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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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1/12/15
Pages/Weight/Size 188*257*30mm
ISBN 9791160870879
Categories 인문 > 독서/비평
Description
위험한 도덕 혁명가 니체 초기 대표작이자 미학사의 고전

독불전쟁의 포성이 울리던 중에 쓰인 이 책은 그리스 비극이 죽음을 맞는 것은 소크라테스와 그의 낙관적 이론을 계승한 에우리피데스 때문이고, 비극이 재탄생하는 것은 바흐, 베토벤을 계승한 바그너 음악을 통해서라고 주장한다. 결국 이 책의 요지는 무엇보다도 문화가 가장 중요하고, 소름 끼치는 삶에 접근하려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균형을 기하는 것이 필요하고, 예술, 그중에서 음악, 그것도 바그너 음악을 통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니체는 “도덕 자체가 데카당의 징후라는 것은 인식의 역사에서 새롭고도 유일한 제1급 인식이다”라고 말하면서, 서구의 문화적 전통이 너무 ‘아폴론적’인 것에 치우쳐 있다고 비판한다. 그것이 지나치게 이성 중심적이고 개념 위주라는 것이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적 원리에 대한 니체의 강조는 칸트의 미학적 전통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니체는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된 이런 전통의 영향으로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알렉산드리아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는 이러한 전통에 반대하며, 서구의 또 다른 전통을 찾아내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 비극에서 시작되는 ‘디오니소스적’인 전통이다. 『비극의 탄생』이라는 디오니소스적 분출을 통해 니체는 세상에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주의, 이론적 세계관 그리고 학문을 공격함으로써 스스로 비극적 주인공이 되는 길을 걸었다.
Contents
옮긴이의 글
자기비판의 시도
리하르트 바그너에게 바치는 서문

1.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2. 아폴론적인 꿈의 예술가와 디오니소스적인 도취의 예술가
3. 아폴론적 문화
4. 아폴론적 그리스인
5. 미적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되는 현존과 세계
6. 의지로서 현상하는 음악
7. 그리스 비극의 기원
8. 그리스 비극의 합창단
9. 프로메테우스의 이중적 본질
10. 비극의 주인공 디오니소스
11.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
12. 미학적 소크라테스주의의 본질
13. 소크라테스의 의도를 따른 에우리피데스
14. 비극 예술에 적대적인 소크라테스
15. 아이스킬로스 비극을 물리치는 소크라테스주의
16. 음악 정신에서 생겨나는 비극
17. 이론적 세계관과 비극적 세계관 사이에 영원한 투쟁
18. 흔들리는 소크라테스적인 문화
19. 독일 철학과 음악을 통한 비극의 재탄생
20. 디오니소스적 삶과 비극의 재탄생-뒤러의 기사 쇼펜하우어
21. 깨지고 파괴된 아폴론적 기만
22. 비극의 재탄생과 함께 태어나는 미적 청중
23. 독일 음악을 통한 독일 신화의 재탄생
24. 음악과 신화 사이의 친화력
25. 디오니소스적 능력의 표현인 음악과 신화

해설: 니체의 삶과 『비극의 탄생』, 주요 저작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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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프리드리히 니체,홍성광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편두통과 위통에 시달리는 데다가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10년간 호텔을 전전하며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이탈리아에서 여름에는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지내며 종교, 도덕 및 당대의 문화,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비평을 썼다. 그러던 중 1889년 초부터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다가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는 인간에게 참회, 속죄 등을 요구하는 기독교적 윤리를 거부했다. 본인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규범과 사상을 깨려고 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와 세계의 지배자인 초인(超人)에 이를 존재로 보았다. 초인은 전통적인 규범과 신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의미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집대성됐고 철학은 철학 분야를 넘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비극의 탄생』(1872)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고찰했으며, 『반시대적 고찰』(1873~1876)에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문화의 이상으로 하였다. 이 사상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에서 더 한층 명백해져, 새로운 이상에의 가치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여명』(1881) 『즐거운 지혜』(1882)에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펴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하여 긍정적인 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 외에 『선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학』(1887)에 이어 『권력에의 의지』를 장기간 준비했으나 정신이상이 일어나 미완으로 끝났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편두통과 위통에 시달리는 데다가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10년간 호텔을 전전하며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이탈리아에서 여름에는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지내며 종교, 도덕 및 당대의 문화,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비평을 썼다. 그러던 중 1889년 초부터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다가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는 인간에게 참회, 속죄 등을 요구하는 기독교적 윤리를 거부했다. 본인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규범과 사상을 깨려고 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와 세계의 지배자인 초인(超人)에 이를 존재로 보았다. 초인은 전통적인 규범과 신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의미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집대성됐고 철학은 철학 분야를 넘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비극의 탄생』(1872)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고찰했으며, 『반시대적 고찰』(1873~1876)에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문화의 이상으로 하였다. 이 사상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에서 더 한층 명백해져, 새로운 이상에의 가치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여명』(1881) 『즐거운 지혜』(1882)에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펴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하여 긍정적인 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 외에 『선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학』(1887)에 이어 『권력에의 의지』를 장기간 준비했으나 정신이상이 일어나 미완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