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망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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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9/04/25
Pages/Weight/Size 152*225*12mm
ISBN 9791159201035
Categories 인문 > 서양철학
Description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정신이 흐려지기 직전인 1888년에 발표한 『우상의 황혼』의 원래 제목은 ‘우상의 황혼, 또는 망치로 철학하는 방법’이었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마침내 독일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때, 니체가 자신의 철학 작업에 대해 간단히 설명할 필요성을 다시 느끼고 불과 10일 만에 쓴 책이 바로 『우상의 황혼』이었으니, ‘우상의 황혼, 또는 망치로 철학하는 방법’이라는 제목 자체를 니체의 철학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망치로 철학하다’라는 표현은 온갖 대상들을 망치로 두드려 그 소리로 속이 비었는지 속이 찼는지를 확인하고, 속이 빈 것으로 확인되는 경우에 그것을 가차 없이 깨부순다는 의미이다. 인간을 현혹하는 우상을 모조리 무너뜨리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당시 유럽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도덕을 일차적 표적으로 삼은 결과, 철학은 물론이고 예술, 역사, 종교, 문화, 과학 등 거의 전 분야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니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기준은 인간의 생명력을 강화하는지 여부이다. 인간의 생명력을 키우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면 그냥 두고, 인간의 생명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면 어김없이 그 뿌리까지 파고들며 허물어뜨렸다.

오늘날 니체만큼 폭넓게 사랑을 받는 철학자도 드물다. 물론 ‘초인’이나 ‘주인 도덕’ ‘권력 의지’ 같은 매력적인 개념을 짧게 압축한 아포리즘과 불행한 삶, 비극적인 죽음 등이 니체의 인기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겠지만, 니체를 향한 사랑이 혹시 사람들이 품고 있는, 힘이나 강함에 대한 욕망 때문은 아닐까?

대중의 사랑을 두루 받는 니체이지만, 그래도 그가 철학사에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철학에서 처음으로 ‘망치’를 들었다는 데에 있다. 그가 등장한 이후로 개인과 사회, 인간의 조건에 대한 사고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니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바로 이곳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이었다. 철저히 현실에 발을 담근 가운데, 당시, 아니 지금도 많은 사람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우상을 깨뜨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아포리즘만을 모았다.
Contents
1장 인간에 대하여
2장 삶에 대하여
3장 진리에 대하여
4장 종교에 대하여
5장 도덕에 대하여
6장 사회에 대하여
Author
프리드리히 니체,정명진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편두통과 위통에 시달리는 데다가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10년간 호텔을 전전하며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이탈리아에서 여름에는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지내며 종교, 도덕 및 당대의 문화,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비평을 썼다. 그러던 중 1889년 초부터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다가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는 인간에게 참회, 속죄 등을 요구하는 기독교적 윤리를 거부했다. 본인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규범과 사상을 깨려고 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와 세계의 지배자인 초인(超人)에 이를 존재로 보았다. 초인은 전통적인 규범과 신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의미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집대성됐고 철학은 철학 분야를 넘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비극의 탄생』(1872)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고찰했으며, 『반시대적 고찰』(1873~1876)에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문화의 이상으로 하였다. 이 사상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에서 더 한층 명백해져, 새로운 이상에의 가치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여명』(1881) 『즐거운 지혜』(1882)에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펴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하여 긍정적인 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 외에 『선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학』(1887)에 이어 『권력에의 의지』를 장기간 준비했으나 정신이상이 일어나 미완으로 끝났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편두통과 위통에 시달리는 데다가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10년간 호텔을 전전하며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이탈리아에서 여름에는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지내며 종교, 도덕 및 당대의 문화,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비평을 썼다. 그러던 중 1889년 초부터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다가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는 인간에게 참회, 속죄 등을 요구하는 기독교적 윤리를 거부했다. 본인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규범과 사상을 깨려고 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와 세계의 지배자인 초인(超人)에 이를 존재로 보았다. 초인은 전통적인 규범과 신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의미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집대성됐고 철학은 철학 분야를 넘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비극의 탄생』(1872)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고찰했으며, 『반시대적 고찰』(1873~1876)에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문화의 이상으로 하였다. 이 사상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에서 더 한층 명백해져, 새로운 이상에의 가치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여명』(1881) 『즐거운 지혜』(1882)에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펴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하여 긍정적인 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 외에 『선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학』(1887)에 이어 『권력에의 의지』를 장기간 준비했으나 정신이상이 일어나 미완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