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진론·치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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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3/06/02
Pages/Weight/Size 128*188*20mm
ISBN 9791159319532
Categories 사회 정치 > 정치/외교
Description
중국 전한 시대의 문인이자 정치가로 활동한 가의의 '과진론'과 '치안책'을 번역했으며, 원문은 실려있지 않다. 중화서국에 발행한 〈사기〉의 '진시황본기'와 '진섭세기', 〈한서〉의 '가의열전'에 실린 텍스트를 번역대본으로 삼았다. 가의의 생애와 두 글의 의의를 다룬 해제를 함께 실었다. '과진론'은 〈고문진보〉에 실려 널리 알려진 글로, 제목을 풀이하면 '진나라의 잘못을 논함'이라고 옮길 수 있다. 가의는 '과진론'을 통해 진나라의 허물을 들추어내 통치의 거울을 삼도록 했다. '치안책'은 가의의 핵심 사상이 녹아 있는 글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Contents
- 들어가는 말

제1장 - 과진론

1. 상(上)
2. 중(中)
3. 하(下)

제2장 - 치안책

해제 - 한 제국의 신질서 구상
1. 가의와 그의 시대
(1) 전한 초기의 정치와 '제후왕'
(2) 짦은 조정 생활과 큰 활약
(3) 장사국, 양국의 태부 시절과 죽음
2. 〈과진론〉과 〈치안책〉에 나타난 가의의 사상
(1) 〈과진론〉 - 진의 혹정을 통치자의 거울로 제공
(2) 〈치안책〉 - 한나라의 새로운 틀 만들기
3. 진나라 역사 이야기
(1) 발생에서 천하 통일까지
(2) 진 시황제의 통일 정책
(3) 진의 이세황제 호해의 통치
(4) 진승, 오광의 반란
4. 가의 관련 연표
5. 가의 관련 지도

- 주
- 더 읽어야 할 자료들
- 옮긴이에 대하여
Author
가의,허부문
가의는 한 고조 7년(서기전 200년) 낙양에서 출생해 한 문제 12년(서기전 168년) 3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알려진 그는 18세 때 하남군수 오공(吳公)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나중에 장창(張蒼)에게 『좌전』을 배웠다. 오공의 추천으로 한 문제 때 박사(博士)로 초빙되고 이어서 태중대부가 되었다. 24세에 장사왕(長沙王) 오차(吳差)의 태부(太傅)로 좌천되었다가 서기전 174년 다시 수도로 올라와 양회왕(梁懷王) 유읍(劉揖)의 태부가 되었다. 서기전 169년 유읍이 입조하다 말에서 떨어져 죽자 가의는 스스로를 자책하다 이듬해 병사했다. 장창은 순자(荀子)의 제자고, 오공은 순자의 제자인 이사(李斯)의 제자이므로 가의는 순자의 학문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유가를 자임했으나 다른 사상 학파도 넘나들었다. 작품으로는 『신서』 58편, 『오조관제(五曹官制)』 5편, 『가의부(賈誼賦)』 7편, 『춘추좌씨전훈고(春秋左氏傳訓?)』 등이 있었다고 하나 모두 실전되고 지금은 『신서』 58편(그중 2편은 제목만 있음)과 부 5편 및 『한서』 「굴원가생전」에 있는 「진정사소(陳政事疏)」 등 몇몇의 주소(奏疏)만 전해지고 있다.
가의는 한 고조 7년(서기전 200년) 낙양에서 출생해 한 문제 12년(서기전 168년) 3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알려진 그는 18세 때 하남군수 오공(吳公)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나중에 장창(張蒼)에게 『좌전』을 배웠다. 오공의 추천으로 한 문제 때 박사(博士)로 초빙되고 이어서 태중대부가 되었다. 24세에 장사왕(長沙王) 오차(吳差)의 태부(太傅)로 좌천되었다가 서기전 174년 다시 수도로 올라와 양회왕(梁懷王) 유읍(劉揖)의 태부가 되었다. 서기전 169년 유읍이 입조하다 말에서 떨어져 죽자 가의는 스스로를 자책하다 이듬해 병사했다. 장창은 순자(荀子)의 제자고, 오공은 순자의 제자인 이사(李斯)의 제자이므로 가의는 순자의 학문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유가를 자임했으나 다른 사상 학파도 넘나들었다. 작품으로는 『신서』 58편, 『오조관제(五曹官制)』 5편, 『가의부(賈誼賦)』 7편, 『춘추좌씨전훈고(春秋左氏傳訓?)』 등이 있었다고 하나 모두 실전되고 지금은 『신서』 58편(그중 2편은 제목만 있음)과 부 5편 및 『한서』 「굴원가생전」에 있는 「진정사소(陳政事疏)」 등 몇몇의 주소(奏疏)만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