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 of Print

여성의 권리 옹호

$11.23
SKU
9791159312335

 

본 상품은 품절 / 절판 등의 이유로 유통이 중단되어 주문이 불가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Thu 01/2 - Wed 01/8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Mon 12/30 - Wed 01/1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18/04/30
Pages/Weight/Size 128*188*20mm
ISBN 9791159312335
Categories 사회 정치 > 여성/젠더
Description
《여성의 권리 옹호》는 ‘페미니즘의 어머니’로 불리는 영국의 급진적 사상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이러한 모순에 반기를 들고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이성적 존재이며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근대 최초의 페미니즘 저작이다. 여성도 이성을 지닌 온전한 인격체로서 평등한 교육과 정치 참여의 기회를 제공받아야 하며, 인류의 절반인 여성이 독립적인 개인이 될 때 비로소 인류 전체의 역사가 발전할 수 있다고 역설함으로써 계몽사상의 남성 편향성을 극복하고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Contents
들어가는 말 | 문수현

제1장 인류의 권리와 연관된 의무들을 고찰함
제2장 성별 특성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를 논함
제5장 여성을 경멸에 가까운 동정의 대상으로 만든 몇몇 저자들에 대한 비평
제6장 유년기의 연상 작용이 성격에 미치는 영향
제9장 사회 안에 굳어진 부자연스러운 구분들로부터 생겨나는 치명적 영향
제12장 국민 교육
제13장 여성의 무지에서 비롯된 몇 가지 어리석은 예들
- 여성 습속의 혁명이 자연스럽게 야기할 것으로 기대되는 도덕적 진보에 관한 최종적 고찰과 더불어

해제 - ‘페티코트를 입은 하이에나’에서 ‘근대 페미니즘의 어머니’로 | 문수현 219
1.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생애
2. 페미니즘 사상가이자 활동가로서의 면모
3. 계몽사상에 맞선 계몽사상가 울스턴크래프트
(1) 계몽사상의 한계와 《여성의 권리 옹호》
(2) 《여성의 권리 옹호》의 내용
(3) 계몽사상가들에 맞선 계몽사상가 울스턴크래프트
(4)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Author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문수현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권리 옹호』, 소설 『메리, 하나의 픽션』 등 다수의 저서를 남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불리는 여권 운동가이며, 혁명을 옹호한 급진주의 정치사상가였다. 사적으로는 최초의 공상과학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인 메리 셸리의 어머니이자, 아나키즘의 선구자로 알려진 정치철학자 윌리엄 고드윈의 아내이기도 하다.

1759년 런던 스피탈필즈에서 존 에드워드 울스턴크래프트와 엘리자베스 딕슨의 칠남매 중 둘째이자 장녀로 태어났다. 1768년 가족이 요크셔주 베벌리에 있는 농장으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메리는 여학생을 위한 통학 학교에 다녔다. 1775년 은퇴한 성직자 클레어 부부와 친해졌고 이들을 통해 프랜시스 패니 블러드를 만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동반자로 지냈다. 1782년 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메리는 패니 블러드의 집으로 옮겨가 살았다. 패니 블러드와 함께 여성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런던 외곽 뉴잉턴그린에 학교를 세웠다. 그러나 패니가 세상을 떠 나자, 1786년 메리는 패니와 세운 학교를 정리한 후, 첫 작품인 소책자 『딸들의 교육에 관한 고찰(Thoughts on the Education of Daughters)』을 써서 진보적인 출판업자 조지프 존슨의 도움으로 출간했다. 1788년 『메리, 한 편의 소설(Mary: A Fiction)』을 쓰기 시작했으며, 존슨의 정기간행물 『분석 비평(Analytical Review)』의 보조 편집자이자 검토자가 되었다.

1790년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에 맞서 『인간의 권리 옹호(The Rights of Men)』를 썼다. 존슨이 익명으로 출간했다가 좋은 평을 받자 재판부터 울스턴크래프트의 이름을 표지에 넣었다. 존슨의 그룹에서 톰 페인과 윌리엄 고드윈을 만났다. 1792년 자칭 진보주의자라는 남성 지식인들의 모순, 그들이 부르짖는 ‘인간의 권리’라는 인간 속에 여성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여성의 권리 옹호(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를 출간해 호평을 받았다. 1793년 파리에서 미국인 사업가 길버트 임레이와 연애를 시작했다. 적국인으로 체포될 위험 때문에 신변의 안정상 미국 대사관에 임레이의 아내로 등록하고 파리 외곽으로 이주했다.

