국민신보》의 사장을 거쳐 《중화일보》의 문예 선전 업무를 주관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반대파의 협박을 받았고, 1940년 상하이에서 인력거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암살되었다.
1912년 중국 저장성 츠시현에서 태어났다. 은행가였던 아버지가 파산하면서 어려움을 겪다가 1929년 광화 대학 서양문학과에 입학해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 첫 단편소설 〈우리의 세계〉를 발표하며 류나어우, 스저춘, 다이왕수 등의 신감각파 작가들과 조우했고, 1932년부터 《남북극》, 《공동묘지》(1933), 《백금의 여체 조각상》(1934), 《성스러운 여자의 감정》(1935) 등 네 권의 소설집을 연달아 펴냈다. 무스잉은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 가난과 부가 뒤엉킨 근대화 도시 상하이의 이중성을, 그런 도시에서 어느 쪽에도 몸담지 못하는 상하이 사람들의 불안감을 폭스트롯 댄스 리듬에 맞춘 듯한 감각적인 문장으로 포착해내며 단숨에 신감각파 작가의 대표자로 발돋움했다. 1934년 대학 때부터 사귀던 상하이의 유명 댄서 추페이페이와 결혼했고, 항일 전쟁이 발발하자 홍콩으로 건너가 《성도일보》의 편집장을 지냈다. 이후 상하이로 돌아와 친일파 왕징웨이 정부의 기관지인 《국민신보》의 사장을 거쳐 《중화일보》의 문예 선전 업무를 주관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반대파의 협박을 받았고, 1940년 상하이에서 인력거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암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