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어디에선가 혼자서 밥을 먹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듯한 쌀밥 한술과 곰취의 마음을 바친다.
금빛 햇살이 봄을 다시 초대한다. 농부에게 있어 봄은 다시 시작하는 계절, 다시 태어남의 계절, 사계의 순환이 시초로 되돌아오는 계절. 그래서 서툴고 어설프지만, 몸과 마음이 분주하게 떠오르는 계절이다. 조금은 바쁜 계절이지만, 자연은 언제나 그렇듯 어리석은 나에게 그저 부드러운 침묵의 언어와 온화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린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내려앉은 나무들의 마른 가지에는 연한 연둣빛들이 방울방울 다시 매달린다.
마음을 치유하며, 글을 쓰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다 보니, 그동안 수확한 과실을 제대로 맛본 적이 없었다. 입안에 가져가 보지 못했던 자연에서 내어주는 건강함을 이제는 조금은 더 느긋하게 음미하며, 삶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포용과 해독, 그리고 사랑의 용기라는 꽃말을 가진 호박잎에 차마 하지 못한 침묵의 말들을 쓰며, 맛과 말을 건네고 삼켜보고 싶다. 비록 소소한 위로들뿐일지라도 그것조차 없는 삶보다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믿음이 내 안에 가득하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가차 없는 삶을 이루는 건, 소소한 위로들이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겨울이 있기에 봄은 황홀하게 다가온다. 슬픔이 있기에 기쁨이 있고, 결핍이 있기에 채움이 있다. 사랑이 있기에 두려움은 더 이상 두렵지가 않다. 미소할지라도 곁을 내어주던 흔적들이 있기에 삶은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다행이다. 참으로 다행이다. 누군가의 다행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비루한 글을 쓰며, 볼품없는 밥상 하나 차리는 것밖에는 없겠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나은 방법을 여전히 알지 못한다. 어설픈 위로의 말은 차마 하지 않겠다. 그저 힘이 들면, 잠시 다녀가길 바란다. 초라한 밥상 하나에 다행스러운 마음 하나 얹어 내어주며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고.
Contents
Prologue
호박잎에 싼, 차마 하지 못한 말들
01.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쓰고 싶었다 _ 냉이 된장국
02. 불안이 말을 걸어올 때 _ 양념 더덕구이
03. 우리, 괴물이 되지는 말아요 _ 곤드레 무밥
04. 술은 익어가고, 매화꽃은 흐드러지고 _ 매실 담금주
05. 당신의 마음에 안부를 묻는다 _ 들깨 쑥 된장국
06. 망각의 두려움이 몰려올 때 _ 케일 머위 강된장 쌈밥
07. 때로는 느리게, 가끔은 멈추고서 _ 깻잎 토마토 스파게티
08. 심장이 찢긴 어느 날 _ 오이 냉국과 오이소박이
09. 모든 밤은 당신의 낮을 응원한다 _ 옥수수밥과 된장찌개
10. 발 닿는 곳에 삶은 다시 피고 _ 김치찌개와 호박잎 쌈
11. 헤아릴 수 없이 소중한 당신 _ 둥근 호박 들깨 칼국수
12. 부지런히 겨울을 입는다 _ 배추겉절이와 수육
13. 지금도 괜찮으니, 살아가요 _ 쌀 떡국
14. 별은 부단히도 밤하늘을 밝힌다 _ 소고기 우거짓국
15. 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다 _ 소고기 미역국
16. 억척스레 너를 지어먹는다 _ 해물 부추전
17. 어디선가 혼자 밥을 먹고 있을 당신들에게 _ 곰취 무침
18. 나를 울게 하소서_ 딸기잼과 비빔국수
19. 실패한 사랑은 없습니다 _ 목살 장작 구이
Epilogue
참으로 다행이다
Author
강현욱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40대 남성이다. 휴일에는 시골에서 나무를 가꾸며 산책하는 일을 좋아한다. 40대의 늦은 나이에도 ‘시골의 글 쓰는 책방 할아버지’라는 꿈이 생겨 누군가의 마음을 보듬고,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순수문학을 하고 싶어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해 현재 글쓰기를 배우는 학생이기도 하다. 이 외의 저서로는 동네책방을 답사하며 쓴 『살짜쿵 책방러』가 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40대 남성이다. 휴일에는 시골에서 나무를 가꾸며 산책하는 일을 좋아한다. 40대의 늦은 나이에도 ‘시골의 글 쓰는 책방 할아버지’라는 꿈이 생겨 누군가의 마음을 보듬고,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순수문학을 하고 싶어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해 현재 글쓰기를 배우는 학생이기도 하다. 이 외의 저서로는 동네책방을 답사하며 쓴 『살짜쿵 책방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