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픽션의 가장자리』에서 스탕달, 발자크, 포크너 등을 다룬 랑시에르가 2024년 체호프로 돌아왔다. 오직 체호프만으로 책 한권을 썼다. 이 작은 책은 체호프의 단편처럼 힘 있고 크다. 특히 상상력과 작품 해석의 여백이 광활하다. 정치와 미학의 관계를 파고들며 급진적 사상을 구축해온 랑시에르는 이 책에서 체호프의 소설을 통해 ‘자유’를 고찰한다. 다만 문학을 도구화하지는 않는다. 랑시에르는 작품을 자기 관점에 끼워 맞추지 않고, 자신이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작가의 임무는 먼 곳에 있는 자유의 파열을 예속의 시대 속에 새겨넣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랑시에르는 이를 실현한 작가로 체호프를 꼽는다. 체호프는 러시아 혁명의 전조가 사회를 둘러쌀 때 직접 정치적 견해를 밝히지 않고, 사회가 얼마나 예속 상태인가를 인식·진단하는 데에만 힘을 쏟았다. 창조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채.
총 아홉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앞 장의 결론이 뒤 장의 서두로 이어지면서 책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 된다. 저자는 특히 시간에 주목한다. 시간의 무심함, 시간의 비밀, 시간의 사용…… 시간을 관습적으로 반복하고 진지한 일에만 쏟는 것은 복종이다. 벼락같은 변화는 ‘순간’을 통해 도래한다. 이러한 시간관념은 하이데거가 논한 ‘카이로스의 시간’(일종의 결단, 균열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랑시에르는 「꿈」에서 경찰들이 본인 임무를 잊은 채 유랑자와 함께 시베리아의 광활한 공간을 바라보는 데서 시간의 균열을 포착한다. 「어느 이름 없는 사람의 이야기」에서는 하인이 자기 직업을 포기할 때 혁명적 시간이 도래한다고 해석한다. 랑시에르는 동일하지 않고 반복적이지 않은 시간에서 미래를 향한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Contents
1. 유랑자의 꿈
2. 예속의 속삭임
3. 전신電信의 노래
4. 새로운 여명?
5. 순간의 힘
6. 서사 속의 음악
7. 스텝의 노래에서 해오라기의 울음소리로
8. 병사의 눈
9. 시작도 끝도 없이
주
옮긴이의 말
Author
자크 랑시에르,유재홍
1940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파리 8대학에서 1969년부터 2000년까지 미학과 철학을 가르쳤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청년기의 랑시에르는 루이 알튀세르와 만나면서 발리바르, 마슈레, 에스타블레 등과 더불어 『『자본론』 읽기』(1965)의 공동 저자로 알려지게 된다. 그러나 68혁명을 경과하며 노동계급의 진정한 과학임을 자임하는 마르크스주의 담론과의 단절을 모색하게 되고 1974년 『알튀세르의 교훈』을 출간, 알튀세르주의와의 관계를 논쟁적으로 청산한다. 그후 랑시에르는 랭보의 시 「민주주의」의 한 구절에서 이름을 딴 저널 『논리적 반역Revoltes logiques』 창간에 합류하면서 그만의 독창적 연구를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논리적 반역』은 반역적 주체의 논리/역사적 탐구를 향한 집단 작업의 장이었고, 19세기 노동자들의 편지와 저널 등에 관한 아카이브를 파고들며 노동계급 해방의 다양한 형상들을 조사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그리고 이 시기의 성과는 『프롤레타리아의 밤』(1981)으로 집약된다. 랑시에르는 이 작업을 노동자의 말하기parole에 ‘사유의 지위’를 부여하는 시도였다고 규정하며 인민주의적 입론으로 곡해되는 것에 거부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후 랑시에르는 대문자적 주체가 아닌 이단적 주체들의 형상에 대한 철학적·역사적·시학적 탐구를 본격적으로 전개해나갔다. 지배 담론 안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단적 주체들을 대신하거나 또는 대표해 이들의 목소리를 찾고 이를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닌, 그들의 침묵하는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하고, 이 목소리를 유통시키려는 것이 랑시에르의 기획이다.
지은 책으로는 『알튀세르의 교훈』 『철학자와 그 빈자들』 『무지한 스승』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불화』 『역사의 이름들』 『무언의 말』 『말의 살』 『감성의 분할』 『이미지의 운명』 『미학의 불만』 『해방된 관객』 『역사의 형상들』 등이 있다.
1940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파리 8대학에서 1969년부터 2000년까지 미학과 철학을 가르쳤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청년기의 랑시에르는 루이 알튀세르와 만나면서 발리바르, 마슈레, 에스타블레 등과 더불어 『『자본론』 읽기』(1965)의 공동 저자로 알려지게 된다. 그러나 68혁명을 경과하며 노동계급의 진정한 과학임을 자임하는 마르크스주의 담론과의 단절을 모색하게 되고 1974년 『알튀세르의 교훈』을 출간, 알튀세르주의와의 관계를 논쟁적으로 청산한다. 그후 랑시에르는 랭보의 시 「민주주의」의 한 구절에서 이름을 딴 저널 『논리적 반역Revoltes logiques』 창간에 합류하면서 그만의 독창적 연구를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논리적 반역』은 반역적 주체의 논리/역사적 탐구를 향한 집단 작업의 장이었고, 19세기 노동자들의 편지와 저널 등에 관한 아카이브를 파고들며 노동계급 해방의 다양한 형상들을 조사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그리고 이 시기의 성과는 『프롤레타리아의 밤』(1981)으로 집약된다. 랑시에르는 이 작업을 노동자의 말하기parole에 ‘사유의 지위’를 부여하는 시도였다고 규정하며 인민주의적 입론으로 곡해되는 것에 거부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후 랑시에르는 대문자적 주체가 아닌 이단적 주체들의 형상에 대한 철학적·역사적·시학적 탐구를 본격적으로 전개해나갔다. 지배 담론 안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단적 주체들을 대신하거나 또는 대표해 이들의 목소리를 찾고 이를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닌, 그들의 침묵하는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하고, 이 목소리를 유통시키려는 것이 랑시에르의 기획이다.
지은 책으로는 『알튀세르의 교훈』 『철학자와 그 빈자들』 『무지한 스승』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불화』 『역사의 이름들』 『무언의 말』 『말의 살』 『감성의 분할』 『이미지의 운명』 『미학의 불만』 『해방된 관객』 『역사의 형상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