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 끝난 교사 이야기

부끄러움의 역설, 늘청 유기창의 교육 인생 회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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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8/07/27
Pages/Weight/Size 153*224*30mm
ISBN 9791159300721
Categories 사회 정치 > 교육
Contents
차례

추천의 글
| 교육 열정을 나눠 주는 큰 나무, 유기창 선생님
머리글 | 교사 36년
여는 글 | 고백과 변명
인생의 변곡점 / 박정희 시대의 종언 / 우리 교육, 우리 학교 / 의사의 말, 교사의 말
“선생님은 달라요”
36년 전, 도봉중학교(1981년 3월~1984년 2월) / 숙직 교사와 경비 / 군대 조직 같은 학교 / 빵 상자 속에 들어 있던 봉투 / 매를 들었던 초임 교사 / 학생이 보낸 편지 / 이 선생, 제자 이봉용 그리고 조주현 / 33년 전, 오주중학교(1984년 3월~1986년 2월) / 나를 교사로 거듭나게 한 제자들 / 금기어, 『민중교육』 / 고등학교 교사
나는 비겁한 교사였다
29년 전, 자양고등학교(1986년 3월~1989년 8월) / 나는 비겁한 교사였다 / 6·10 항쟁 / 교사협의회 결성 / 학생들은 스스로도 성장한다 / 교육운동의 시작 / 고민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 투사 / 1989년 5월 28일 / 대정부투쟁
/ 전교조 7·9 여의도 대회 / 징계 /자양고 학생회, 징계 저지 집단 시위 / 자양 OB 친구들 / “어머니, 10년은 젊게 사셔요.”
교육 희망, 전교조
28년 전, 해직교사 시절(1989년 8월~1994년 2월) / 꺼지지 않은 불씨 / 지회장 선거 3파전 / 5월 교단을 생각하며 / 교육 희망, 전교조 / 『우리교육』 영업사원 / 전추위 간사 / 위대한 결단, 전추위 결성 / 전교조 위원장의 결단
다시 교단에 서다
23년 전, 온수고등학교(1994년 3월~1998년 2월) / 빨갱이 교사 / 지금은 부끄럽지 않게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가 / 월급봉투 / 고집불통 교사 / 나는 아직 너희들의 스승이 아니다 / 바보야, 그것은 교육이 아냐 / 어떻게 세상과 맞설 것인가? 1
“나는 선생님이 싫어요”
19년 전, 창덕여고(1998년 3월~ 2002년 2월) 133 / 창덕여고, 1998 / 부장교사 139 /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으로 산다는 것 / 실패한 담임교사 / 학생들은 TV를 보고, 나는 생각을 쓴다 / 운영위원 선거, 유기창은?

