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조선 최초 의병장인 양달사 장군 관련 문헌을 번역한 것으로, 제주양씨주부공파 문중의 전 양금호 회장이 소장한 『남암공 사적(南巖公 事蹟)』을 저본으로 삼았다. 영암향교에서 발간한 『영암문헌록(靈巖文獻錄, 2001)』에 실린 문헌 중 일부를 교감(校勘)을 위해 참고하였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 글이 왜, 언제 작성되었는지 앞부분에 해제(解題) 겸 글쓴이의 정보를 덧붙였다.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과 여지도서(輿地圖書), 영암군지, 겸재집(謙齋集), 주부공파족보 등에 언급된 내용들이 대부분 수록돼 있다. 해당 문헌들은 진본(眞本)이 아닌 1959년 필사본지만 내용만은 여느 고문서보다 값진 책자다. 양달사보다 70여 년 후에 태어난 임연(林?)의 사장(事狀)부터 효자로 널리 알려진 신사준의 유사(遺事), 나주목사 임육의 행장(行狀), 대사성 등을 역임한 윤득부의 묘지명(墓誌銘), 한성우윤 출신의 이기경 전(傳), 형조참의 출신인 오연상의 묘갈명(墓碣銘), 무안군수 이인채의 사적후(事績後), 나주임씨의 문중 일에 앞장선 임우진의 기적문(記蹟文), 조선 후기 도학자인 기학경의 후서(後序)까지 내용은 대동소이하나 모두 역사적으로 명망 있는 분들의 글들이 담겨 있다.
특히 1780년 전라도 유생 444명이 연서(連署)하여 관찰사에게 올린 등장(等狀)을 비롯한 7편의 소지(所志)를 통해 200여 년 동안 전라도민들이 양달사 의병장의 공적이 잊혀지는 것을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양달사 의병장은 1847년 10월 19일 좌승지로, 형 달수는 사헌부 지평으로 추증될 수가 있었고 영암군에서는 1971년에 공적비를, 1974년에는 순국비를 세운 것이다. 아무쪼록 이 작은 책자가 양달사 의병장의 위대한 업적과 영암성 대첩의 의의를 고증학적으로 뒷받침하는 든든한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