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정선

첸리췬이 가려 뽑은 루쉰의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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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3/07/26
Pages/Weight/Size 150*220*40mm
ISBN 9791169091336
Categories 인문 > 독서/비평
Description
“루쉰은 중국 현대 문화의 시작이자 토대”
한 권으로 정선精選한 루쉰 문학과 사회비평의 핵심

한 권으로 읽는 루쉰의 모든 것
50년 루쉰 연구자가 가려뽑은 정선


루쉰에 관심 있는 입문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되, 대문호 루쉰의 다양한 면모를 빠뜨리지 않고 섭렵할 수 있도록 루쉰 전집에서 핵심이 되는 글들만 모아 번역한 『루쉰 정선』(원제: 루쉰 입문 독본)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중국의 루쉰 연구자인 첸리췬 교수(1939~ )가 베이징대학 강연을 토대로 하여 출판한 『루쉰 입문 독본』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한 것으로, 원저는 중국 사회에서 여러 차례 판을 거듭해 읽히고 타이완판까지 출간되면서 루쉰 입문서로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첸리췬 교수는 베이징대학 교수로 20여 년 재직했고, 퇴임 이후에도 꾸준히 루쉰만 50년 넘게 연구해온 최고의 루쉰 전문가로 베이징대학에서 그의 강의는 그가 서 있는 교단을 빼고 학생들이 가득 찰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이번 한국어판은 베이징대학에서 첸리췬의 지도 아래 중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신동순 숙명여대 교수가 중심이 되어 관련 전공 연구자들로 팀을 꾸려 번역하고 토론하고 윤문하여 루쉰의 원의와 자연스러운 한국어 번역이 되도록 만전을 기했다.

이번에 나온 『루쉰 정선』은 전체 4편으로 이뤄져 있으며, 각 편 각 장마다 첸리췬 교수가 자세한 해설을 달아 작품의 선정 이유, 염두에 두고 읽을 지점, 창작 당시의 상황, 작품에 숨어 있는 핵심 사유 등을 안내해주고 있어 독서에 도움을 준다. 제1편에서는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루쉰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는 글들을 모았으며 ‘사람의 아들과 사람의 아버지’로서 루쉰이 어떤 철학을 갖고 살아갔는지를 드러내주고 있다. 제2편에서는 잡문 작가로서 루쉰의 면모를 주로 사람·동물·귀신·신을 소재로한 글들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3편과 4편은 주로 평론과 단편소설을 수록하고 있는데, ‘눈을 크게 뜨고 보기’ ‘다르게 보기’ ‘총명한 사람과 바보와 노예의 차이’ 등의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이 어떻게 독서를 통해 현실에 속지 않고 매체에 속지 않으며 자신의 양심에 충실한 현명한 지성체가 될 수 있는지를 루쉰 깊이 읽기를 통해 안내하고 있다. 그리고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은 책 앞에 ‘서언’으로 루쉰의 제자인 소설가 샤오훙이 루쉰과 오랜 교류를 통해 곁에서 지켜본 그의 일상생활을 손에 잡힐 듯 묘사하고 있어 독자들이 당대의 분위기 속에서 루쉰의 삶에 자연스럽게 젖어들 수 있도록 했다.
Contents
서언
서문을 대신하여: 루쉰 선생님을 추억하다 _ 샤오훙

제1편 루쉰을 느끼다: 사람의 아들과 사람의 아버지

1. 아버지와 아들
우리집 하이잉海?
[부록1] 기억속의 아버지(부분 발췌) _ 저우하이잉
[부록2] 루쉰 선생과 하이잉 _ 쉬광핑
오창묘의 신맞이 축제五猖會
아버지의 병
우리는 지금 어떻게 아버지 역할을 해야 하는가
수감록63: 어린아이와 함께
「24효도二十四孝圖」
아이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하다

2. 사무치게 그리운 어린 시절의 고향
키다리 어멈과 『산해경』
지신제 연극社戱
나의 첫 번째 스승
나의 천연두 예방접종 이야기


제2편 루쉰을 읽다 Ⅰ: 사람·동물·귀신·신

1. 사람과 동물
토끼와 고양이
오리의 희극
몇 가지 비유
중국인의 얼굴
개·고양이·쥐
가을밤의 한가로운 산책
여름 벌레 세 가지
전사와 파리

2. 인간·귀신·신
무상無常
여조女吊
하늘을 메운 이야기
달나라로 달아난 이야기
검을 주조한 이야기

3. 생명의 근원에 대한 상상
죽은 불死火

아름다운 이야기
책갈피 속 빛바랜 나뭇잎
가을밤
하늘·땅·사람: 『들풀』 집장

4. 시와 그림
봄날의 따스함을 실은 시를 선별하다: 루쉰의 신시와 구체시선(8수)
쓰투차오 군의 그림을 보고
『케테 콜비츠 판화선집』 머리말 및 목록

제3편 루쉰을 읽다 Ⅱ: 눈을 크게 뜨고 보다

1.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기
눈을 똑바로 뜨고 볼 것에 대하여
밤의 송가
등불 아래에서 끄적이다(제2절)
중국인은 자신감을 잃어버렸나
‘타마더’에 대하여
「사람을 잘못 죽였다」에 대한 이의
추배도推背圖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비극
밀치기推
현대사
‘골계’에 대한 예와 설명
쌍십절 회고: 민국 22년에 19년 가을을 돌이켜 보다

2. 다르게 ‘보기’
구경거리
쿵이지孔乙己

광인일기
복수
습관과 개혁
태평을 바라는 가요
잡다한 기억(제4절)

3. 총명한 사람과 바보와 노예
등불 아래에서 끄적이다(제1절)
총명한 사람과 바보와 노예
늦은 봄에 나누는 한담
사진 찍기를 논하며(제2절)
학계의 삼혼
다시 뇌봉탑이 무너진 데 대하여
수감록65: 폭군의 신민
우연히 쓰다

제4편 루쉰을 읽다 Ⅲ: 생명의 길

1. 생명의 길
스승
수감록66: 생명의 길
홀연히 생각나다(제5절)
천재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기 전에
이것과 저것(제3, 4절)
홀연히 생각나다(제10절)
공백 채우기(제3절)
헛된 이야기(제3절)
나그네

2.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신의 말을 하라
독서잡담709
마음대로 뒤적거리며 읽기
작문의 비결
소리 없는 중국

타이완판 후기
참고문헌
역자 후기
Author
루쉰,첸리췬,정겨울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