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문학적 특성을 살린 새로운 번역,
일상의 말로 생생하게 재현한 대화문, 친절하고 풍부한 해설
제자백가를 대표하는 고전이자, 유가와 더불어 중국 전통 사상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도가의 중심 텍스트인 《장자》는 그 행간이 넓고 깊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창조적 읽기를 가능케 하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문인들을 매혹해온 글이다. 당나라 현종은 장자에게 ‘남화진인(南華眞人, 남방의 아름답고 천진스러운 사람)’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장자》를 아꼈고, 조선 후기의 박세당은 사문난적으로 몰리면서도 《남화경주해산보》라는 《장자》 주해서를 집필했다. 프랑스 철학자 라캉은 중국인 선생과 3년간 《장자》를 완독한 후 “난 이제부터 뭘 하지?” 했을 정도로 그 매력에 푹 빠졌었다. 또한 톨스토이와 하이데거, 융, 부버 같은 서구의 여러 인문학자들은 손수 《장자》를 번역하려 시도하며 지대한 관심을 보인 바 있다.
비록 2400년 전의 텍스트지만, 어지러운 세상을 한탄하면서도 크고 활달한 사유로 나아갈 길(道)을 보여주기에 《장자》 읽기의 의미는 지금도 유효하다. 아니, 자본의 탐욕과 이윤에 대한 맹신 앞에 뭇 생명이 참혹하게 스러지고, 국가의 무능과 권력의 무책임을 목도하며 많은 이들이 환멸과 절망감에 길을 잃고 있는 지금, ‘죽어버린 마음을 살리고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려 했던 장자의 사유는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고 준엄하게 말을 건넨다.
초역(抄譯)본 《마음으로 읽는 장자》(책세상, 2015)를 통해, 머리와 이성이 아닌 ‘마음’으로 읽는 장자 철학을 보여준 바 있는 동양철학자 조현숙은 이번 완역본에서 그간의 《장자》 공부를 수렴하여 새로운 번역을 선보인다. 한자어들을 평이하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풀어 옮김으로써 《장자》 특유의 문학성을 살리려 애썼고,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생각을 주고받는다’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모든 문장을 존대체로 옮기고 대화체의 글은 희곡식으로 구성하였다. 또한 난해한 비유와 상징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길잡이로서 책머리에 《장자》 전편에 주요하게 언급되는 표현들을 설명해주었고, 각 편의 시작과 끝에서 논리의 흐름을 짚어주었으며, 번역문에는 에피소드마다 소제목을 붙이고 필요하면 원문 뒤나 각주에 간략한 해설을 달았다. 책 뒤편에 실린 해제에는 장자 철학에 대한 설명은 물론이고, 공자와 노자, 혜시 등 《장자》에 등장하는 당대 지식인들의 모습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여준다.
성은 장莊이고 이름은 주周이며 자는 자휴子休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장자에 대한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것이 『장자』다. 사마천은 장자의 출신지와 활동 연대에 대해 몽蒙 지방 사람이고 이름은 주周라고 말했다. 일찍이 칠원리漆園吏를 지냈으며, 양梁나라 혜왕惠王, 제齊나라 선왕宣王 등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고 덧붙였다.
역대로 몽이라는 지명을 어디에 있는 땅으로 보느냐에 따라 장자의 출신 국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게 갈라졌다. 즉 송宋나라, 양梁나라, 초楚나라, 제齊나라, 노魯나라 등 여러 가지 학설이 있었지만 초나라, 제나라, 노나라 등의 주장들은 근거가 부족하다. 다만 송과 양은 같은 나라이거나 동일한 지역에 대한 다른 명칭일 수 있다. 송나라가 양나라에 병합되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장자가 송나라의 멸망을 직접 목격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더 설득력 있다. 칠원리에서 보듯 대개 장자가 관영 옻나무밭을 관리하는 말단관리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장자가 정식으로 밥벌이를 한 것은 이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장자의 활동 시기는 양나라 혜왕이나 제나라 선왕 등과 같은 시대라고 추정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대략 기원전 370년에서 기원전 301년 사이에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근현대의 좀 더 세밀한 역사 추적에 따르면 상한선이 기원전 375년을 넘지 않으며 하한선은 기원전 275년을 벗어나지 않는다. 흔히 노자老子와 더불어 도가道家의 쌍벽으로 일컬어지는데, 특히 위진魏晉시대와 북송北宋 이후의 문사 文士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성은 장莊이고 이름은 주周이며 자는 자휴子休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장자에 대한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것이 『장자』다. 사마천은 장자의 출신지와 활동 연대에 대해 몽蒙 지방 사람이고 이름은 주周라고 말했다. 일찍이 칠원리漆園吏를 지냈으며, 양梁나라 혜왕惠王, 제齊나라 선왕宣王 등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고 덧붙였다.
역대로 몽이라는 지명을 어디에 있는 땅으로 보느냐에 따라 장자의 출신 국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게 갈라졌다. 즉 송宋나라, 양梁나라, 초楚나라, 제齊나라, 노魯나라 등 여러 가지 학설이 있었지만 초나라, 제나라, 노나라 등의 주장들은 근거가 부족하다. 다만 송과 양은 같은 나라이거나 동일한 지역에 대한 다른 명칭일 수 있다. 송나라가 양나라에 병합되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장자가 송나라의 멸망을 직접 목격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더 설득력 있다. 칠원리에서 보듯 대개 장자가 관영 옻나무밭을 관리하는 말단관리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장자가 정식으로 밥벌이를 한 것은 이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장자의 활동 시기는 양나라 혜왕이나 제나라 선왕 등과 같은 시대라고 추정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대략 기원전 370년에서 기원전 301년 사이에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근현대의 좀 더 세밀한 역사 추적에 따르면 상한선이 기원전 375년을 넘지 않으며 하한선은 기원전 275년을 벗어나지 않는다. 흔히 노자老子와 더불어 도가道家의 쌍벽으로 일컬어지는데, 특히 위진魏晉시대와 북송北宋 이후의 문사 文士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