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문화사에서 배재학당과 휘문의숙 출신의 문학청년들이 모여서 발행한 잡지. 문예동인지. 1922년 1월 박종화(朴鍾和)·홍사용(洪思容)·나도향(羅稻香)·박영희(朴英熙) 등이 창간하였다. 편집인은 홍사용, 발행인은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외국인을 택했는데, 1호는 아펜젤러(미국인 선교사, 배재학당 교장), 2호는 보이스 부인(미국인 선교사), 3호는 훼루훼로(망명한 백계 러시아인)이다.
김덕기(金德基)와 홍사용의 재종형(再從兄)인 홍사중(洪思中)이 자금을 출자하여 문화사(文化社)에서 발행하였다. 컷·장정·표지는 안석주(安碩柱)와 원세하(元世夏)가 맡았다. 격월간으로 계획된 것이나 발간이 순조롭지 못하여 1922년 5월에 2호, 1923년 9월에 3호를 내고 종간되었다. 발행 동기는 휘문의숙(徽文義塾) 출신의 박종화·홍사용과 배재학당(培材學堂) 출신의 나도향·박영희 등의 문학 청년들의 사귐에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