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불교사에서 경량부는 베일에 가려진 학파이다. 인도 후기 불교문헌이나 티베트 불교전통에서 비바사사(毘婆沙師, 즉 설일체유부)·유식·중관과 함께 불교 4대학파의 하나로 열거되고 있음에도 그들의 소의 경론이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학파의 발단은 물론이고 이념과 철학이 불분명하였으며, 근자에 이르러서는 학파의 정체성마저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경량부 연구의 일차자료는 경량부적 입장에서 유부 비바사사의 학설을 비판적으로 조술한 세친의 『구사론』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경량부 설은 다만 유부학설의 비판 논거로 제시된 것일 뿐 학파의 사상체계로서 진술된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경량부의 중요한 학설인 종자설의 경우 너무 소략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카슈미르의 유부논사 중현은 『구사론』상의 세친의 이설이나 경량부 설을 비판하면서 그 배후로 상좌 슈리라타나 상좌계통의 일군의 비유자(譬喩者)의 학설을 대규모로 인용 비판한다. 본서는 현장(玄?) 계통에서 상좌 슈리라타의 저작으로 전해진 『경부비바사』라는 제명(題名) 하에 이를 집성한 것이다. 이 중 일부가 『구사론』이나 『성유식론』 혹은 그 주석서 상에서 말경부(末經部, 즉 경량부)나 상좌부(上座部, 상좌일파) 설로 인용되고 있을지라도 대부분은 이후 천 수 백년간 『순정리론』에 묻혀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을 엮어내는데 30여 년이 걸렸다고 말한다. 저자는 지난 30여 년에 걸쳐 중현의『순정리론』읽고 상좌 슈리라타의 사상을 밝히는데 진력해왔다. 이미 『상좌 슈리라타의 경량부 사상』(2012)에서 경량부라는 부파의 정체성을, 『상좌 슈리라타와 경량부 사상』(2019)에서 상좌의 철학사상의 일단을 밝힌 바 있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순정리론』상에서 상좌 관련 학설과 정보를 추출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본서는 경량부와 그 선구로 평가되는 비유자 연구의 일대 자료집으로 편찬되었다. 본서를 비롯하여 앞의 두 권 모두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조성된 저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