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대한, 음악에 의한, 음악을 위한 책읽기
책을 듣다, 음악을 읽다, 인간과 사회를 사유하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독서가, 에세이스트인 장정일의 새로운 독서 일기. 이번에는 오로지 ‘음악’에 초점을 맞춰, 음악.음악가를 다루거나 직간접적으로 음악을 이야기하는 ‘악서樂書’ 174권에 대한 리뷰 116편으로 한 권의 책을 구성했다. 음악 애호가로도 잘 알려진 장정일은 팝.재즈.한국 대중가요.국악.록.블루스.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 장르와, 음악 전문서.전기.비평집.소설과 시나리오 등 다양한 책의 장르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자신만의 개성 있는 ‘총람總覽’을 구성했다. 또한 특정한 형식이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첨예한 글쓰기로 책과 음악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풀어놓는다. 서태지, 레드 제플린, 마일스 데이비스, 바흐, 모차르트와 베토벤, 신디 로퍼, 커트 코베인, 마돈나, 마리아 칼라스, 임방울, 레너드 번스타인, 글렌 굴드 등의 삶과 음악, 그리고 그들을 다룬 책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지며, 헤르만 헤세와 밀란 쿤데라, 오에 겐자부로, 애거사 크리스티 등의 소설이 등장해 음악을 매개로 어우러지기도 한다. 나치의 음악 선전, 인종 차별과 재즈 음악의 연관 등 음악과 사회, 음악과 권력의 맥락을 짚어내는 글들도 여럿 수록되어 있다. 순정한 사랑과 첨예한 비판이 공존하는, 대체로 건조하고 때로 격정적인, ‘은밀하게’ 아름다운 장정일의 독서 일기다.
한국 문단의 내용과 형식에 파장을 일으킨 문제적 작가이면서, “읽은 책이 세상이며, 읽기의 방식이 삶의 방식”이라고 말하며 끊임없이 책을 읽고 글을 써온 개성적 독서가.서평가이기도 한 저자의 면모가 이번 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어쩌면 “듣는 음악이 세상이며, 듣는 방식이 삶의 방식”이라고 고쳐 말할 수도 있겠다. 그만큼 음악은 인간의 본성에 깊숙이 자리한 강력하고 치명적인 ‘본능적’ 대상이며, 또한 인간과 시대와 역사와 함께 호흡해온 ‘사회적’ 대상이기도 하다. 장정일 역시 이 책에서 음악을 즐겨 듣는 ‘음악적’ 인간으로서의 쾌락과 몰입을 보여주는 한편, 음악을 듣고 음악 책을 읽으며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는 ‘사회적’ 비평가로서의 책무를 다한다. 개인의 음악 취향을 드러내는 사적인 독서 일기이자 음악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함께 보여주는 것이다. 그동안 그의 책읽기를 두고 ‘사회적’ 독서와 ‘쾌락의’ 독서 사이의 줄타기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이번 책에서는 그 두 가지 길이 자연스럽게 섞이며, 읽는 이 역시 음악과 사회의 넘나듦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그러한 경험 가운데서 우리 모두의 ‘음악 본능’과 ‘독서 본능’이 함께 깨어날 것이다.
Contents
1. 서태지에게 바친다
《한국 대중음악사》
2. 독일에서 부쳐온 과거사 청산 문제
《망명 음악, 나치 음악》
3. 슬픈 존 레넌
《존 레논》《영원한 록의 신화 비틀스 vs 살아 있는 포크의 신화 밥 딜런》
4. 만유인력에서 벗어난 트럼펫?마일스 데이비스(1) 《마일스 데이비스》
5. 마돈나, 20세기를 쑥대밭으로 만든 여자
《슈퍼스타의 신화, 마돈나》《마돈나의 이중적 의미》
6. 알도 치콜리니를 마냥 들었다
《33과 1/3》《에펠탑의 검은 고양이》
7. 트로트, 국악을 잡아먹다
《갇힌 존재의 예술, 열린 예술》《근대성의 침략과 20세기 한국의 음악》
8. 피아노의 북쪽
《글렌 굴드?피아니즘의 황홀경》《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9. 두 거장의 대담
《평행과 역설》
10.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모차르트》《모차르트?혁명의 서곡》
《모차르트 평전》《1791, 모차르트의 마지막 나날》《모차르트, 음악과 신앙의 만남》
11. 거인의 발걸음 … 65
《존 콜트레인?재즈, 인종차별, 그리고 저항》
12. 희미하게 사라지기보다 … 70
《평전 커트 코베인》《커트 코베인, 지워지지 않는 너바나의 전설》
13. 에디트와 재니스
《에디트 피아프》《평전 제니스 조플린》
14. ‘환희의 찬가’를 기다리며
《베토벤의 머리카락》
15. 음악은 책보다 강하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16. 콘트라베이시스트에게 바침
《콘트라베이스》《인연》《콘트라베이스와 로맨스》
17. 그들은 어떻게 통하였을까
《열정》
18. 이식론과 자생론을 넘어
《오빠는 풍각쟁이야》
19. 클래식에서의 ‘정신성’이라는 신화
《청중의 탄생》
20. 헤세?음악의 성자
《페터 카멘친트》《수레바퀴 아래서》《크눌프?로스할데》《데미안》《싯다르타》《나르치스와 골드문트》《게르트루트》《황야의 늑대》
21. 우리 음악 문화의 기원
《악기로 본 삼국시대의 음악 문화》《우리 음악의 멋 풍류도》
22. 식민지 음악가의 어두운 핵심
《잃어버린 시간 1938~1944?세계적인 음악가 안익태의 숨겨진 삶을 찾아서》
《안익태》《기억하고 싶은 선구자들?한국양악인물사 1》
23. 세 사람의 첼리스트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천재와 광기》《자클린느 뒤 프레》
《내 아들, 요요마》
24. 비가시적 억압 장치로서의 음악?
