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 of Print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10.75
SKU
9791159316067

 

본 상품은 품절 / 절판 등의 이유로 유통이 중단되어 주문이 불가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Tue 12/10 - Mon 12/16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Thu 12/5 - Mon 12/9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21/03/18
Pages/Weight/Size 128*188*20mm
ISBN 9791159316067
Categories 인문 > 철학/사상
Description
인간에게 인간적인 삶을 돌려주고자 했던 치열한 고뇌의 산물

이 책은 1840년대 독일 사회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유대인 문제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시민사회를 변혁하고 진정한 인간 해방을 이루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이상이 반영된 저작이다. 마르크스는 유대인 문제 해결을 위해 종교의 폐지와 정치적 혁명을 제시한 브루노 바우어의 주장을 비판하며, 유대인을 유대인으로 존재하게 하는 시민사회의 구조를 변혁하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인간 해방은 성취되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다. 또한 프랑스 인권선언 및 미국 헌법이 주장하는 ‘보편적 인권’의 추상성과 공허함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 문헌이 발표된 지 17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가 인간 해방을 가로막는 근본 원인이라 지목한 문제인 만물 위에 군림하는 화폐, 자본 권력의 인간 착취, 인권선언의 공허함 등은 오히려 더 거대해진 몸집으로 여전히 인간을 억압하고 있다. 이것이 그의 비판과 사유가 현재까지도 유효한 이유이다. 독일의 관념 철학과 마르크스 사상 간의 연관성을 다년간 연구해온 역자의 지식과 성찰이 담긴 주와 충실한 해제가 원전을 한층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Contents
들어가는 말

제1장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제2장 오늘날의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자유롭게 될 능력

해제 - 오늘날 우리에게 유대인 문제란 무엇인가
1.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의 집필 배경
2. 종교적 해방, 정치적 해방, 그리고 인간적 해방
3. 누가 반反유대주의자인가?
4. 추상적 인권 개념에서 구체적 인권 담론으로
5. 오답들의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Author
카를 마르크스,김현
독일의 철학자, 경제학자, 사회이론가. 정치평론가, 노동운동의 주역이자, 자본주의와 종교 비판가.
독일 라인란트의 트리어Trier에서 변호사인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의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1835년부터 본과 베를린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예나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지만, 정치적인 성향으로 인해 교수직을 받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생계를 위해 1842년에 창간된 《라인 신문Rheinische Zeitung》의 편집장을 맡게 되었고, 이로써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라인 신문》은 곧 프로이센 정부의 검열정책에 의해 폐간당하고, 마르크스는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하여 파리로 이주하지만, 프랑스의 기조정권에 의해 추방당하고 벨기에로 향한다. 그는 1848년 벨기에에서 추방당한 후 독일의 라인란트로 돌아와 《신 라인 신문》을 창간하고 정치적 활동을 이어가지만, 1년 후 반란 선동죄로 법정에 서게 된다. 무죄선고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이미 프로이센의 시민권을 상실한 마르크스는 무국적자로서 라인란트에서 추방당하고 결국 프랑스를 거쳐 마지막 망명지인 영국에서 평생을 보내게 된다. 1861년에 《자본론 1》을 발표했고, 마르크스 사후에 엥겔스에 의해 그의 《자본론》이 완간되었다.
독일의 철학자, 경제학자, 사회이론가. 정치평론가, 노동운동의 주역이자, 자본주의와 종교 비판가.
독일 라인란트의 트리어Trier에서 변호사인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의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1835년부터 본과 베를린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예나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지만, 정치적인 성향으로 인해 교수직을 받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생계를 위해 1842년에 창간된 《라인 신문Rheinische Zeitung》의 편집장을 맡게 되었고, 이로써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라인 신문》은 곧 프로이센 정부의 검열정책에 의해 폐간당하고, 마르크스는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하여 파리로 이주하지만, 프랑스의 기조정권에 의해 추방당하고 벨기에로 향한다. 그는 1848년 벨기에에서 추방당한 후 독일의 라인란트로 돌아와 《신 라인 신문》을 창간하고 정치적 활동을 이어가지만, 1년 후 반란 선동죄로 법정에 서게 된다. 무죄선고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이미 프로이센의 시민권을 상실한 마르크스는 무국적자로서 라인란트에서 추방당하고 결국 프랑스를 거쳐 마지막 망명지인 영국에서 평생을 보내게 된다. 1861년에 《자본론 1》을 발표했고, 마르크스 사후에 엥겔스에 의해 그의 《자본론》이 완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