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비판이론, 근대성 담론은 ‘해석학적 지평’이라는 알리바이를 통해 근대의 문헌텍스트에 끊임없이 개입한다. 비유, 수사 등의 시적 언어의 술어 및 문법에 대한 개입 역시 마찬가지다. 더욱이 시양식 고유의 말법, 어법, 문법은 끊임없이 산문이나 담론의 그것으로부터 일탈하고자 하는데, 인간은 도리어 그것을 산문이나 담론의 논리로 환원시키려 한다.
근대 ‘초창시대’의 시는 어떻게 왔는가를 질문해 본다. 새롭게 등장하는 7·5조, 6·5조의 리듬이 일본 신체시의 영향으로부터 왔을 수도 있고, 서양의 군가, 찬송가의 영향으로부터 가능했을 수도 있다. 근대시의 ‘기원’ 문제는 항상 ‘전통’과 ‘이식’의 경계에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데, 임화의 문제의식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암중모색 중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언어(조선어)’의 랑그적 특성을 배제하고 이 문제를 논할 수 있는가. 시형은 모방할 수 있어도 시는 모방할 수 없다는 것이 초창시대 시담당자들의 시각이었다.
이 저서는, 한편으로, 근대시는 ‘철미디어’에서 왔다는 점을 논증하면서 ‘철미디어 시대’의 시양식의 변화와 실재의 시를 다루고 있다. ?경부철도가?에서 ‘경부철도’의 동력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율조(리듬)의 근원이 된다. 리듬은 일상적 삶의 변화와 혁신의 ‘내용’이자 그 ‘형식’이다. 창가의 계몽성이란 일종의 소셜미디어적 리듬이기도 하다. ‘로고제닉(표현)’이자 ‘파토제닉(공감, 공유)’으로서 철미디어는 시에 개입하고 시는 변화된 몸의 리듬을 등기(登記)한다.
시는 고유의 언어와 문법으로 스스로의 양식을 완성한다. 근대시는 살과 철의 관계, 철미디어의 세계를 은유하는데, 고대 메르크리우스의 물질성이 원형상징체계 가운데 근대 철미디어와 연결되기도 하고, 철미디어가 감각, 수사, 이미지의 새로운 시문법을 견인하며, 철미디어의 동력과 활력이 새로운 시적 리듬을 생성하기도 한다. 그것은 모더니즘의 서구사조적 수용이나 모방의 차원과는 다른 것이다. 철미디어는 소재나 주제에 머물지 않고 감각, 리듬, 수사의 시적 언어의 주체로 존재한다. 그것이 시양식 고유한 문법을 만들고 시양식 고유한 질서들을 창안한다. 인간이 양식이나 장르를 끌고가는 것이기보다는 시 고유의 양식적 질서가 시의 언어를 끌고 간다. 서구사조의 수용 및 모방은 후차적인 것이다.
시는 이론의 구성물이기보다는 실재하는 언어의 창안물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며, 인간의 의욕보다 양식 자체의 의욕이 인간의 의지를 넘어선다는 양식본질론에서 그러하다. 말이 인간 혹은 주제에 뒤따라가는 소설과는 달리, 시는 말이 먼저 오고 주제나 의미는 뒤따라간다(움베르토 에코). 시인은 현실의 ‘안’이 아니라 ‘밖’에서 사는 현실을 그릴 뿐(임화)이며, 예술을 일종의 기록으로 보거나 예술가의 삶이나 현실과의 연관성을 통해 이해하려는 태도(E. 사이드)는 특히 시에 있어서는 진정성이 다소 희박하다. 철미디어가 빛이나 해방이었던 한 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시가 언어로 현현하는 그 한 순간, 이른바 시적 계시의 순간과 맞먹는다. 이것이 근대시의 자리이다. 그러니까 근대시의 자리는 근대시 바로 그 자체에 있다.
1절 철미디어의 거울과 미의식의 변화
1. 직선, 예각, 미끈한 육체의 뮤즈
2. 불·빛·책의 도시와 철미디어 문체
3. 자동기계 이미지와 사이보그 몸의 수사
4. 기계적 강박에서 수의 리듬으로
5. 철미디어의 양식과 철미디어의 시장르
2절 철미디어 동력의 ‘번역적 위치’
1. 철미디어의 바다, 기선의 동력학적 리듬
2. 기차, 氣動車, 철도의 속도와 리듬
3. 자동차, 오토바이의 활력과 아방가르드 시학
4. 아스팔트의 음악적 효과와 ‘거울’의 빛
5. 윤전기로부터 ‘문자’의 시·공간적 확장
6. 비행기, 추진기의 理知와 비약의 리듬의식
7. 신경증적 ‘파동’의 언어감각과 움직이는 시의 음악
8. 철미디어의 호르몬적 集積과 은유
3부 축음기효과와 시의 무선적 · 전파적 상상력의 연대
1절 기계음악과 축음기효과
1. ‘말하는 기계’와 기계에 흡수된 인간의 몸
2. 자동기계와 ‘철’과 ‘살’의 은유
3. ‘철인간’ 이상과 기계음악의 효과
2절 철미디어의 원격현전성과 연결, 연대 그리고 해방
1. 철미디어의 소셜미디어적 전복성과 원격현전성
2. 전파·무선적 상상력 혹은 시적 상상력
4부 마무리하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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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조영복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북 예술가, 오래 잊혀진 그들』(2002), 『1920년대 초기 시의 이념과 미학』(2004), 『문인기자 김기림과 1930년대 ‘활자-도서관’의 꿈』(2007), 『원형 도상의 언어적 기원과 현대시의 심연』(2012), 『넘다 보다 듣다 읽다-1930년대 문학의 ‘경계넘기’와 ‘개방성’의 시학』(2013), 『이것은 글쓰기가 아니다』(2016), 『시의 황혼-1940년, 누가 시를 보았는가?』(2020), 『시인의 말법-전설의 사랑시에서 건져낸 울림과 리듬』(2020), 『깨어진 거울의 눈-문학이란 무엇인가』(2000, 공저), 『니체, 철학의 주사위』(1993, 공역), 『날개』(2011, 편저) 외에도 다수의 저서가 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북 예술가, 오래 잊혀진 그들』(2002), 『1920년대 초기 시의 이념과 미학』(2004), 『문인기자 김기림과 1930년대 ‘활자-도서관’의 꿈』(2007), 『원형 도상의 언어적 기원과 현대시의 심연』(2012), 『넘다 보다 듣다 읽다-1930년대 문학의 ‘경계넘기’와 ‘개방성’의 시학』(2013), 『이것은 글쓰기가 아니다』(2016), 『시의 황혼-1940년, 누가 시를 보았는가?』(2020), 『시인의 말법-전설의 사랑시에서 건져낸 울림과 리듬』(2020), 『깨어진 거울의 눈-문학이란 무엇인가』(2000, 공저), 『니체, 철학의 주사위』(1993, 공역), 『날개』(2011, 편저) 외에도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