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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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6020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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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9/11/15
Pages/Weight/Size 257*217*138mm
ISBN 9791160201048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Description
원전에 가장 충실한 정본 완역본!
이야기하듯 풀어낸 삼장 일행의 기상천외한 여행기!

중국문학 연구와 대중화에 앞장서온 홍상훈 교수와 공동 번역자들은 풍부한 자료 조사와 깔끔한 번역을 바탕으로 그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원전 『서유기西遊記』를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익히 알고 있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아닌 전혀 다른 성격의 그들을 만나게 된다.

이번 솔출판사의 『서유기』는 창작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한편 다양한 판본 비교를 통해 원전 『서유기』의 내용을 온전히 되살렸다. 이를 통해 중생 구제를 위해 불경을 찾으러 떠난다는 도식적인 주제 너머의 핵심적인 내용, 즉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을 둘러싼 흥미로운 다양한 에피소드와 더불어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리 인간의 현세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Contents
1권

제1회 손오공, 돌에서 태어나다 | 제2회 보리조사께 술법을 배우다 | 제3회 여의봉을 얻고 불사의 몸이 되다 | 제4회 하늘에 대항하여 제천대성이 되다 | 제5회 천도복숭아를 훔쳐 먹고 하늘에서 난동을 피우다 | 제6회 현성이랑신에게 붙잡혀 하늘로 끌려가다 | 제7회 석가여래에게 붙잡혀 오행산에 갇히다 | 제8회 관음보살이 성승을 찾아가다가 세 제자를 안배하다 | 부록회 삼장법사의 출신과 복수 | 제9회 경하 용왕, 죽을죄를 짓고 당 태종에게 구원을 청하다 | 제10회 당 태종, 저승에 갔다가 환생하다

2권

제11회 당 태종, 불교를 장려하고 수륙대회를 열게 하다 | 제12회 관음보살, 문둥이 중으로 변하여 삼장법사를 만나다 | 제13회 삼장법사, 쌍차령에서 첫 번째 고난을 당하다 | 제14회 손오공, 삼장법사의 제자가 되다 | 제15회 삼장법사, 용마를 얻다 | 제16회 관음선원에서 금란가사를 잃다 | 제17회 흑풍산 요괴에게서 금란가사를 되찾다 | 제18회 고로장의 요괴 사위 | 제19회 운잔동에서 저팔계를 거둬들이다 | 제20회 삼장법사, 황풍령에서 납치되다

3권

제21회 영길보살, 황풍 요괴를 붙잡다 | 제22회 목차의 도움으로 사오정을 거두다 | 제23회 네 보살이 삼장법사 일행을 시험하다 | 제24회 손오공, 오장관에서 인삼과를 훔치다 | 제25회 진원대선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르다 | 제26회 관음보살이 인삼과 나무를 살리다 | 제27회 손오공, 내쫓기다 | 제28회 삼장법사, 황포 요괴에게 납치되다 | 제29회 보상국 공주의 편지를 전하다 | 제30회 저팔계, 손오공을 다시 데리러 가다

4권

제31회 저팔계, 손오공을 찾아가 화해하다 | 제32회 저팔계, 은각대왕에게 사로잡히다 | 제33회 손오공, 속임수로 요괴의 보물을 빼앗다 | 제34회 손오공, 꾀를 써서 곤경에서 벗어나다 | 제35회 태상노군이 요괴를 거두어 가다 | 제36회 보림사에서 하룻밤을 묵다 | 제37회 오계국 왕이 삼장법사에게 구원을 요청하다 | 제38회 우물 속 왕의 시신을 구하다 | 제39회 문수보살이 사자를 거두어 가다 | 제40회 홍해아가 삼장법사를 납치하다

5권

제41회 손오공, 홍해아의 불길에 쩔쩔매다 | 제42회 관음보살이 홍해아를 거둬들이다 | 제43회 흑수하의 악어 요괴 | 제44회 손오공이 탄압받는 승려들을 구하다 | 제45회 제천대성이 거지국에서 법력을 보이다 | 제46회 손오공, 술법을 겨뤄 요괴들의 정체를 밝히다 | 제47회 통천하에서 길이 막히다 | 제48회 영감대왕이 강을 얼려 삼장법사를 납치하다 | 제49회 관음보살이 대바구니 들고 나타나 요괴를 거둬 가다 | 제50회 삼장법사가 스스로 요괴의 덫으로 들어가다

