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참사람

다석 류영모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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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1/08/23
Pages/Weight/Size 145*220*30mm
ISBN 9791157062416
Categories 인문 > 한국철학
Description
한국의 정신가치와 삶의 의미를 일깨운 대사상가 다석 류영모



2008년에 열린 세계철학자대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철학자로 함석헌과 류영모가 소개되었다. 대중들에게 함석헌은 익숙한 이름이지만 류영모는 다소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류영모는 ‘씨알’ 사상의 대표자인 함석헌의 스승이자 일제 강점기 기독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펼친 김교신의 스승이었으며, 한국의 민주화, 산업화, 종교가치 운동에서 정신적 기반을 일궈낸 독보적 선구자였다.



최근 들어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류영모에 열광하고 그에게서 배우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 사회의 지적 갈증과 영적 허기를 채워주는 류영모의 존재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류영모의 삶과 사상이 궁금해진다.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에 따르면 다석 류영모는 한국 최고의 사상가이자 삶과 내면의 혁명을 제시한 영성의 큰 스승이다. 그는 동서양의 영성을 성찰해 기독교의 참사상을 일깨우고 ‘얼의 삶’을 실천했다. 우연히 다석의 사상을 접하게 된 이후 ‘다석앓이’에 빠진 저자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종교의 참 기능과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선각자이자 K-영성의 독보적 모델이 류영모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한국의 정신가치와 삶의 의미를 일깨운 대사상가 다석 류영모의 삶과 사상을 우리에게 알려주고픈 ‘다석앓이’ 저자의 진솔하고 열정적인 고백이다.



Contents
글머리에_ 이것이 인간이다
추천의 말_ 새벽에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1부 날마다 한 치씩 나아간다

1. 나는 상놈이다
2. 공부 좀 하셨습니까?
3. 영혼의 개벽
4. 날마다 한 치씩 나아간다

2부 육신의 삶

5. 아름답고 담담한 백년해로의 인연
6. 하루 한 끼, 일일일식
7. 몸을 바꾸다
8. 몸이 성해야 영성이 돋는다
9. 별들을 가만히 우러르다
10. 어둑한 꿈속에 육욕을 만나다

3부 가르침의 희망

11. 이승훈의 오산학교와 만나다
12. 오산학교에서 만난 인연들-이승훈과 여준
13. 톨스토이와 천로역정
14. 3·1운동과 오산학교
15. 또 다른 인연들, 최남선과 류달영
16. YMCA에서 이어진 가르침의 길

4부 숙명의 인연: 우치무라 간조, 김교신, 함석헌

17. 불경스런 사내 우치무라 간조
18. 우리 각자에게 가르침을 주러 온 예수
19. 따로 또 같이 간 길, 김교신
20. 하늘님의 새 신천옹, 함석헌과 류영모
21. 국가에 대한 태도

5부 북한산 톨스토이와 광주의 성자들

22. 사람은 어떻게 사람이 되는가
23. 자하문 밖, 북한산 톨스토이
24. 삶은 하루살이 생선토막이오
25. 빛고을의 성자들-이세종
26. 빛고을의 성자들 -이현필
27. 하느님의 관상을 보다
28. 신은 어디에 계신가?

6부 동양의 기독교

29. 한글 속에 있는 하느님, '우리 말글의 성자'
30. ‘참’과 씨알사상
31. 없이 계시는 신-몸과 성령
32. 예수의 길과 다석의 길
33. 부처·노자·공자가 모두 하느님을 가리키고 있다
34. 놀라운 ‘없음’, 노자와 다석
35. 류영모의 ‘노자신학’
36. 중용, 신의 말씀으로 사는 것
37. 참으로 다정한 허공 ?
38. 사람 속에 하늘과 땅이 있으니 하나다
39. 신의 뜻에 닿는 다석의 기독신앙

