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서북·관서·해서지방 출신자들이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애국계몽단체. 애국계몽운동은 1907년 중엽에 이르러 관서와 관북지방에서 뿌리를 내려 일정한 성과를 거두게 되자 전 민족적 전 국가적 차원으로의 확산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일제의 강압책으로 국권회복운동이 더욱 어렵게 되자, 이러한 제약을 보다 적극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서우학회와 한북흥학회를 통합하여 1908년 1월 조직하였다. 구성원은 주로 평안도·함경도·황해도민이다. 주요 임원은 이동휘(李東輝)·안창호(安昌浩)·박은식(朴殷植)·이갑(李甲)·유동열(柳東說)·최재학(崔在學) 등이었다. 임시회장 이동휘의 지도 하에 서우회관(西友會館)에서 조직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회장으로 정운복(鄭雲復), 부회장 강윤희(姜玧熙), 총무 김달하(金達河)를 선출하였다.
1908년 서북·관서·해서지방 출신자들이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애국계몽단체. 애국계몽운동은 1907년 중엽에 이르러 관서와 관북지방에서 뿌리를 내려 일정한 성과를 거두게 되자 전 민족적 전 국가적 차원으로의 확산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일제의 강압책으로 국권회복운동이 더욱 어렵게 되자, 이러한 제약을 보다 적극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서우학회와 한북흥학회를 통합하여 1908년 1월 조직하였다. 구성원은 주로 평안도·함경도·황해도민이다. 주요 임원은 이동휘(李東輝)·안창호(安昌浩)·박은식(朴殷植)·이갑(李甲)·유동열(柳東說)·최재학(崔在學) 등이었다. 임시회장 이동휘의 지도 하에 서우회관(西友會館)에서 조직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회장으로 정운복(鄭雲復), 부회장 강윤희(姜玧熙), 총무 김달하(金達河)를 선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