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선(第一線)》은 1932년 5월 20일자로 《혜성(彗星)》을 개제하여 속간했는데, 1933년 3월 통권 10호로 종간했으니 《혜성》창간에서부터 따져 총 23호가 된다. 《제1선》제1호의 판권장을 보면, 편집 겸 발행인 차상찬(車相瓚), 인쇄인 이학중(李學仲), 인쇄소 조선인쇄(주), 발행소 개벽사(서울·경운동 88), B5판 133면 정가 30전이다.
권두언 〈제호(題號) 내용(內容) 체재(體裁)를 변경하면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혜성(彗星)》이라는 명칭은 너무도 막연하고 현실의 사람과의 가까운 느낌이 적었던 것이다. ······ 변경한 제호가 보이는 바와 같이 대중과 한가지로 제1선에 나서서 그 여론을 위하여 문화의 계몽과 향상을, 그리고 특히 침체된 문예의 진흥을 위하여 전력을 다하려는 바이다.〈하략〉”
판형은 A5판(국판)에서 B5판(4×6 배판)으로 바뀌고 내용은 시사적인 것이 많아지고, 체재는 주로 6호활자, 세로 3단으로 꽉 차게 짰다. 대중지답게 읽을거리가 풍성하고 편집솜씨도 세련되었다.
기사 중 관상자(觀相者)가 쓴 〈전조선(全朝鮮) 208 부호재벌가(富豪財閥家) 총점고(總點考)〉는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화제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오늘에 와서는 귀중한 사료(史料)가 아닐 수 없다. 40장(200자)이 넘는 장문인데 그 대강을 추려보기로 한다. 필자인 ‘관상자(觀相者)’는 다름 아닌 개벽사 발행인이요, 당대의 대표적인 논객(論客) 차상찬(車相瓚)이 쓰는 20개가 넘는 필명 중의 하나이다.
《혜성》을 개제한 대중지 제일선 - 1932. 5 (한국잡지백년2, 2004. 5. 15., 최덕교)
(1887 ~ 1946) 수필가, 시인, 언론인이다. 호는 청오(靑吾), 강원도 춘천 출생.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직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우리의 족적에서 볼 수 있다. 야사(野史)를 바탕으로 한 야담, 사화적(史話的)인 저술을 주로 하였다. 개벽사(開闢社)의 주간으로 《개벽》 《별건곤(別乾坤)》 《신여성(新女性)》 《농민(農民)》 《학생》 등의 잡지를 발간했다. 저서로 《조선 4천년비사(朝鮮四千年?史)》 《해동염사(海東艶史)》 등이 있다.
(1887 ~ 1946) 수필가, 시인, 언론인이다. 호는 청오(靑吾), 강원도 춘천 출생.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직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우리의 족적에서 볼 수 있다. 야사(野史)를 바탕으로 한 야담, 사화적(史話的)인 저술을 주로 하였다. 개벽사(開闢社)의 주간으로 《개벽》 《별건곤(別乾坤)》 《신여성(新女性)》 《농민(農民)》 《학생》 등의 잡지를 발간했다. 저서로 《조선 4천년비사(朝鮮四千年?史)》 《해동염사(海東艶史)》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