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 이래 최초의 한글 필사 기록 문헌
신라시대부터 발달한 석독구결의 후기 모습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
경기도 고양시 소재 원각사(주지 정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보물 제2056호 『능엄경』(권1~2)의 영인본. 이 문헌에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한글 필사본인 1464년에 쓰인 『상원사어첩·중창권선문』보다 이른 시기에 기입된 한글이 필사되어 있다. 그리고 신라와 고려시대의 석독구결을 이어 주는 석독 표기가 기입되어 있다. 이 문헌은 1401년, 당시 태상왕이었던 태조의 명으로 간행한 왕실본으로, 능엄경 경문에 계환(戒環)이 요해를 붙인 것을 명필 신총(信聰) 대사가 글씨를 써서 판을 새기고 찍어낸 것이다. 이번에 발간한 영인본은,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원본의 97% 크기) 컬러 영인하고, 책 끝에 정각 스님과 국어학자 정재영 교수팀의 해설을 수록했다.
“원각사 소장 『능엄경』은 한문 원전을 우리말로 풀어 쓰는 언해과정을 명쾌하게 보여 주는 최초의 실물자료이다.” ― 홍윤표(국어학자)
원각사 소장 『능엄경』에는, 1461년 교서관에서 활자본으로 간행하고, 1462년에 간경도감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한 『능엄경언해』의 번역 사업에 이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묵서, 세필 묵서, 교정용 용지, 각필 등이 기입되어 있다. 그리고 한글 부분, 주석, 훈독의 순서를 지시하는 부호, 글자를 번역하지 말라는 부호, 사성(四聲)의 성조가 달라 뜻이 달라지는 것을 표현한 부호, 빠진 글자를 보충하라는 보자(補字) 부호, 글자나 내용에 관한 주석의 위치를 나타내는 부호 등이 기입되어 있어, 이 문헌이 번역과 관련이 많음을 보여 준다.
경문과 요해에는 묵서로 쓴 구결을 차자(借字) 또는 한글로 달아 놓았고, 여백을 이용하여 경문이나 요해에 없는 주석을 한글 또는 한문으로 써 넣었다. 잘못 쓰거나 고치고자 한 부분에는 일일이 종이를 붙여 교정하였다. 경문과 요해 및 주석의 한글 부분은 대체로 『능엄경언해』의 한글 부분과 같지만, 『능엄경언해』에 없는 주석을 써 넣었다가 지운 부분도 있고, 『능엄경언해』에는 한글로 된 주석이 이 책에서는 한문이나 구결문으로 된 부분도 있다. 정재영 한국기술대학교 교수는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문헌에 기입된 한글과 구결 등이 『능엄경언해』보다 먼저 쓰인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원각사 『능엄경』은 신라시대부터 발달한 석독구결의 후기 모습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한문을 우리말로 풀어서 읽었던 석독구결은 언해가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 이와 달리 음독구결은 한문 학습의 필요성 때문에 현재까지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 석독구결의 전통은 오랫동안 잊혀 있었으나, 1970년대에 문자 석독구결 자료가 발견되고 2000년대에 부호 석독구결 자료가 발견되면서 그 역사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 문헌의 발견으로 이러한 전통이 이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전을 우리말로 읽으려는 우리 선조들의 바람은 구결에서 한글로 석독구결에서 언해로 그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왔다. 이러한 전통의 기반 위에서 이 문헌의 의미와 가치가 더욱 분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