《예기?악기》
25. 열린음악과 그 적들
《국가론》《플라톤의 교육론》《정치학》
《미국 정신의 종말》
〈가치교육에 있어서 음악의 효용성 :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
26. ‘국악’에 접근하는 법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음악》
27. 소리에는 뜻이 있을까
《성무애락론》
28. 막막했던 분들 혹은 접근하기 어렵다는 분들에게
《현대음악사》《현대음악》
29. Who are you?
《푸르트벵글러》
30. 미스터리 ‘바흐’
《마지막 칸타타》
31. 쳇 베이커?재즈의 어두운 면
《쳇 베이커》
32. 클래식계의 테러리스트 혹은 네크로필리아 비평 《듣고 싶은 음악 듣고 싶은 연주》
33. ‘동양 마녀’에 대한 사실과 소문
《오노 요코》《존 레논?음악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
34. 영화와 오페라를 한꺼번에
《영화와 오페라》
35. 격의格義로서의 한국 록 문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36. 밑바닥에서 음악 하기
〈와이키키 브라더스〉
37. 클래식 음반?20세기의 예술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38. 빌리 홀리데이?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
《빌리 홀리데이》《재즈북》
39. ‘기타의 신’이 쓴 자서전
《에릭 클랩튼》
40. 마왕님, 고마워요!
《마이클 잭슨 자서전?Moon Walk》
41. 음악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운 게 아니다
《호모 무지쿠스》
42. 포노그래프 효과?
《소리의 자본주의》《소리를 잡아라》
43. 음악계에는 왜 여성이 부재하는가
《서양음악사와 여성》
44. 칸타타 147번 〈인류의 기쁨 되신 예수〉
《소피의 선택》
45. ACI 혹은 싱어송라이터
《바람만이 아는 대답?밥 딜런 자서전》 《샹송을 찾아서》《밥 딜런 평전》
46. 천재는 사회의 공조물
《베토벤 천재 만들기》
47. 스트라드?불멸의 악기
《스트라디바리우스》
48. 어느 첼로의 자서전
《첼로 마라》
49. 빛의 음악, 빛의 아들
《개인적인 체험》 《빛의 음악》
50. 정치 선전은 음악이 최고!
《프로파간다와 음악》
51. 신이 음악임을 증명하는 삼단논법
《하나님은 음악이시다?모차르트가 들려주는 신의 소리》《칼 바르트가 쓴 모차르트 이야기》《모차르트, 음악과 신앙의 만남》
52. 조선 시대의 3D 직종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
53. 마돈나학學이라고?
《마돈나?포스트모던 신화》
54. 장르적 접근과 스타일적 접근
《트로트의 정치학》《한국대중가요사》
55. 톨스토이와 지드
〈크로이체르 소나타〉《전원 교향악》
56. 1980년대 대학가 노래패의 후일담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57. 차이콥스키와 〈비창〉
《차이코프스키》
58. 드보르자크?억지로 내몰린 유럽주의자
《드보르자크》 《음악의 정신사》
59. 당신도 명장名匠이 되고 싶은가
《세계의 명장 진창현》
60. 오르가니스트와 피아니스트
《오르가니스트》《피아니스트》
61. 새로운 것을 찾고 싶다면…바흐
《J. S. 바흐》
62. 마르크시즘 역사가의 눈에 비친 재즈의 역사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미완의 시대》
63. 블루스의 맥박과 재즈의 리듬으로 쓴 시
《랭스턴 휴즈》
64. 음악적 보수주의와 정치적 진보주의
《레너드 번스타인》
65. ‘시나트라 히스테리’?전기처럼 감염되는 흥분 상태 《프랭크 시나트라?세기의 목소리》
66. 친구
《수상한 음파 탐지기》
67. 자알 헌다, 임방울
《임방울?우리 시대 최고의 소리 광대》
68. 취미는 ‘이중생활’
《오디오의 유산》
69. 나는 오디오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
《소리의 황홀》
70. 흑인 음악의 원천은?
