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교는 선불교라고도 한다. 선이란 무엇일까? 무엇인가를 맹목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다른 종교들과는 다르게 불교는 철저하게 과학적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면서, 실질적이며 현실적인 특징이 있다. 철저하게 의심하고, 철저하게 탐구하고,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이 불교의 오랜 전통이며 조금이라도 어긋난 것이 있다면 가차없이 차단해 버리는 매우 엄격한 가풍을 가지고 있다.
그런 철저한 불교적 가르침의 중심에 선불교가 있는데 한 점의 필요 없는 군더더기도 용납하지 않고, 깨달음의 길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곧바로 직선적으로 치고 들어가서 바로 부처님의 마음과 만나는 것 그것이 바로 선불교이다.
세상에 불교를 가르치는 수많은 경전과 그 해설서들이 있는데, 선어록을 따로 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수행하는 사람 스스로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발견해 가고, 스스로 마음의 경지가 높아지는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어록은 자세히 해설하면 그 가치를 없애 버리는 것이 되고, 스스로 깊이 수행할 수밖에 없는 동기를 없애 버리는 것이 되고, 스스로 수행하려는 기회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 된다. 다음은 저자가 책의 맺음말에 밝힌 내용이다.
선에 밝지도 한문에 능하지도 못하면서 임제의 말씀을 싣는다는 것이 주제넘고 외람되지만 임제의 간단명료한 알뜰하신 말씀이 번역되면서 긴 설명이 되는 것이 안타까워 부끄러움 무릅쓰고 꾸중을 각오하고 시작했다. 선의 본래 모습이 설명을 피하고 이해를 거부하는 직관 직설의 거두절미를 근본으로 함에도 다수의 선어록 번역이 말을 방법으로 하고 이해를 절차로 하여 초심자를 더 어렵게 하는 듯하여 감히 손을 대었다.
저자 맺음말 중에서 -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 것 같은 그 선어록을 힘찬 마음으로 직접 부딪쳐 들어갈 때 진짜 공부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공부 도구로 쓰일 수 있는 선어록은 그 수행과정을 완벽히 거친 선사의 어긋남이 없는 완벽한 문장이 필요한데, 그래서 선어록을 번역하고 문장을 만드는 것이 어렵고 아무나 할 수 없다.
깨달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읽으면 읽을수록, 참구하면 참구할수록, 노 선사(설담 스님)의 힘차고 간단명료한 선기가 느껴진다면, 비로소 조금 공부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불교 공부를 하려고 한다면 최고 경지의 가르침인 선어록을 제대로 한번 만나볼 기회를 가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