6권

제51회 독각시대왕의 고리에 하늘신들이 무기를 빼앗기다 | 제52회 석가여래가 요괴의 정체를 암시하다 | 제53회 삼장법사, 임신하다 | 제54회 여인국 여왕이 삼장법사를 유혹하다 | 제55회 삼장법사, 전갈 요괴의 유혹을 물리치다 | 제56회 삼장법사, 다시 손오공을 내쫓다 | 제57회 가짜 손오공이 삼장법사를 해치다 | 제58회 진짜와 가짜 손오공이 서로 싸우다| 제59회 화염산에서 길이 막히다 | 제60회 손오공, 우마왕으로 변장해 파초선을 얻다

7권

제61회 파초선을 얻어 화염산의 불을 끄다 | 제62회 삼장법사, 제새국의 불탑을 청소하다 | 제63회 구두충을 물리치고 보물을 되찾다 | 제64회 삼장법사, 목선암에서 시를 논하다 | 제65회 황미대왕, 가짜 소뇌음사를 세워 함정을 파다 | 제66회 미륵불의 도움으로 황미 요괴를 사로잡다 | 제67회 타라장을 구하고 희시동을 벗어나다 | 제68회 손오공, 주자국 왕을 진맥하다 | 제69회 요괴에게 납치된 왕비를 구하다 | 제70회 손오공, 계책으로 자금령을 훔치다

8권

제71회 손오공이 가짜 이름으로 요괴를 무찌르다 | 제72회 반사동의 거미 요괴 | 제73회 삼장법사, 다목 요괴의 독에 당하다 | 제74회 사타동의 세 요괴 | 제75회 손오공, 음양병을 뚫고 도망치다 | 제76회 손오공, 요괴의 배 속에 들어앉아 굴복시키다 | 제77회 석가여래가 요괴들을 귀의시키다 | 제78회 비구국에서 아이들을 구해주다 | 제79회 남극성이 요괴를 데려가다 | 제80회 삼장법사, 여자 요괴를 구하여 선림사에 묵다

9권

제81회 요괴가 승려들을 잡아먹다 | 제82회 미녀 요괴가 삼장법사를 유혹하다 | 제83회 손오공이 요괴의 정체를 밝히다 | 제84회 삼장법사 일행이 멸법국에서 상자에 갇히다 | 제85회 손오공, 저팔계를 골탕 먹이다 | 제86회 남산대왕을 물리치다 | 제87회 손오공, 봉선군에 비를 내려주다 | 제88회 손오공 삼 형제, 제자를 받아들이다 | 제89회 손오공 삼 형제, 무기를 도둑맞다 | 제90회 태을구고천존이 구령원성을 제압하다

10권

제91회 삼장법사, 쇠머리 귀신에게 납치되다 | 제92회 청룡산에서 코뿔소 요괴를 잡다 | 제93회 삼장법사가 요괴 공주의 배필로 낙점되다 | 제94회 삼장법사, 어화원에서 잔치를 즐기다 | 제95회 공주로 변신한 옥토끼를 사로잡다 | 제96회 구원외가 삼장법사를 환대하다 | 제97회 삼장법사, 도둑 누명을 쓰다 | 제98회 삼장법사, 석가여래를 배알하다 | 제99회 여든한 개의 고난을 모두 끝내다 | 제100회 다섯 성인이 진인이 되다
Author
오승은,홍상훈
자 여충(汝忠), 호 사양산인(射陽山人).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서유기』의 작가로, 시문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고 풍격이 있으며 해학성이 강한 글을 쓰기로 유명하다. 중국 명나라 효종~세종 대의 문학가이다. 자는 여충(汝忠)이고 호는 사양거사(射陽居士)이며,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 지역에 해당하는 산양현(山陽縣) 출신이다.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학관(學官)을 지낸 선비 가문이었으나, 부친 대에 와서는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총기가 뛰어나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젊은 시절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을 거듭하다가, 50세가 되어서야 성시(省試)에 급제하여 공생(貢生)이 되었다. 시문詩文뿐 아니라 당시 선비들이 혐오하던 소설도 많이 썼던 그는 어릴 때부터 기이한 소설을 즐겨 읽어서 서당의 훈장에게 꾸중도 많이 들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소설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글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면서도 풍격이 있고, 해학성이 강한 잡기(雜記)로 유명하다.

가정 29년부터 약 10년 동안 남경南京의 국자감國子監에 들어가서 공부했고, 가정 45년에 장흥현승長興縣丞으로 임명되나, 두 해가 지나지 않아 탐관貪官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풀려나 다시 형부기선荊府記善의 벼슬을 받았으나 결국 부임하지 않고 사퇴한 후에 회안부로 돌아가 의기소침한 채 시문을 지으며 만년을 보냈다.

