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장미촌사에서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시 전문 잡지. 시전문지.
우리나라 최초의 시 전문지로 상아탑(象牙塔) 황석우(黃錫禹)가 주재하여 장미촌사(薔薇村社)에서 1921년 5월 24일자로 간행하였다. 발행인은 변영서(邊永瑞 : 미국인 선교사 필링스)이고 편집인은 황석우로 되어 있다. 황석우가 이 잡지 출판의 모든 것을 주재한 것인데, 미국인 선교사 필링스가 발행인으로 되어 있음은 그 당시 외국인명으로 잡지의 발행허가가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황석우는 이보다 앞서 폐허동인(廢墟同人)에 참여하여 김안서(金岸曙)와 함께 『폐허』 창간호를 주재했다가 곧바로 거기서 손을 떼고 『장미촌』을 간행한 것이다. 동인으로는 변영로(卞榮魯)·오상순(吳相淳)·박종화(朴鍾和)·박인덕(朴仁德)·노자영(盧子泳)·박영희(朴英熙)·정태신(鄭泰信)·이훈(李薰)·신태악(辛泰嶽) 등이 있는데, 이들 중 변영로·오상순·황석우는 폐허동인이었고, 박종화·박영희·노자영 등은 후에 백조동인(白潮同人)에 참여했다. 『장미촌』은 총 24면의 소책자로 창간호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이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중요시되고 있음은 우리 나라 최초의 시 전문지라는데 있고, 또 그 동인들의 활동이 그만큼 문학사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금성 (金星)
『금성』은 1923년 손진태·양주동 등이 창작시와 해외시의 소개와 번역을 위하여 창간한 잡지이다. 일본 와세다대학 문과에 다니던 문예 동인들이 귀국했다가 관동대지진 발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지 못하자 발간에 착수했다. 1923년 11월 금성사에서 발행했다. 1925년 5월 통권 제3호로 종간됐다. 창간호의 편집후기에는 『금성』이 “시가요조의 창작과 특히 외국시인의 작품 소개와 번역, 기타 소품을 중심으로 엮어진다.”고 밝히고 있다. 『금성』은 『폐허』·『백조』에 이어 다음 세대의 문학적 관심을 집약하고 창작과 번역을 겸한 동인지라고 할 수 있다.
신시단 (新詩壇)
1928년에, 신시단사에서 신명균이 진주지방 시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창간한 잡지. 1926년 진주에서 발행된 『시단』과 더불어 지방 문예 운동의 전위로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으나, 발행을 허가받지 못해 임시호(臨時號)를 낸 것이 창간호 구실을 하게 되었다. 작품을 ‘시가’, ‘시론’, ‘신시’, ‘동요’, ‘수필’, ‘감상’ 등의 항목으로 나누어 싣고 있는데, 이는 1920년대의 다른 시 전문지가 시와 시론 중심으로 편집된 것과는 구별된다. 『신시단』은 국판 54쪽으로 지령(誌齡)은 창간호에 그쳤다. 편집 겸 발행인은 신명균(申明均)이고, 발행소는 진주(晋州)의 ‘신시단사’였다. 동인으로는 엄흥섭(嚴興燮)ㆍ김병호(金炳昊)ㆍ정창원(鄭昌元)ㆍ소용수(蘇瑢?)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