《다인종 다문화 시대의 미국 문화 읽기》
71. 로큰롤 랭보
《여기서는 아무도 살아 나가지 못한다》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
72. 러시아 록의 전설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빅또르 최의 삶과 음악》
73. 쿠바 음악의 힘
《내 영혼의 마리아》
74. 보드카와 절인 청어가 간절해지는 목소리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75. 오페라의 전환점
《마리아 칼라스의 사랑과 예술》《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마리아 칼라스, 내밀한 열정의 고백》
76. 독재자는 이런 음악을 좋아한다
《독재자의 노래》
77. 재즈는 변화와 다양성의 음악
《재즈 오디세이》《재즈?기원에서부터 오늘날까지》
78. 음악이 흐르는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79. 존 바에즈, 포크의 여전사
《존 바에즈 자서전》《바람만이 아는 대답? 밥 딜런 자서전》
80. 왜 클래식 음악계는 보수주의자가 되었는가
《음악과 권력》
81. ‘재즈 세계’에 대한 명상?재즈의 역사(1)
《가스펠, 블루스, 재즈》《재즈의 역사》
82. 음악 잡지의 기자들
《존 레넌을 찾아서》
83. 베르디, 이탈리아를 만들다
《베르디 오페라, 이탈리아를 노래하다》
84. 일본은 존 레넌을 좋아해
《존 레논을 믿지 마라》《존 레논 대 화성인》
85. 목소리…목소리…
《오페라의 유령》
86. 교육은 아이가 받은 소명을 거드는 것
《젊은 음악가의 초상》
87. 납처럼 무겁게 비행선처럼 가볍게
《레드 제플린》
88. 더 알고 싶은 레드 제플린
《레드 제플린》
89. 얀센주의 교리 입문
《세상의 모든 아침》
90. 끝나지 않은 노래
《빅토르 하라》
91. 불꽃의 여자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
92. 지휘자의 진화
《음악가의 탄생》《마에스트로의 리허설》
93. 러시아의 음유 시인들
《율리 김, 자유를 노래하다》
94. 자기 모반의 음악?재즈의 역사(2)
《재즈의 역사》《재즈입문》
95. 재즈의 개벽인가, 재즈의 사망인가?마일스 데이비스(2)
《마일즈 데이비스?거친 영혼의 속삭임》
96. 베토벤보다 모차르트
《시간의 벌판을 가로질러》
97. 가요 음반 수집가를 위한 책
《대중가요 LP 가이드북》《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98. 미국 청년 문화에 대한 예외적인 증언
《저스트 키즈》
99. 비틀스의 100가지 그림자
《비틀즈 100》
100. ‘음악’을 ‘성性’으로 바꾸시오
〈크로이체르 소나타〉
101. 빌리 홀리데이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102. 마음속의 ‘푸른 나무’
《프라우드 메리를 기억하는가》
103. ‘재즈’ 없는 ‘재즈적인 글쓰기’
《재즈》
104. 멜로디와 하모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
105. ‘잡문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유리알 유희》
106. 국악이 사는 법
《민꽃소리》
107. 오자와와 하루키, 말러를 이야기하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108. 아리랑의 기원을 찾아서
《아리랑 시원설 연구》
109. 우표수집가, 장대높이뛰기 선수, 음악가…
《알렉시》
110. 추리의 여왕이 단서를 놓치다니…
《인생의 양식》
111. 순자와 묵자의 음악관
《순자》《순자?통일제국을 위한 비판철학자》《묵자》
112. 서태지와 케이팝
《나쁜 장르의 B급 문화》
113. 펑크 록, 레게, 힙합은 어떻게 저항하는가
《권력에 맞선 상상력, 문화운동 연대기》
114. 마침내, 당신의 전기가 나왔군요
《신디 로퍼》
115. 탱고의 실험
《피아솔라?위대한 탱고》
116. ‘소녀’라는 기호
《우리 시대 대중문화와 소녀의 계보학》
Author
장정일
어린 시절의 꿈은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하여 다섯 시면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었다 한다. 책읽기는 그가 그토록 무서워하고 미워했던 아버지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학교를 싫어했던 그는 삼중당문고를 교과서 삼아 열심히 외국 소설을 독파했고, 군입대와 교련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핑계로 드디어 1977년 성서중학을 끝으로 학교와의 인연을 끊는다. 그러나 1979년 폭력범으로 소년원에 수감되면서 그는 학교와 군대의 나쁜 점만 모아놓은, 세상에서 가장 몹쓸 지옥인 교도소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의 경험은 「하얀몸」을 비롯한 그의 시의 바탕이 된다.
