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세의 지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과 ‘의식’, 현대 사회 치유의 단초를 제시하다
『진리론』은 중세의 가장 위대한 성인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3대 대전 중 최후의 저술인《진리론Quaestiones Disputatae de Veritate》에서 ‘양심’과 ‘의식’에 관한 논의를 옮긴 것으로, 국내에는 처음 소개된다.
《진리론》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강의록을 기초로 작성된 것으로, 종교적·철학적 주제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관심사 등 전통적 사유에서는 잘 다루지 않았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주제를 포함하고 있으며, 강의에서 이루어진 토론을 반영하며 당대의 논쟁적이고 생생한 사유의 흐름을 보여준다.《진리론》저술의 바탕이 된 이 강의는 당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한 성직자들의 강한 거부감을 깊은 논의를 통해 해결해보자는 것과 특권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철학과 신학을 대중화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 저작은, 오랫동안 신학의 시녀로 오해되어왔으며 일반 독자가 접할 기회가 드물었던 중세철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여기서 논의된 수많은 항목 중에서 ‘양심’과 ‘의식’을 번역한 것은 철학이 현실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역자의 신념에서 비롯됐다. ‘양심’을 철학적 용어로 정립하고, 우리의 의식과 행위의 제일원리로 본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만의 탁월한 사유였다. 인간의 의식은 본질적으로 양심에 기초해 있으며, 양심이 의식을 형성하는 근본 원리라는 것이다. 양심과 의식을 구분하면서도 이 둘의 관계를 필연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이 책은 인간 행위의 존엄함과 자율적 인간의 토대를 마련해주며, 양심의 소리가 외면당하는 현대 사회의 비극을 치유할 단초를 제시하고 있다.
Contents
들어가는 말|이명곤
양심에 관하여
제1장 양심은 능력인가 습성인가?
제2장 양심이 죄를 지을 수 있는가?
제3장 양심이 소멸할 수도 있는가?
의식에 관하여
제1장 의식은 능력인가, 습성인가 혹은 행위인가?
제2장 의식은 오류를 범할 수 있는가?
제3장 인간 행위의 업적들은 의식에 구속되는가?
제4장 오류의 의식은 우리를 강제하는가?
제5장 중립적인 행위에 있어서 오류의 의식은 고위 성직자의 계율보다 더 강제적인가?
해제 - 절대적인 진리, 최후의 진리를 향한 중단 없는 추구 이명곤
1. 토마스 아퀴나스가 살았던 시대
(1) 격동의 13세기와 탁발 수도회
(2) 스콜라철학과 대학의 성립
2.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와 사상
(1) 생애와 인품
(2) 사상과 영성
(3) 절대론을 향한 중단 없는 여정
3. 3대 주요 저서와《진리론》
4.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의 현대적 의의
(1) 도덕 판단의 제일원리로서의 양심
(2)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인식으로서의 의식
주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Author
토마스 아퀴나스,이명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74)는 이탈리아 남부의 아퀴노(Aquino)라는 마을 근처 로카세카(Rocasecca) 성(城)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5세가 되던 해에 그는 근처의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 수도원에 봉헌되어 초등 교육을 받았으며, 14세에는 인근 나폴리 대학에 입학했다. 그곳 나폴리에서 새로운 탁발 수도회인 도미니코 수도회의 활동에 감명을 받아 수도회 총장의 뜻을 따라 당시 신학의 중심지인 파리 대학으로 가고자 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감금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파리에서 위대한 스승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밑에서 공부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1257년에는 보나벤투라(Bonaventura)와 함께 파리 대학 교수단에 받아들여졌다. 1259년 그는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로 돌아가 9년 동안 교황청 소속의 학원과 수도원 등에서 강의했으며, 1269~72년까지는 다시 파리 대학에서 강의했다. 이 시기에 그의 학문 활동은 절정에 이르렀는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정통한 주석자임을 자처하던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여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옹호했다. 교황에 의해 리옹 공의회에 초청되어 가던 도중, 포사노바의 한 시토회 수도원에서 1274년 3월 세상을 떠났다. 1323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으며, 1879년에는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인 「영원한 아버지」(Aeterni Patris)에서 그를 현대 가톨릭 철학의 스승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방대한 분량의 『신학대전』을 비롯해 『대이교도대전』, 『신학요강』 등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와 보에티우스 등의 저서에 대한 다양한 주해서를 남겼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74)는 이탈리아 남부의 아퀴노(Aquino)라는 마을 근처 로카세카(Rocasecca) 성(城)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5세가 되던 해에 그는 근처의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 수도원에 봉헌되어 초등 교육을 받았으며, 14세에는 인근 나폴리 대학에 입학했다. 그곳 나폴리에서 새로운 탁발 수도회인 도미니코 수도회의 활동에 감명을 받아 수도회 총장의 뜻을 따라 당시 신학의 중심지인 파리 대학으로 가고자 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감금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파리에서 위대한 스승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밑에서 공부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1257년에는 보나벤투라(Bonaventura)와 함께 파리 대학 교수단에 받아들여졌다. 1259년 그는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로 돌아가 9년 동안 교황청 소속의 학원과 수도원 등에서 강의했으며, 1269~72년까지는 다시 파리 대학에서 강의했다. 이 시기에 그의 학문 활동은 절정에 이르렀는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정통한 주석자임을 자처하던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여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옹호했다. 교황에 의해 리옹 공의회에 초청되어 가던 도중, 포사노바의 한 시토회 수도원에서 1274년 3월 세상을 떠났다. 1323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으며, 1879년에는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인 「영원한 아버지」(Aeterni Patris)에서 그를 현대 가톨릭 철학의 스승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방대한 분량의 『신학대전』을 비롯해 『대이교도대전』, 『신학요강』 등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와 보에티우스 등의 저서에 대한 다양한 주해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