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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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7/12/26
Pages/Weight/Size 140*210*12mm
ISBN 9791162201466
Categories 인문 > 서양철학
Description
시대를 뛰어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한 악마’라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비난은 르네상스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러서도 완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마키아벨리즘’, ‘마키아벨리스트’ 등과 같은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나타낼 정도로 그의 이미지는 확대되고 재생산되었다. 더불어 그의 저서들 역시 금서로 지정될 정도로 배척당했다. 『군주론』은 정치 행위가 종교적 규율이나 전통적인 윤리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생각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위즈덤하우스에서 발간한 시리즈 〈완역에서 완독까지〉의 첫 책으로,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 다양한 영문판본 및 이태리어판본을 참고했다.
Contents
옮긴이 서문
《군주론》 어떻게 끝까지 읽을 것인가

헌정사 로렌초 데 메디치 대인께
1장 군주국의 종류와 획득 방법
2장 세습 군주국
3장 혼합 군주국
4장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정복한 다리우스의 왕국에서,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 그 계승자들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5장 병합되기 전에 자기 고유의 법에 따라 살고 있었던 도시나 군주국을 통치하는 방법
6장 자신의 군대와 능력virtu 으로 획득한 신생 군주국
7장 다른 사람의 군대와 운으로 얻은 신생 군주국
8장 악행을 통해 군주국을 획득한 사람들
9장 시민 군주국
10장 군주국의 힘을 측정하는 방법
11장 교회 군주국
12장 군대의 종류와 용병
13장 원군, 혼합군, 자신의 군대
14장 군대와 관련하여 군주가 해야 할 일
15장 사람들, 특히 군주는 무엇 때문에 칭송되거나 비난받는가
16장 후함과 인색함
17장 잔인함과 동정심,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과 사랑받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은가
18장 군주가 신의를 지키는 방법
19장 경멸과 미움을 피하는 방법
20장 군주들이 흔히 이용하는 요새와 그 밖의 장치들은 유익한가
21장 군주는 존경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22장 군주의 비서관들
23장 아첨꾼을 피하는 방법
24장 이탈리아의 군주들이 그들의 국가를 잃은 이유
25장 인간사에서 운명의 역할과 그것에 맞서는 방법
26장 이탈리아를 장악해 야만인들로부터 해방할 것을 촉구함
Author
니콜로 마키아벨리,김종원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 이탈리아(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자 군사 전략가였으나, 말년의 저술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변변치 않은 교육 환경에서 홀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말직으로 근무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80인회의 사무국의 서기에 임명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곧 10인군사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서기를 맡았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사망으로 통치력 부재 상황을 맞았을 때,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국운이 풍전등화인 피렌체를 살려내려고 강대국 사이를 필사적으로 오갔고, 국제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목격하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황청에 사절로 파견갔다가 만난 발렌티노 공작(체사레 보르자)에게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줄 강력한 신생군주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체사레는 맥없이 병사해버렸다. 마키아벨리는 시민군 양성을 추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메디치 가문이 군주로 돌아오자 공화국의 일꾼이었던 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후 특별사면을 받고 나와서 새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필요한 경우에는 비도덕적인 수단도 행사해서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가 되어라’는 조언을 담은 『군주론』을 썼다.

1506년에 피렌체 시민군의 조직을 계획하여 이듬해 9인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어 피렌체의 정복 전쟁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책임을 맡았다. 1512년에 공직을 떠난 그는 산 카스치아노 근처의 저택에서 집필하며 루첼라이 가문의 소유인 오르티 오리첼라리 정원에서 여러 문인을 만났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요청을 받아 주로 통치론에 관한 글을 써 권력자들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1527년에 사망했다.

대표 저서로는 『군주론』을 포함하여 『카스트루치오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결혼한 악마 벨파고르』, 『리비우스 역사 논고』, 『만드라골라』, 『우리나라의 언어에 관한 연구 또는 대화』, 『이탈리아 10년사: 1494~1504』, 『전술론』, 『카피톨리』, 『클리치아』, 『트리시노』, 『프랑스 사정기事情記』, 『피렌체 정부 개혁론』, 『피렌체사』, 『황금 나귀』, 『후회에 대한 권고』 등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 이탈리아(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자 군사 전략가였으나, 말년의 저술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변변치 않은 교육 환경에서 홀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말직으로 근무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80인회의 사무국의 서기에 임명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곧 10인군사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서기를 맡았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사망으로 통치력 부재 상황을 맞았을 때,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국운이 풍전등화인 피렌체를 살려내려고 강대국 사이를 필사적으로 오갔고, 국제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목격하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황청에 사절로 파견갔다가 만난 발렌티노 공작(체사레 보르자)에게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줄 강력한 신생군주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체사레는 맥없이 병사해버렸다. 마키아벨리는 시민군 양성을 추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메디치 가문이 군주로 돌아오자 공화국의 일꾼이었던 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후 특별사면을 받고 나와서 새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필요한 경우에는 비도덕적인 수단도 행사해서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가 되어라’는 조언을 담은 『군주론』을 썼다.

1506년에 피렌체 시민군의 조직을 계획하여 이듬해 9인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어 피렌체의 정복 전쟁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책임을 맡았다. 1512년에 공직을 떠난 그는 산 카스치아노 근처의 저택에서 집필하며 루첼라이 가문의 소유인 오르티 오리첼라리 정원에서 여러 문인을 만났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요청을 받아 주로 통치론에 관한 글을 써 권력자들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1527년에 사망했다.

대표 저서로는 『군주론』을 포함하여 『카스트루치오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결혼한 악마 벨파고르』, 『리비우스 역사 논고』, 『만드라골라』, 『우리나라의 언어에 관한 연구 또는 대화』, 『이탈리아 10년사: 1494~1504』, 『전술론』, 『카피톨리』, 『클리치아』, 『트리시노』, 『프랑스 사정기事情記』, 『피렌체 정부 개혁론』, 『피렌체사』, 『황금 나귀』, 『후회에 대한 권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