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농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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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68879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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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5/01/30
Pages/Weight/Size 188*265*20mm
ISBN 9791168879294
Categories 인문 > 독서/비평
Description
백농실기는 백농 조창용의 수기를 모은 필사본이다. 이 실기에 관해 조창용은 다소간의 잘못은 있지만 직접 기록한 것이므로 실제의 기록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실기는 지금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잡다히 엮어서 전부 붙여 두었다. 그래서 훗날 바로잡아야만 한다. 그렇지만 그 때에 사건에 따라 기록해 두었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곧 실제로 증명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구두와 문맥에 있어서는, 내가 창황 중에 쓴 것이어서 잘못된 곳이 많다.

또한 실기에 대해 “기록한 내용은 내가 본국 사방의 명승 및 외국의 산천과 강역 중에서 기이하고 장엄한 것, 인정과 풍토, 정치와 연혁, 물산, 종교, 종족, 언어, 교육의 같고 다름을 살펴본 것이다. 세계의 변혁에 개탄하여 일찍이 이러한 사실을 기록해둔 것이 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편집하여 책으로 만들었다. 요컨대 후일 역력히 기억해볼 때에 충분히 참고가 될 만한 것이다”라고 하여 후대의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그 내용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라고 서문을 밝히고 있다.
Author
조창용
경상북도 영양(英陽) 사람이다. 1906년 7월 사립국민사범학교(私立國民師範學校)를 졸업하고, 1907년 8월 황성국민교육회(皇城國民敎育會)에 가입하여 간사원(幹事員)으로 교육구국운동에 종사하였다. 1908년 1월 장지연(張志淵)과 함께 노령 블라디보스톡에 가서 한민학교(韓民學校) 교사로 취임하여 교포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고취시켰으며, 「대동공보(大東共報)」의 사원이 되어 사회계몽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5월 한민학교 교사를 사퇴하고 장지연과 함께 상해(上海)로 가서 대동회관(大東會館) 서기로 활동했으며, 「대동보(大東報)」를 발간하였다. 1908년 7월 귀국하여 박은식(朴殷植)·유근(柳瑾) 등을 만났다가 일제 경찰에 피체되었으나 동년 11월에 석방되었다. 1909년 12월 장지연의 주선으로 「경남일보(慶南日報)」사원이 되어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1912년 4월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해서 포교사(布敎師)로 선임되어 북간도 일대를 순회하면서 대종교를 통한 독립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1918년 일제 경찰에 피체되어 잔혹한 고문을 당한 결과 정신착란증이 발생하여 그 후 병고로 시달렸다. 1914년 4월에 편성된 백농실기(白農實記)가 전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경상북도 영양(英陽) 사람이다. 1906년 7월 사립국민사범학교(私立國民師範學校)를 졸업하고, 1907년 8월 황성국민교육회(皇城國民敎育會)에 가입하여 간사원(幹事員)으로 교육구국운동에 종사하였다. 1908년 1월 장지연(張志淵)과 함께 노령 블라디보스톡에 가서 한민학교(韓民學校) 교사로 취임하여 교포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고취시켰으며, 「대동공보(大東共報)」의 사원이 되어 사회계몽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5월 한민학교 교사를 사퇴하고 장지연과 함께 상해(上海)로 가서 대동회관(大東會館) 서기로 활동했으며, 「대동보(大東報)」를 발간하였다. 1908년 7월 귀국하여 박은식(朴殷植)·유근(柳瑾) 등을 만났다가 일제 경찰에 피체되었으나 동년 11월에 석방되었다. 1909년 12월 장지연의 주선으로 「경남일보(慶南日報)」사원이 되어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1912년 4월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해서 포교사(布敎師)로 선임되어 북간도 일대를 순회하면서 대종교를 통한 독립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1918년 일제 경찰에 피체되어 잔혹한 고문을 당한 결과 정신착란증이 발생하여 그 후 병고로 시달렸다. 1914년 4월에 편성된 백농실기(白農實記)가 전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