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2.74
SKU
9791170360018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Fri 05/17 - Thu 05/23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Tue 05/14 - Thu 05/16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17/12/09
Pages/Weight/Size 128*178*30mm
ISBN 9791170360018
Categories 국어 외국어 사전 > 러시아어
Description
러시아어로 한국 고전 읽기 시리즈
고전의 감동과 함께 독해 능력 키우기


「러시아어로 한국 고전 읽기 시리즈」 제2권. 2017년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윤동주 시인의 시와 산문 총 123편을 러시아어로 완역하여 실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와 2부에는 시의 창작 년도에 따라 각각 1934~1937년 사이의 시와 1938~1942년 사이의 시를 실었다. 3부에는 미완성, 삭제 시편을, 4부에는 산문을 실었다. 또한 시인 윤동주의 생애와 연보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의 러시아어 번역은 토르플 2급 수준의 학습자를 대상으로 한다.
Contents
역자 서문 Предисловие переводчика

제1부 1934~1937년 사이의 시 Глава 1. Стихи 1934-1937 годов
초한대 Одна свеча
삶과 죽음 Жизнь и смерть
내일은 없다 Нет завтрашнего дня
거리에서 На улице
공상 Воображение
꿈은 깨어지고 Сон рассеивается
남쪽 하늘 Южное небо
조개껍질 Ракушка
고향집 Родимый дом
병아리 Цыплята
오줌싸개 지도 Обмоченная карта
창구멍 Дырка в окошке
기왓장 내외 Супруги-черепицы
비둘기 Голуби
이별 Расставание
식권 Талоны на питание
모란봉에서 На Моранбоне
황혼 Сумерки
가슴 1 Душа (I)
종달새 Жаворонок
닭 1 Куры (I)
산상(山上) Вершина горы
오후의 구장(球場) Послеполуденный стадион
이런 날 В такой день
양지쪽 Солнечная сторона
산림 Лес
가슴 3 Душа (III)
곡간(谷間) Горная речка
빨래 Бельё
빗자루 Метла
햇비 Грибной дождик
비행기 Самолёт
가을밤 Осенняя ночь
굴뚝 Труба
무얼 먹구 사나 Чем питаются люди?
봄 1 Весна (I)
개 1 Пёс
편지 Письмо
버선본 Выкройки для носков
이불 Одеяло
사과 Яблоко
눈 Снег
닭 2 Куры (II)
겨울 Зима
호주머니 Карманы
황혼이 바다가 되어 Сумерки становятся морем
거짓부리 Врушка-чернушка
둘 다 Двое
반딧불 Светлячок
밤 Ночь
만돌이 Мандоль
나무 Деревья
달밤 Лунная ночь
풍경 Пейзаж
한난계 Термометр
그 여자 Та женщина
소낙비 Ливень
비애 Кручина
명상 Раздумье
비로봉 Пиробон
바다 Море
산협의 오후 Днём в долине
창 Окно
유언 Завещание

제2부 1938~1942년 사이의 시 Глава 2. Стихи 1938-1942 годов
새로운 길 Новая дорога
산울림 Эхо
비 오는 밤 Дождливая ночь
사랑의 전당 Храм любви
이적 Чудо
코스모스 Космея
슬픈 족속 Безотрадное племя
아우의 인상화(印象畵) Портрет младшего брата
고추밭 Поле красного перца
햇빛·바람 Солнечный свет и ветер
해바라기 얼굴 Лицо подсолнуха
애기의 새벽 Рассвет с ребёнком
귀뚜라미와 나와 Мы со сверчком
달같이 Словно луна
장미 병들어 Роза больна
투르게네프의 언덕 Тургеневская сопка
산골 물 Вода горной долины
자화상 Автопортрет
소년 Юноша
위로 Утешение
팔복(八福) Заповеди блаженства
병원 Больница
간판 없는 거리 Улица без вывесок
무서운 시간 Страшный час
눈오는 지도 Снежная карта
새벽이 올 때까지 До рассвета
십자가 Крест
눈 감고 간다 Вперёд с закрытыми глазами
태초의 아침 Утро Творения
또 태초의 아침 Снова утро Творения
못 자는 밤 Бессоные ночи
돌아와 보는 밤 Ночь возвращения
바람이 불어 Дует ветер
또 다른 고향 Другая родина
길 Дорога
별 헤는 밤 Ночь. Считаю звёзды
서시 Пролог
간 Печень
참회록 Исповедь
흰 그림자 Белая тень
흐르는 거리 Улица течёт
사랑스런 추억 Дорогие сердцу воспоминания
쉽게 씌어진 시 Легко написанные стихи
봄 2 Весна (II)

제3부 미완성, 삭제 시편 Глава 3. Неопубликованные и незавершённые стихи
창공 Синее небо
가슴 2 Душа (II)
참새 Воробьи
아침 Утро
할아버지 Дедушка
개 2 Собака (II)
장 Рынок
울적 Тоска
야행(夜行) Ночное путешествие
비 뒤 После дождя
어머니 Матушка

제4부 산문편 Глава 4. Прозаические произведения
달을 쏘다 Стреляю в луну
별똥 떨어진 데 Куда упал метеорит
화원에 꽃이 핀다 Расцветает цветочный сад
종시(終始) Начало и конец

시인 윤동주의 생애 Жизнь поэта Юн Донджу

윤동주 연보 Вехи биографии

역자 소개 О переводчике
Author
윤동주,조주관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발표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만주 용정과 경성 신촌 일대에서 문학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를 썼기에 청춘의 고뇌가 담겨 있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1년(15세)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16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썼고 이는 오늘 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동시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했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9년 조선일보에 「유언」, 「아우의 인상화」, [소년(少年)]지에 「산울림」을 발표하였다. 처음 윤동주 시들은 노트에 봉인된 채, 인쇄되지도 않았고 신문 지면에 발표되지 않았다.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지고 난 후 동문들이 그의 노트에 있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출판한다. 유해가 안치된 지 3년 후, 그러니까 1948년,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어 혼란한 시기에 청춘 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북간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발표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만주 용정과 경성 신촌 일대에서 문학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를 썼기에 청춘의 고뇌가 담겨 있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1년(15세)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16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썼고 이는 오늘 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동시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했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9년 조선일보에 「유언」, 「아우의 인상화」, [소년(少年)]지에 「산울림」을 발표하였다. 처음 윤동주 시들은 노트에 봉인된 채, 인쇄되지도 않았고 신문 지면에 발표되지 않았다.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지고 난 후 동문들이 그의 노트에 있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출판한다. 유해가 안치된 지 3년 후, 그러니까 1948년,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어 혼란한 시기에 청춘 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북간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