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나라의 문화와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고전을 접해 보는 것이 필요불가결하다. 고전 속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과 함께 그 나라의 문화적 특수성도 함께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고전에 비해 우리에게 친숙치 않은 일본의 고전문학 속에는 오랜 세월 속에 축적된 거대한 ‘레토릭’의 세계가 있으며 그 근원에는 일본인의 상상력이 자리하고 있다. 무한한 것 같이 보이는 인간의 상상력도 개개인이 처한 시대적 배경과 자연환경, 이것을 일종의 문화적 유전자라고 한다면 이와 같은 문화적 유전자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듯하다. 비근한 예로 같은 보름달 속에서 동양인은 계수나무 밑의 떡방아 찧는 토끼를 연상하지만 서양인은 늑대인간의 변신을 상상해 왔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일본의 고전문학 속에 엿보이는 일본인의 상상력은 자연관이나 희로애락의 감정에서 우리와 미묘하게 다른 점을 느낄 수 있으나 무엇보다도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이계(異界)’라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은 사후의 세계를 말하는 ‘내세’나 ‘타계’와는 다른 개념으로, ‘내세’가 죽은 자의 혼령이 머무는 곳을 말한다면 ‘이계’란 자신들의 삶의 영역으로부터 분리된 바깥 세계, 즉 ‘이 세계(異世界)’를 말한다. 이 ‘이계’에는 ‘이인(異人)’이 거주하며 또한 ‘요괴’가 활동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책에 수록한 12편의 글은 일부 고전 작품의 스토리 전개나 표현기법에 관한 내용과 함께 대부분이 일본의 고전문학에 등장하는 ‘이계’와 ‘내세’를 주제로 다룬 것들로 그 어느 것도 일본인의 상상력에 접근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들을 통하여 우리에겐 이문화로 다가설 수 있는 일본 고전문학의 세계를 독자들이 접해보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Contents
에도의 오니鬼와 요괴
―쓰레즈레구사徒然草 주석에서 기뵤시 모노가타리物語로― _양 샤오제(楊曉捷)
에도 괴담의 보편과 특수 _기바 다카토시(木場貴俊)
근세 도상 자료를 통해 본 일본인의 상상력의 계보 _금영진
여성 괴담의 환상성과 현실 전복의 상상력 _김경희
우에다 아키나리上田秋成 문학 속 미야기상宮木像의 계보
―그 상상력의 근원에 대하여― _웨 위엔쿤(岳遠坤)
구로사와 아키라의《거미집의 성》고찰
―전통예능 노能의 영향을 중심으로― _이시준
일본〈혹부리영감〉설화의 춤과 제의적 성격
―가구라神樂와 ‘혹 가면こぶ面’을 중심으로― _조은애
우라시마浦島전설의 근세적 변용
―‘일본’을 의식한 구상의 등장― _한경자
무라사키 시키부의 상상력, 『겐지 이야기』의 구성력
―제1부 33첩의 세계를 추동하는 힘, 비오는 밤의 여인 비평론― _김소영
‘엿보기垣間見’가 만들어내는 상상력
―『겐지 이야기源氏物語』가 그리는 남성들의 사랑― _김정희
히카루 겐지를 『겐지 이야기』에서 퇴장시키는 방법
―독자의 상상력을 통한 모노가타리 세계의 확장― _권도영
하나시본에 수록된 잡체시 연구
―『잇큐바나시』의 산형시山形詩를 중심으로― _황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