60여 세 나이로 겨우 동남부 지방의 일개 현승(縣丞)이라는 미관말직에 부임하였으나, 그것도 2년 만에 사직하고 물러나 7년 동안의 관리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돌아와 시와 술로 불우한 만년을 보내다가 자손 없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지난 1981년 중국정부 당국이 오승은의 무덤을 발굴 조사한 적이 있는데, 관 뚜껑에 '형왕부 기선(荊王府紀善)'이란 묘지명이 적힌 것으로 보아, 말년에 후베이성(湖北省) 일대의 영주였던 어느 왕실에서 예법을 가르치는 한직(閒職)에 종사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정부 당국은 그때 발견된 두개골을 감정 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오승은의 상반신 입체 조각상을 빚어 세워, 『서유기』의 진정한 '저자'로 공인하였다고 한다.

전통적인 유학 교육을 받았고, 고전 양식의 시와 산문에 뛰어났던 그는 평생을 청빈한 선비로 지내며, 구전과 민간 설화 등의 괴담에 각별한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것들이 서유기의 바탕이 되었으며, 서유기의 목판본은 그가 타계한지 10여 년 뒤인 1592년에 발간되었다. 『서유기』는 대체로 가정嘉靖 21~29년(1542~1550) 사이에 쓰고 그 후에도 조금씩 수정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저술에는 『서유기』 외에 장편 서사시 『이랑수산도가(二郞搜山圖歌)』와 지괴소설 『우정지서(禹鼎志序)』 등이 있다. 그는 후손이 없었던 탓에 죽은 후에 육촌 외손자가 그의 시문집인 『사양선생존고射陽先生存稿』와 사집詞集 『화초신편花草新編』을 출간해주었다.
자 여충(汝忠), 호 사양산인(射陽山人).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서유기』의 작가로, 시문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고 풍격이 있으며 해학성이 강한 글을 쓰기로 유명하다. 중국 명나라 효종~세종 대의 문학가이다. 자는 여충(汝忠)이고 호는 사양거사(射陽居士)이며,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 지역에 해당하는 산양현(山陽縣) 출신이다.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학관(學官)을 지낸 선비 가문이었으나, 부친 대에 와서는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총기가 뛰어나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젊은 시절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을 거듭하다가, 50세가 되어서야 성시(省試)에 급제하여 공생(貢生)이 되었다. 시문詩文뿐 아니라 당시 선비들이 혐오하던 소설도 많이 썼던 그는 어릴 때부터 기이한 소설을 즐겨 읽어서 서당의 훈장에게 꾸중도 많이 들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소설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글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면서도 풍격이 있고, 해학성이 강한 잡기(雜記)로 유명하다.

가정 29년부터 약 10년 동안 남경南京의 국자감國子監에 들어가서 공부했고, 가정 45년에 장흥현승長興縣丞으로 임명되나, 두 해가 지나지 않아 탐관貪官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풀려나 다시 형부기선荊府記善의 벼슬을 받았으나 결국 부임하지 않고 사퇴한 후에 회안부로 돌아가 의기소침한 채 시문을 지으며 만년을 보냈다.

60여 세 나이로 겨우 동남부 지방의 일개 현승(縣丞)이라는 미관말직에 부임하였으나, 그것도 2년 만에 사직하고 물러나 7년 동안의 관리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돌아와 시와 술로 불우한 만년을 보내다가 자손 없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지난 1981년 중국정부 당국이 오승은의 무덤을 발굴 조사한 적이 있는데, 관 뚜껑에 '형왕부 기선(荊王府紀善)'이란 묘지명이 적힌 것으로 보아, 말년에 후베이성(湖北省) 일대의 영주였던 어느 왕실에서 예법을 가르치는 한직(閒職)에 종사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정부 당국은 그때 발견된 두개골을 감정 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오승은의 상반신 입체 조각상을 빚어 세워, 『서유기』의 진정한 '저자'로 공인하였다고 한다.

전통적인 유학 교육을 받았고, 고전 양식의 시와 산문에 뛰어났던 그는 평생을 청빈한 선비로 지내며, 구전과 민간 설화 등의 괴담에 각별한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것들이 서유기의 바탕이 되었으며, 서유기의 목판본은 그가 타계한지 10여 년 뒤인 1592년에 발간되었다. 『서유기』는 대체로 가정嘉靖 21~29년(1542~1550) 사이에 쓰고 그 후에도 조금씩 수정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저술에는 『서유기』 외에 장편 서사시 『이랑수산도가(二郞搜山圖歌)』와 지괴소설 『우정지서(禹鼎志序)』 등이 있다. 그는 후손이 없었던 탓에 죽은 후에 육촌 외손자가 그의 시문집인 『사양선생존고射陽先生存稿』와 사집詞集 『화초신편花草新編』을 출간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