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의 한 작은 마음의 목동 베레미즈 사미르가
풀어나가는 인생과 수학에 대한 재미있는 모험 이야기
『셈도사 베레미즈의 모험』은 ‘아라비안 나이트’가 지닌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에 가벼운 터치로 수학을 재미있게 덧입혔다. 이국적인 페르시아의 향기와 바람을 느끼며 베레미즈와 재미있는 여행을 떠나다 보면 어느새 수학이란 바다에 빠졌다가 나왔음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재미있고 친근하게 읽을 수 있다. 35마리의 낙타를 셋으로 나누기 위해 싸우는 아랍 형제, 황금거위 여관의 숙박료를 둘러싼 수수께끼, 행복한 결혼을 위해 떠나던 릴리바티의 운명을 뒤바꾼 진주 한 알, 아름다운 공주는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세 왕자의 싸움 등 천부적인 수학 능력을 지닌 베레미즈는 현자들조차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명쾌하게 해결하는데……
Author
말바 타한,이혜경
브라질의 저명한 수학교사이자 작가. 본명은 줄리오 세자르 데 멜로와 수자(Julio Cesar de Mello e Souza)로 69권의 소설과 51권의 수학책을 썼다. 그는 가상의 인물인 말바 타한이란 필명으로 책을 출간했는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셈도사 베레미즈의 모험』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줄리오는 우연히 작문 실력이 모자란 친구를 대신해 숙제를 하면서 본격적인 글쓰기에 들어섰다. 23세 때부터 신문사와 협력하여 가명으로 글을 발표했는데 줄리오는 단순히 가명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기회를 활용해서 하나의 완전한 인물을 창조해낸, 뛰어난 상상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7년이란 세월 동안 아랍어와 아랍문화를 공부하고 신문사와 기획하여 『셈도사 베레미즈의 모험』의 전신이 ‘1001밤의 문제’를 연재하게 된다. 그는 이 책의 번역자를 브레노 알렌카르 비앙코라는 교수가 주해가 딸린 번역본을 출간하는 등 말바 타한이라는 완벽한 한 인물을 창조해냈다. 특히 말바 타한의 자서전까지 출판하여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한다. 선구적인 수학 교사이자 탁월한 이야기꾼인 줄리오는 모두가 두려워하던 수학을 자신만의 놀이를 통한 교수법을 고안해 냈다. 자신이 살던 시대보다 훨씬 앞서 가던 그는 지루하게 말로만 설명하던 당시의 교훈적인 교수법을 “침만 튀기는 혐오스러운 방법”이라고 혹평했다. 또한 “수학교사들은 사디스트들이다. 그들은 모든 것들을 복잡하게 만드는 데서 희열을 느낀다.”고 수학자들을 공격했다. 줄리오 세자르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책을 통해 또 2천 회가 넘는 강의를 하면서 수학 시간에 놀이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다른 교사들은 말로 설명하고 칠판을 사용했던 반면 그는 창의력과 동기가 부여된 공부, 그리고 사물의 활용에 의존했다. 그의 수업은 분주하고 재미있었다. 그의 수업을 열정적인 배우가 연기를 하듯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교육자로서의 그의 명성이 널리 퍼져 나가면서 전국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그러다 1974년 6월 18일 레시페에서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산술의 역사에 관한 강의를 마지막으로 사망했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에 대해 추모식을 원하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검은 상복은 엄숙함의 옷을 입는 자들의 허식일 뿐이다. 나의 추모식은 그리움이며, 그리움에는 색깔이 없다.”
브라질의 저명한 수학교사이자 작가. 본명은 줄리오 세자르 데 멜로와 수자(Julio Cesar de Mello e Souza)로 69권의 소설과 51권의 수학책을 썼다. 그는 가상의 인물인 말바 타한이란 필명으로 책을 출간했는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셈도사 베레미즈의 모험』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줄리오는 우연히 작문 실력이 모자란 친구를 대신해 숙제를 하면서 본격적인 글쓰기에 들어섰다. 23세 때부터 신문사와 협력하여 가명으로 글을 발표했는데 줄리오는 단순히 가명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기회를 활용해서 하나의 완전한 인물을 창조해낸, 뛰어난 상상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7년이란 세월 동안 아랍어와 아랍문화를 공부하고 신문사와 기획하여 『셈도사 베레미즈의 모험』의 전신이 ‘1001밤의 문제’를 연재하게 된다. 그는 이 책의 번역자를 브레노 알렌카르 비앙코라는 교수가 주해가 딸린 번역본을 출간하는 등 말바 타한이라는 완벽한 한 인물을 창조해냈다. 특히 말바 타한의 자서전까지 출판하여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한다. 선구적인 수학 교사이자 탁월한 이야기꾼인 줄리오는 모두가 두려워하던 수학을 자신만의 놀이를 통한 교수법을 고안해 냈다. 자신이 살던 시대보다 훨씬 앞서 가던 그는 지루하게 말로만 설명하던 당시의 교훈적인 교수법을 “침만 튀기는 혐오스러운 방법”이라고 혹평했다. 또한 “수학교사들은 사디스트들이다. 그들은 모든 것들을 복잡하게 만드는 데서 희열을 느낀다.”고 수학자들을 공격했다. 줄리오 세자르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책을 통해 또 2천 회가 넘는 강의를 하면서 수학 시간에 놀이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다른 교사들은 말로 설명하고 칠판을 사용했던 반면 그는 창의력과 동기가 부여된 공부, 그리고 사물의 활용에 의존했다. 그의 수업은 분주하고 재미있었다. 그의 수업을 열정적인 배우가 연기를 하듯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교육자로서의 그의 명성이 널리 퍼져 나가면서 전국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그러다 1974년 6월 18일 레시페에서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산술의 역사에 관한 강의를 마지막으로 사망했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에 대해 추모식을 원하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검은 상복은 엄숙함의 옷을 입는 자들의 허식일 뿐이다. 나의 추모식은 그리움이며, 그리움에는 색깔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