1794년 5월 14일에 딸 패니를 출산했다. 사업차 종종 집을 비우는 임레이와의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딸을 데리고 임레이를 쫓아 런던으로 갔고, 그의 변심을 깨닫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임레이에 의해 저지되었다. 임레이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가 동업자들에게 받아야 할 돈을 되찾기 위해 북유럽 여행을 떠났다. 런던으로 돌아와 임레이가 여배우와 살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푸트니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하나 어부들에 의해 구조되었다. 1796년 존슨이 울스턴크래프트의 여행기 『길 위의 편지』를 출간했고, 호평과 찬사가 이어졌다. 윌리엄 고드윈과 재회하여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1797년 고드윈과 결혼해 8월 30일에 딸 메리를 출산 했으나 열흘 만인 9월 10일 산욕열로 세상을 떠났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권리 옹호』, 소설 『메리, 하나의 픽션』 등 다수의 저서를 남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불리는 여권 운동가이며, 혁명을 옹호한 급진주의 정치사상가였다. 사적으로는 최초의 공상과학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인 메리 셸리의 어머니이자, 아나키즘의 선구자로 알려진 정치철학자 윌리엄 고드윈의 아내이기도 하다.

1759년 런던 스피탈필즈에서 존 에드워드 울스턴크래프트와 엘리자베스 딕슨의 칠남매 중 둘째이자 장녀로 태어났다. 1768년 가족이 요크셔주 베벌리에 있는 농장으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메리는 여학생을 위한 통학 학교에 다녔다. 1775년 은퇴한 성직자 클레어 부부와 친해졌고 이들을 통해 프랜시스 패니 블러드를 만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동반자로 지냈다. 1782년 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메리는 패니 블러드의 집으로 옮겨가 살았다. 패니 블러드와 함께 여성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런던 외곽 뉴잉턴그린에 학교를 세웠다. 그러나 패니가 세상을 떠 나자, 1786년 메리는 패니와 세운 학교를 정리한 후, 첫 작품인 소책자 『딸들의 교육에 관한 고찰(Thoughts on the Education of Daughters)』을 써서 진보적인 출판업자 조지프 존슨의 도움으로 출간했다. 1788년 『메리, 한 편의 소설(Mary: A Fiction)』을 쓰기 시작했으며, 존슨의 정기간행물 『분석 비평(Analytical Review)』의 보조 편집자이자 검토자가 되었다.

1790년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에 맞서 『인간의 권리 옹호(The Rights of Men)』를 썼다. 존슨이 익명으로 출간했다가 좋은 평을 받자 재판부터 울스턴크래프트의 이름을 표지에 넣었다. 존슨의 그룹에서 톰 페인과 윌리엄 고드윈을 만났다. 1792년 자칭 진보주의자라는 남성 지식인들의 모순, 그들이 부르짖는 ‘인간의 권리’라는 인간 속에 여성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여성의 권리 옹호(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를 출간해 호평을 받았다. 1793년 파리에서 미국인 사업가 길버트 임레이와 연애를 시작했다. 적국인으로 체포될 위험 때문에 신변의 안정상 미국 대사관에 임레이의 아내로 등록하고 파리 외곽으로 이주했다.

1794년 5월 14일에 딸 패니를 출산했다. 사업차 종종 집을 비우는 임레이와의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딸을 데리고 임레이를 쫓아 런던으로 갔고, 그의 변심을 깨닫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임레이에 의해 저지되었다. 임레이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가 동업자들에게 받아야 할 돈을 되찾기 위해 북유럽 여행을 떠났다. 런던으로 돌아와 임레이가 여배우와 살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푸트니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하나 어부들에 의해 구조되었다. 1796년 존슨이 울스턴크래프트의 여행기 『길 위의 편지』를 출간했고, 호평과 찬사가 이어졌다. 윌리엄 고드윈과 재회하여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1797년 고드윈과 결혼해 8월 30일에 딸 메리를 출산 했으나 열흘 만인 9월 10일 산욕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