오랜 정신적 방황을 겪은 그는 박기영을 스승으로 삼아 시를 배우기 시작하여 마침내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시운동』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였고, 1987년에는 희곡 「실내극」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극작활동도 시작한다. 그리고 같은 해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고 연이어 시집 『길안에서의 택시잡기』를 발표하면서, 지금껏 문단에서 경험해본 적이 없던 '장정일'이라는 '불온한 문학'이 드디어 '중앙'에 입성했음을 알린다.
1988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단편 「펠리칸」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를 겸업하기 시작한 그는 소설집 『아담이 눈뜰 때』(1990), 장편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2),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1994)를 연이어 발표하고 이 소설들이 모두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며 '장정일'은 드디어 우리 문화의 뚜렷한 코드 상징으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1996년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발간한 후 그가 파리에 있는 그의 아내인 소설가 신이현을 만나러 출국한 사이, 한국에서는 외설시비가 일어나고 자신의 소설이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포르노로 규정받고 있던 그해의 마지막날, 장정일은 파리에서 자진 귀국하여 당당히 자신의 작품에 대해 변론한다. 그러나 영화 <거짓말>이 무죄판결을 받은 것과 대조적으로, 법원의 최종판결은 유죄. 그리고 또 한번의 구속으로 이어진다. 당시 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강금실은 후에,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라는 책에서 당시의 장정일과 재판에 대한 글 <장정일을 위한 변명>을 썼다.
그 사이 한국에서의 평가와는 달리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일본에서 발간되는 등 해외에서 더 호평을 받고, 그는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중국에서 온 편지』(1999)와 자전적 소설 『보트하우스』(2000)를 펴낸다. 그의 '독자 후기'를 모은 『장정일의 독서일기』도 5권까지 펴내며 그는 지금 대구에서 평생 소원인 책읽기와 재즈듣기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머리같이 쓸데 없는 데서는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노모가 바리깡으로 직접 깎아주는 빡빡 머리와 헐렁한 골덴 바지 그리고 청색 면 티 차림을 하고.
어린 시절의 꿈은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하여 다섯 시면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었다 한다. 책읽기는 그가 그토록 무서워하고 미워했던 아버지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학교를 싫어했던 그는 삼중당문고를 교과서 삼아 열심히 외국 소설을 독파했고, 군입대와 교련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핑계로 드디어 1977년 성서중학을 끝으로 학교와의 인연을 끊는다. 그러나 1979년 폭력범으로 소년원에 수감되면서 그는 학교와 군대의 나쁜 점만 모아놓은, 세상에서 가장 몹쓸 지옥인 교도소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의 경험은 「하얀몸」을 비롯한 그의 시의 바탕이 된다.
오랜 정신적 방황을 겪은 그는 박기영을 스승으로 삼아 시를 배우기 시작하여 마침내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시운동』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였고, 1987년에는 희곡 「실내극」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극작활동도 시작한다. 그리고 같은 해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고 연이어 시집 『길안에서의 택시잡기』를 발표하면서, 지금껏 문단에서 경험해본 적이 없던 '장정일'이라는 '불온한 문학'이 드디어 '중앙'에 입성했음을 알린다.
1988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단편 「펠리칸」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를 겸업하기 시작한 그는 소설집 『아담이 눈뜰 때』(1990), 장편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2),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1994)를 연이어 발표하고 이 소설들이 모두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며 '장정일'은 드디어 우리 문화의 뚜렷한 코드 상징으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1996년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발간한 후 그가 파리에 있는 그의 아내인 소설가 신이현을 만나러 출국한 사이, 한국에서는 외설시비가 일어나고 자신의 소설이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포르노로 규정받고 있던 그해의 마지막날, 장정일은 파리에서 자진 귀국하여 당당히 자신의 작품에 대해 변론한다. 그러나 영화 <거짓말>이 무죄판결을 받은 것과 대조적으로, 법원의 최종판결은 유죄. 그리고 또 한번의 구속으로 이어진다. 당시 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강금실은 후에,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라는 책에서 당시의 장정일과 재판에 대한 글 <장정일을 위한 변명>을 썼다.
그 사이 한국에서의 평가와는 달리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일본에서 발간되는 등 해외에서 더 호평을 받고, 그는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중국에서 온 편지』(1999)와 자전적 소설 『보트하우스』(2000)를 펴낸다. 그의 '독자 후기'를 모은 『장정일의 독서일기』도 5권까지 펴내며 그는 지금 대구에서 평생 소원인 책읽기와 재즈듣기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머리같이 쓸데 없는 데서는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노모가 바리깡으로 직접 깎아주는 빡빡 머리와 헐렁한 골덴 바지 그리고 청색 면 티 차림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