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만에 세상에 나온 참군인 김오랑 중령 아내 백영옥 자전 에세이
반란군에 남편을 잃고 실명한 그녀가 토해낸 남편과의 사랑과 12·12
12·12 반란 세력의 탄압으로 배포되지 못한 책, 35년 만의 재출간
돌이킬 수 없는 아픔과 분노를 생의 의지로 승화하는 희망의 메시지
12·12 군사 반란에 맞서다 반란군의 총탄에 쓰러진 김오랑 중령(당시 소령)의 아내 백영옥이 1988년 펴낸 자전 에세이집이다. 당시 12·12 반란 세력의 탄압으로 세상에 나올 수 없었던 책을 35년 만에 재출간했다. 남편 사망 충격으로 인한 실명에도 작가는 남편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해 헌신했고 당시 책 출간도 그 연장선이었다. 실명으로 글을 쓸 수 없었던 작가는 카세트테이프 20개에 달하는 분량의 구술로 아픔과 진실을 토해냈고, 출판사 편집자를 거쳐 책으로 나오게 됐다. 하지만 12·12 반란과 그에 맞선 김오랑 죽음의 진실이 두려웠던 노태우 정권은 책의 배포를 막았고 진실은 봉쇄됐다.
작가는 김오랑 중령과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12·12 당시의 상황과 자신이 아는 진실을 아픈 기억을 더듬으며 차근차근 밝히고 있다. 또 남편의 죽음 이후 겪게 되는 실명과 고통, 그런 아픔 후에 찾은 새로운 희망과 삶의 의지를 전해주고 있다. 저자는 돌이킬 수 없는 분노와 아픔에도 이 모두를 자신이 갖춘 문학적 소양과 깨달음을 통해 희망의 세계관으로 승화한다. 저자는 약하고 고통받는 이들이 자신처럼 극한의 상황에서도 생의 의지를 품을 수 있도록 마음을 내어주고 손을 내밀며 봄을 기다리자고 한다. 책 제목처럼 군부가 지배하던 얼어붙은 땅에도 그 가운데 고통받는 개개인의 삶에도 봄은 오고야 만다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Contents
책 머리에
제1부 12월의 여인
12월의 여인
영주동 이야기
제비꽃처럼
베레모의 긍지와 경남여중
호박 구덩이 속의 교훈
유치환 교장 선생님
브리지다 수녀님
마음에 새겨진 좋은 친구
블랙
아버지의 딸
어린 날 유물 2점
제2부 인생의 줄에 사랑을 묶고
사랑을 건진 낚시 미팅
영혼의 친숙
해인사 계곡에서의 추억
표충사에서의 일박
영천 장날과 곡마단
인생의 줄에 사랑을 묶고
그리움이 불씨 되어
메아리 같은 사랑
결혼
그에게 지키지 못한 약속
제3부 끝나지 않는 연극
한밭에 펼쳐진 신혼일기
군인 가족들의 이사
벚꽃 속의 모범 부부
슈퍼마켓의 김 소동
조국의 하늘 아래 참 군인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님
사신의 그림자
끝나지 않는 연극
동작동에 남편을 묻던 날
숨겨진 진실들
12·12는 사고가 아닌 쿠데타
제4부 거듭나는 사람들
눈마저 빼앗기고
참회록
충격요법 카운슬링
환생을 인도하는 분들
희망의 절벽
네, 자비의 전화입니다 _자작시
종교 유감
산다는 일 고달프고 답답해도
양딸 수지
미더덕은 참미더덕으로
향기를 발하는 사람들
일은 나의 생명
독백 _자작시
돈보다 더 소중한 것
양의 탈을 쓴 늑대
스포츠 왕국
거듭나는 사람들
산사에서 _자작시
꿈속에서 만나는 그대
1988년 2월, 『그래도 봄은 오는데』 출간 이후 이야기 - 〈김해인물연구회〉
Author
백영옥
1948년 12월 16일 평안남도 출생으로, 부산 봉래국민학교와 부산 경남여중·고등학교, 부산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했다. 1972년 12월 육사 25기 김오랑 중위와 결혼하였고, 결혼 7년 만인 1979년 12월 12일 군사 반란으로 남편 김오랑 중령(당시 소령)이 전사하자 그 충격으로 실명의 위기를 맞았다.
억울하게 남편을 잃고 시력마저 잃은 통한으로 절망의 시간을 보냈지만, 남편의 명예 회복과 반란 세력에 대한 심판을 준비하며 차츰 희망을 찾고, 부산 불교자비원을 설립, 상담실장으로 활동했다. 불교자비원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외당하는 이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던 1991년 자비원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그녀의 사망을 실족사로 처리했으나 석연치 않은 여러 의문이 뒤따르고 있다.
1948년 12월 16일 평안남도 출생으로, 부산 봉래국민학교와 부산 경남여중·고등학교, 부산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했다. 1972년 12월 육사 25기 김오랑 중위와 결혼하였고, 결혼 7년 만인 1979년 12월 12일 군사 반란으로 남편 김오랑 중령(당시 소령)이 전사하자 그 충격으로 실명의 위기를 맞았다.
억울하게 남편을 잃고 시력마저 잃은 통한으로 절망의 시간을 보냈지만, 남편의 명예 회복과 반란 세력에 대한 심판을 준비하며 차츰 희망을 찾고, 부산 불교자비원을 설립, 상담실장으로 활동했다. 불교자비원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외당하는 이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던 1991년 자비원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그녀의 사망을 실족사로 처리했으나 석연치 않은 여러 의문이 뒤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