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계는 하나가 죽어야 끝이 나는 것 같아”
“그리고 또 어떤 관계는 죽어야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아”
폭력의 한가운데를 돌파하는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최정나의 문제작
“현실의 허구성과 가상성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소설”(이장욱 소설가)임을 보여주고, “경계를 넘나드는 유체적인 상상력”(신형철 평론가)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은 작가, 최정나. 개성적인 문체와 연극적 형식을 통해 사실과 허구,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끊임없이 탐색해온 그가 이번에는 “폭력의 객체와 주체의 완벽한 전복”(김이설 소설가)을 선보인다. 『로아』는 작가정신 ‘소설, 향’ 시리즈의 열 번째 작품이자 최정나 작가의 첫 중편소설로, 모두가 피해자를 자처하고 가해자는 없는 세계 속 폭력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나’(로아)는 지금,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폭행을 당해 병실에 누워 있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뒤로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나는 그동안 회피했던 기억을 마주하기로 한다. 그리고 나는 현재를 바라보기 위해, 나를 둘러싼 세계에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똑똑히 보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 날마다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제대로 바라볼 수조차 없이 두려운 존재였던 언니, 상은이 되어.
피해자인 화자가 가해자로 분해 서술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아동학대는 양육자의 ‘방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힘주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소설은 읽는 자로 하여금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학대의 참상을 그대로 목도하게끔 이끄는데 폭력이 왜,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또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지 집요하게 파고들어 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정폭력과 학교폭력, 신체적·물리적 폭력과 언어적·정신적 폭력이 얽히고설킨 광경이 펼쳐진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훈육과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휘두르는 폭력, 묵과하고 방조하기에 더욱 확대되는 폭력, 가장 연약하고 힘없는 존재에게 가해지는 폭력. 『로아』는 현실에서 수없이 접하면서도 매번 충격을 주는 그러한 폭력의 지점들이 견고하게 맞물려 있음을, 믿기 어렵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이러한 사건들이 의식의 사각지대에서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가리켜 보인다.
『로아』의 발문을 쓴 김이설 소설가는 “소설이 가해자를 이해하는 근거가 되거나, 폭력을 합리화하는 동기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이 소설이 “폭력의 속성을 닮았으나 가해자의 변명이 아니라 피해자의 증언”임을 짚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로아』를 읽어야 할 당위성과 의미”를 갖추게 된다면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아프게 읽을 수밖에 없는 소설, 『로아』. 『로아』의 안에서, 그리고 『로아』의 바깥에서 수많은 ‘로아들’은 그럼에도 누군가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기를, 힘겹지만 부디 주목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랄 것이다.
Contents
작가의 말
불가능한 재현을 시도하며
로아
발문
폭력을 이해하지 않기 위해서 - 김이설(소설가)
Author
최정나
1974년생. 201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전에도 봐놓고 그래」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단편소설 「한밤의 손님들」로 2018년 제9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1974년생. 201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전에도 봐놓고 그래」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단편소설 「한밤의 손님들」로 2018년 제9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