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관찰

곤충학자이길 거부했던 자연주의자 장 앙리 파브르의 말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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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4/09/16
Pages/Weight/Size 140*210*18mm
ISBN 9791170872429
Categories 자연과학
Description
파브르가 있었기에 우리는
기적과 시로 가득 찬 세계를 보았다

위대한 관찰자 파브르, 생애 마지막 책에서
자연을 아끼는 모든 이들에게 초록색 시학(詩學)을 건네다

★이 책을 먼저 읽은 분들이 보낸 찬사★
“한 인간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래도록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위해 노력하고 투쟁한 기록” ─ 신혜우(미국 스미스소니언 환경연구센터)

“파브르의 책이 우리에게 자연을 사랑할 용기를 주었듯, 이 책은 파브르 본인이 관찰 대상이 되어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종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 이소영(식물세밀화가, 원예학 연구자)

이 책은 『파브르 식물기』와 『파브르 곤충기』로 널리 알려진 장 앙리 파브르의 말과 삶을 담은 평전이자 회고록이다. 인류가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연의 모습과, 그것을 드러낸 과학자가 인생에서 내린 선택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익히 알려진 바와 달리 곤충학자로 불리길 거부해온 ‘자연주의자’ 파브르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과 윤리는 오늘날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기후 변화와 기후 위기를 거쳐 기후 재난이 코앞까지 들이닥쳐온 지금, 우리의 세계관에는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나’와 ‘우리’를 삶의 기준으로 두던 시절에서 내가 아닌 ‘그들’과 ‘인류’, 나아가 전 생물종과 온 우주까지, 세계로 자신을 확장하는 이 태도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일 것이다. 겪어본 적 없는 세계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하는 첫 번째 행위는 파브르처럼 바라보는 것, 어떤 고정 관념도 떨쳐내고 현상에 직면해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찰스 다윈이 생명에 대한 이해를 근간부터 뒤흔든 자신의 역작 『종의 기원』에서 “아무나 흉내 내지 못할 관찰자”라 칭했던 바로 그 사람, 모든 삶을 바쳐 땅 위의 코스모스를 드러내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넓혀온 위대한 관찰자 파브르의 말과 삶을 통해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존재의 확장을 체험해보자.
Contents
서문ㆍ장 앙리 파브르
들어가는 말

1장 자연의 직감
2장 초등학교 교사
3장 코르시카
4장 아비뇽에서
5장 위대한 스승
6장 은신처
7장 자연의 해석
8장 본능의 기적
9장 진화 또는 “생물변이설”
10장 동물의 마음
11장 조화와 부조화
12장 자연의 이해
13장 동물 삶의 서사시
14장 평행 우주
15장 세리냥에서 보내는 말년
16장 황혼

미주
장 앙리 파브르 연보
부록 출처
Author
조르주 빅토르 르그로,김숲,장 앙리 파브르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의사. 의사인 미셸 빅토르 르그로와 마리 마르그리트 로랑스 캉칼롱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몽트리샤르의 의사로 활동했다. 1907년부터 1931년까지 몽트리샤르 하원의원을 지냈고 1914년부터 1924년까지, 1925년부터 1932년까지 루아르에셰르의 급진파 국회의원을 지냈다. 1907년 여름, 아내와 함께 파브르의 ‘아르마스’를 방문해 그의 제자가 된다. 1910년 4월 3일, 세리냥에서 파브르를 위한 기념회를 개최했다. 1년에 두 번 이상 아르마스를 방문해 파브르의 말년을 함께 보냈다.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의사. 의사인 미셸 빅토르 르그로와 마리 마르그리트 로랑스 캉칼롱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몽트리샤르의 의사로 활동했다. 1907년부터 1931년까지 몽트리샤르 하원의원을 지냈고 1914년부터 1924년까지, 1925년부터 1932년까지 루아르에셰르의 급진파 국회의원을 지냈다. 1907년 여름, 아내와 함께 파브르의 ‘아르마스’를 방문해 그의 제자가 된다. 1910년 4월 3일, 세리냥에서 파브르를 위한 기념회를 개최했다. 1년에 두 번 이상 아르마스를 방문해 파브르의 말년을 함께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