“학교는 교장만의 학교가 아닙니다”
15년 전, 잠실고등학교(2002년 3월~2007년 2월) / 담임교사 이야기(1) / 아빠로 산다는 것 / “당신이 선생님이야.” / 교장 선생님의 생각 / 네이스 투쟁 / 학교는 교장만의 학교가 아닙니다 / “도와주십시오.” / “지금 저는 거리에 있을 것입니다.” /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 전교조 선거(1) / 교원 평가 반대, 연가 투쟁 / 고립과 위기의 전교조 / 전교조 선거(2) / 참 억울한 일입니다
“너, 전교조지!”
10년 전, 둔촌고등학교(2007년 3월~2012년 2월) / 담임교사에게 잘못 보이면 하는 마음에… / 편법을 가르치는 입시 교육 / 발언권을 봉쇄하지 마십시오 /“나쁜 사람 만드네.” / 진보 교육감의 당선 / 진보 교육감의 좌절 / 시국선언 237 / “너, 전교조지!” / 담임교사는? / 수업 포기 이유 / 나는 너희들에게 무엇인가? / 교육정책이 실패하면 학교교육이 실패한다 / 언제나 지금에 머물고 있을 너희들은 아니다
먹을 만큼만
5년 전, 잠신고등학교(2012년 3월~2017년 2월) / 전교조 서울지부장, 이병우 / 세태 / “뭐 하는 겁니까?” / 그래도 역시 민주주의입니다 / 우리 교육감이 되어주십시오 / 마지막 담임교사 이야기 / 문과반 수업을 마치고 / 살아 있는 학교 / 문제 있습니다 / 전교조 선거(3) / 다시 법외노조 / 새로운 노조가 답은 아닙니다 / 벗들에게 / 너에게 학교는? / 저는 전교조 조합원으로 끝까지 남을 것입니다 / “이게 나라냐?” / 훈장 포기 사유
부끄러운 이야기
저만 몰랐던 일이었습니다 / 부끄러움의 역설 / 무엇이 교육인가? / 기다림 / 운명과 희망 / 마지막 수업
닫는 글 | 36년 교직 인생을 마감합니다
교사에게 학생은 누구입니까? / 아름다운 여행의 종착역 / 여러분의 여행 / 고백의 말씀
덧붙이는 글 | 내가 만난 유기창 선생님
유기창 선생님을 생각하며 / 선생님을 찾습니다 / 이 세상에 한 분뿐인 선생님♡
후기 | 늘 푸른 선생, 회상록을 쓰다
Author
유기창
1973년 고대사대부고 졸업. 대학입시에 여러 차례 실패한 뒤 군복무를 마친 직후 1977년 뒤늦게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81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도봉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 오주중학교(1984년), 자양고등학교(1986년)에서 근무하던 중 전교조에 가입하고 활동한 것이 문제 되어 1989년 해직되었다. 4년 6개월의 해직 기간 동안 전교조 본부와 서울지부 동북부지회에서 활동했으며, 복직한 후에는 온수고등학교(현 노원고, 1994년), 창덕여자고등학교(1998년), 잠실고등학교(2002년), 둔촌고등학교(2007년) 그리고 잠신고등학교(2012년)에서 근무하다 2017년 2월 정년퇴임했다.
‘늘청’은 유기창의 별칭이다. 1989년 전교조에 가입하여 탈퇴하지 않은 것이 사유가 되어 파면되었다. 1994년 복직한 후, 어느 날 거리에서 『당신 참 재미있는 여자야』의 필자 노미화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다.
1988년 가을, 서강대학교 노천광장에서 교육법 개정 교사대회 집회 연사로 참여한 노미화 선생님을 처음 봤다. 앳된 여선생님이면서, 교육현장의 문제를 실감 나고 당차게 고발하는 연설을 ‘똑 부러지게 참 잘한다’고 생각하며 먼발치에서 들었다. 전교조 결성 이후 해직된 나는 전교조 본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부부 교사로 함께 해직되었던 노미화 선생님을 전교조 여러 모임에서 자주 볼 기회가 있었다. 거리에서 만난 그날 노 선생님은 자신이 쓴 책 속표지에 “늘 푸른 청년 유기창 선생님께”라고 쓰고 서명한 후 내게 건네주었다. 그 말이 마음에 너무 강하게 와닿았고, 정년퇴임할 때까지 ‘청년 교사’로 퇴직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간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말을 줄여 ‘늘청’이라는 나의 별칭으로 삼았다.
노미화 선생님을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그토록 앳된 아줌마 선생님의 머리에는 흰눈이 내려앉아 있었다. 하지만 표정은 어린이처럼 맑고 밝았으며, 말을 참 재미있게 하셨다
1973년 고대사대부고 졸업. 대학입시에 여러 차례 실패한 뒤 군복무를 마친 직후 1977년 뒤늦게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81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도봉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 오주중학교(1984년), 자양고등학교(1986년)에서 근무하던 중 전교조에 가입하고 활동한 것이 문제 되어 1989년 해직되었다. 4년 6개월의 해직 기간 동안 전교조 본부와 서울지부 동북부지회에서 활동했으며, 복직한 후에는 온수고등학교(현 노원고, 1994년), 창덕여자고등학교(1998년), 잠실고등학교(2002년), 둔촌고등학교(2007년) 그리고 잠신고등학교(2012년)에서 근무하다 2017년 2월 정년퇴임했다.
‘늘청’은 유기창의 별칭이다. 1989년 전교조에 가입하여 탈퇴하지 않은 것이 사유가 되어 파면되었다. 1994년 복직한 후, 어느 날 거리에서 『당신 참 재미있는 여자야』의 필자 노미화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다.
1988년 가을, 서강대학교 노천광장에서 교육법 개정 교사대회 집회 연사로 참여한 노미화 선생님을 처음 봤다. 앳된 여선생님이면서, 교육현장의 문제를 실감 나고 당차게 고발하는 연설을 ‘똑 부러지게 참 잘한다’고 생각하며 먼발치에서 들었다. 전교조 결성 이후 해직된 나는 전교조 본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부부 교사로 함께 해직되었던 노미화 선생님을 전교조 여러 모임에서 자주 볼 기회가 있었다. 거리에서 만난 그날 노 선생님은 자신이 쓴 책 속표지에 “늘 푸른 청년 유기창 선생님께”라고 쓰고 서명한 후 내게 건네주었다. 그 말이 마음에 너무 강하게 와닿았고, 정년퇴임할 때까지 ‘청년 교사’로 퇴직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간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말을 줄여 ‘늘청’이라는 나의 별칭으로 삼았다.
노미화 선생님을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그토록 앳된 아줌마 선생님의 머리에는 흰눈이 내려앉아 있었다. 하지만 표정은 어린이처럼 맑고 밝았으며, 말을 참 재미있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