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 ‘4세 고시’라는 게 있다. 유명한 영어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해 치르는 ‘레벨테스트’를 지칭하는 말로, 알파벳 대문자를 읽고 쓰고 간단한 영어회화를 주고받는 ‘레테’를 위해 4세 유아들이 고시에 준할 정도로 수험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영유’에 얽힌 괴담은 이뿐만이 아니다. 설사 입학에 성공한다 해도 너무 빠른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별도로 보습학원을 또 다녀야 한다나. 남들보다 한발 앞서기 위해 시작한 선행학습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빨리 갖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 모든 사람들이 남보다 앞서 나아가려고 인정사정없이 옆 사람을 제치고 나서는 사회에서는 어린이도 예외가 될 수 없는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어린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일지도.
강정연의 『바빠가족』은 경쟁과 자기계발이 내면화된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유쾌한 판타지 소동극이다. 주인공은 즐거운시 행복구 여유로 82번길에 사는 ‘바빠가족’. 엄마·아빠·딸·아들로 구성되어 있는 가족으로 도로명 주소와 달리 어느 모로 보나 단란하지도 않고 멀쩡하지도 않다. 하루 종일 핸드폰으로 ‘살림하는 아빠’라는 유튜브를 보며 따라하기 바쁜 비교해씨, 회사일을 해내는 틈틈이 상사에게 아부하느라 정신없는 유능여사,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선망한다고 믿으며 우아한 여학생이 되기 위해 분주한 우아한양, 누가 맡기지도 않은 일을 재빨리 해치우고 잘난 척하는 다잘난군, 바빠가족은 너무나 바빠서 서로 대화는커녕 얼굴도 볼 시간이 없다. 바쁘게 사는 것이 지상 최대 과제라도 되는 것 같지만 누가 억지로 시키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욕심 부리며 살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문제가 생긴 것은 다잘난군이 축구를 하러 나갔다가 운동장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면서부터다. 다잘난군의 발 끝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곰처럼 커다랗고 폭탄머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깜짝 놀라서 도움을 청해 보지만 너무나 바쁜 엄마, 아빠, 누나는 다잘난군에게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다. 게다가 가만 보니 다잘난군뿐 아니라 바빠가족 모두 그림자가 뒤죽박죽 바뀌어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한밤중 잠 못 들고 깨어 있던 다잘난군에게 비밀스러운 속삭임이 들려온다. “우리 그냥 ‘그 방법’을 써요! 우리는 너무나 오래 참아왔어요. 우리는 지금 피곤에 절어 있어요. 이대로 나가다간 우리도 ‘더바빠가족’ 그림자들처럼 까만 가루로 부서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 거예요!” 알고 보니 바빠가족의 그림자들이 너무나 바쁜 바빠가족을 따라다니다가 지친 나머지 일종의 파업을 시도한 것이다. 그림자들이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Contents
바빠가족 5
다잘난군에게 무슨 일이? 9
제발 내 말 좀 들어 주세요! 21
한밤중의 회의 36
이제 제 말을 믿으시겠어요? 47
뜻하지 않은 휴가 61
드디어 만나다! 78
그림자들과의 한판 89
어쩔 수 없잖아 105
바빠가족이 흘려보낸 아까운 시간들 115
소풍 136
작가의 말 144
Author
강정연,정진희
2004년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가가 되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바빠 가족』 『건방진 도도군』 『분홍 문의 기적』 『콩닥콩닥 짝 바꾸는 날』 『액체 고양이 라니』, 그림책 『무지개떡 괴물』 『고것 참 힘이 세네』 『길어도 너무 긴』, 동시집 『섭섭한 젓가락』 『레인보우의 비밀 동시집』 등이 있습니다. 온 가족 팟캐스트 [침 튀겨도 괜찮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04년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가가 되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바빠 가족』 『건방진 도도군』 『분홍 문의 기적』 『콩닥콩닥 짝 바꾸는 날』 『액체 고양이 라니』, 그림책 『무지개떡 괴물』 『고것 참 힘이 세네』 『길어도 너무 긴』, 동시집 『섭섭한 젓가락』 『레인보우의 비밀 동시집』 등이 있습니다. 온 가족 팟캐스트 [침 튀겨도 괜찮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