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하루의 24시간을 어떻게 하여야 남보다 더 많은 시간으로 살 수 있을까? 또한 누구에게나 이루고자 하는 꿈을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여 꿈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나도 문학소녀가 되고 싶었다. 동화작가나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내게 가능성이 있을까? 내 스스로 내게 자주 되물었던 질문이었다. 장사를 하면서도 나에게 투자하는 것은 인색했다. 도전하기에 앞서서 머릿속에서 계산기부터 두들겼다. 이 돈이면 물건을 사서 팔면 얼마의 돈을 벌수 있을 텐데, 가게 세를 줄 수 있을 텐데 하면서 내게 오는 도전의 기회를 사치라고 생각하며 궁색한 변명을 수없이 해댔다.
그러나 꿈은 버릴 수가 없었기에 장사를 하면서도 손에서 책과 펜을 놓지 않고 가능성이 있다고 자부하면서 1%의 용기를 더해서 마침내 무한변신을 하려고 대학의 문을 두들겼다. 15분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초등학문에서 중학과 고등과정을 합격하여 칠순을 코앞에 두고서야 꿈을 이루고자 나선 것이다. 아무리 캄캄한 터널이 있을지라도 포기만 하지 않으면 밝은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Contents
프롤로그 _ 8
1장 당신의 타이머는 어떠한가요?
1, 모두에게 주어진 하루24시간! - 14p
2, 타이머는 오늘도 째깍 째깍 - 20p
3, 타이밍이 기회다 - 28p
4, 안경 속에 내 삶의 타이밍이 담겨 있다. - 34p
5, 남자라는 이유로 - 42p
1, 포기하지 마세요. - 130p
2, 모 아니면 도 - 136p
3, 어려울수록 인재가 필요하다. - 140p
4, 캄캄한 터널이 있다는 것은? - 148p
5, 세월을 아껴라. - 156p
5장 타이밍은 반드시 당신에게 온다.
1, 감당하지 못할 시련은 없다. - 164p
2, 문제를 쪼개고 쪼개라 - 170p
3, 포기하려는 순간, 해야 하는 것들 - 178p
4, 타이밍은 반드시 온다. - 186p
5, 중동바람 - 192p
6장 지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1, 방향을 바꾼 사람들 - 200p
2, 타이밍이 멈춘 사람들 - 206p
3, 바둑이와 고양이를 만난 타이밍! - 212p
4, 배려는 사랑에서 나온다. - 222p
5, 그리 아니할지라도 - 228p
7장 늦게 피는 꽃은 있어도 피지 않은 꽃은 없다.
1, 책을 출간했다. - 236p
2,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 - 242p
3, 시간은 동전처럼 모을 수가 없다. - 248p
4, 15분의 실천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 - 254p
5, 지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 260p
8장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1,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 268p
2, 건강의 타이밍! - 274p
3, 치매! 기억을 붙잡는 것이다. - 280p
4, 심장은 안녕하십니까? - 286p
5, 치아는 안녕하십니까? - 292p
9장 다시 시작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1, 나이 때문에 - 300p
2, 가방끈이 짧아서 - 306p
3, 나는 기계치입니다. - 312p
4, 꿈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 318p
마치는 글 - 324p
Author
김명심
사립문만 나서면 푸른 바다가 앞마당처럼 펼쳐진 바닷가 마을에서 육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보릿고개로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학구열이 강한 부모님의 열성으로 초등학교를 마칠 수가 있었다. 상급학교는 꿈도 꿀 수가 없었다. 24세에 결혼하여 두 아들의 엄마로 평탄한 전업주부의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 평안은 오래가지 못했다. 52세였던 남편은 급성 백혈병으로 입원한지 보름 만에 두 아들과 운영한 철물점을 남기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내게도 꿈이 있었다. 동화작가나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장사를 하면서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시간만 있으면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낮에는 장사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여 중학교 검정고시와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였다. 그 길로 한국통신대학 공부를 하였다. 장사하면서 손님들의 상담을 많이 하였기에 상담공부를 하고 싶었다. 연세대신학대학원 상담코칭 공부를 하였다. 그것도 갈급했다.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 시 창작 공부도 하였다. 동화작가나 소설가가 되려면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서울 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소원인 대학의 꿈을 이룬 것이다. 꼭 동화작가나 소설가가 되지 못할지라도 석양의 빛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예쁘고 달달하게 익어가고 싶다.
사립문만 나서면 푸른 바다가 앞마당처럼 펼쳐진 바닷가 마을에서 육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보릿고개로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학구열이 강한 부모님의 열성으로 초등학교를 마칠 수가 있었다. 상급학교는 꿈도 꿀 수가 없었다. 24세에 결혼하여 두 아들의 엄마로 평탄한 전업주부의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 평안은 오래가지 못했다. 52세였던 남편은 급성 백혈병으로 입원한지 보름 만에 두 아들과 운영한 철물점을 남기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내게도 꿈이 있었다. 동화작가나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장사를 하면서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시간만 있으면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낮에는 장사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여 중학교 검정고시와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였다. 그 길로 한국통신대학 공부를 하였다. 장사하면서 손님들의 상담을 많이 하였기에 상담공부를 하고 싶었다. 연세대신학대학원 상담코칭 공부를 하였다. 그것도 갈급했다.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 시 창작 공부도 하였다. 동화작가나 소설가가 되려면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서울 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소원인 대학의 꿈을 이룬 것이다. 꼭 동화작가나 소설가가 되지 못할지라도 석양의 빛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예쁘고 달달하게 익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