7부 저녁의 십자가

40. 마땅히 일본의 지배도 사라질 것이다
41. 인간에게는 밥 이상의 것이 있다
42. 1950년, 환갑과 전쟁
43. 내 뒤에 오는 이
44. 나 어디 좀 간다
45. 9억 번의 숨이 멈추다
Author
이상국,박영호
본명보다는 인터넷 블로거들 사이에서 '빈섬'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빈섬'은 조회수 100만을 훌쩍 넘은 히트 블로그의 운영자인 그의 아이디이다. 빈섬이라는 아이디는 사랑이 지나가는 허탈(빈)과 사랑 한복판의 고독(섬)을 뜻한다. '빈섬'이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한 때 '이솜'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추사가 태어난 지(1786년 6월3일) 175년 1개월째 되던 날, 빈섬은 경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추사가 태어나던 날 우물물이 마르고 예산 오석산과 팔봉산의 나뭇잎들이 일시 시들었다고 하는데, 빈섬이 태어나던 저녁답은 경주 남산이 표정 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만 모친의 꿈에 봉황이 집 앞의 오동나무에 앉았다가 무지개를 타고 붉은 하늘을 날아올랐다. 어린 시절 추사는 예산 화암사를 드나들었지만, 빈섬은 경주 불무사佛無寺에 이름을 올렸다. 한 스님이 와서 어린 빈섬을 보고 불문佛門에 들면 한몫을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10세 때 추사는 박제가를 스승을 삼아 북학을 배우기 시작한 그때 빈섬은 초등학교에서 공부의 즐거움을 가르쳐준 김무열 선생을 만났고 그림과 만화에 심취해 있었다. 추사가 연경에 가던 25세 때 빈섬은 군에서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해서 연애에 빠졌다. 그가 초의를 만나던 30세 때, 빈섬은 결혼을 했고 신문사를 옮겼다. 북한산 순수비를 발견하던 31세엔 빈섬은 언론의 역할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32세 때 4월 29일 추사가 경주에 와서 무장사비 비편을 발견하던 날, 빈섬은 서울에서 신문사 야근을 하느라 바빴다. 추사가 규장각 대교가 되는 38세에 빈섬은 호암아트홀에서「세한도」를 만나고 이후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추사는 두 번 결혼을 하고 첩을 하나 두었으나, 빈섬은 한 번 결혼을 해서 그 아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추사의 인생시계로 보자면 지금은 효명세자 시절 피어났던 그의 정치적 꿈이 좌절된 뒤, 재기를 모색하는 때이다. 부친이 귀양을 간 뒤 그는 궁궐 앞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억울함을 알리는 꽹과리를 울렸다. 그런 오기와 격정의 시대에, 빈섬은 신문의 위기를 맞아 한 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다. 시와 역사를 공부하고 신문과 책들을 읽으며 잠을 줄여 글을 쓰면서 나름의 문제의식을 벼르고 있다. 그리고 김노경이 풀려나는 9월 이전에, 빈섬은 추사를 쫓아다닌 10년의 흔적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고 있으리라.

현재 한국언론재단의 편집 전문 교수로 10여 년째 활동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에서 편집 강의를 맡았고, 2009년 하반기부터 건국대학교에서 스토리텔링 강의를 한다. 현재 중앙일보에 정기 칼럼을 쓰고 있고, 월간중앙의 기획 취재와 편집을 맡아서 하고 있다. 신문사의 컨설팅도 하러 다니고, 블로그네이버'옛날다방'http://blog.naver.com/isomis에 글도 부지런히 쓴다. 같은 경주 출신인 아내와 재기 발랄한 딸 둘, 속이 넓은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저서로 『누드김밥의 노래』, 『러브레터 읽어주는 남자』(이상 산문집), 『옛 공부의 즐거움』, 『추사에 미치다』, 『눈물이 빗물처럼』(역사서), 『신문, 세상을 편집하라』, 『1인 미디어, 기획에서 제작까지』『옛 사람들의 걷기』등이 있다.
본명보다는 인터넷 블로거들 사이에서 '빈섬'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빈섬'은 조회수 100만을 훌쩍 넘은 히트 블로그의 운영자인 그의 아이디이다. 빈섬이라는 아이디는 사랑이 지나가는 허탈(빈)과 사랑 한복판의 고독(섬)을 뜻한다. '빈섬'이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한 때 '이솜'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추사가 태어난 지(1786년 6월3일) 175년 1개월째 되던 날, 빈섬은 경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추사가 태어나던 날 우물물이 마르고 예산 오석산과 팔봉산의 나뭇잎들이 일시 시들었다고 하는데, 빈섬이 태어나던 저녁답은 경주 남산이 표정 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만 모친의 꿈에 봉황이 집 앞의 오동나무에 앉았다가 무지개를 타고 붉은 하늘을 날아올랐다. 어린 시절 추사는 예산 화암사를 드나들었지만, 빈섬은 경주 불무사佛無寺에 이름을 올렸다. 한 스님이 와서 어린 빈섬을 보고 불문佛門에 들면 한몫을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10세 때 추사는 박제가를 스승을 삼아 북학을 배우기 시작한 그때 빈섬은 초등학교에서 공부의 즐거움을 가르쳐준 김무열 선생을 만났고 그림과 만화에 심취해 있었다. 추사가 연경에 가던 25세 때 빈섬은 군에서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해서 연애에 빠졌다. 그가 초의를 만나던 30세 때, 빈섬은 결혼을 했고 신문사를 옮겼다. 북한산 순수비를 발견하던 31세엔 빈섬은 언론의 역할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32세 때 4월 29일 추사가 경주에 와서 무장사비 비편을 발견하던 날, 빈섬은 서울에서 신문사 야근을 하느라 바빴다. 추사가 규장각 대교가 되는 38세에 빈섬은 호암아트홀에서「세한도」를 만나고 이후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추사는 두 번 결혼을 하고 첩을 하나 두었으나, 빈섬은 한 번 결혼을 해서 그 아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추사의 인생시계로 보자면 지금은 효명세자 시절 피어났던 그의 정치적 꿈이 좌절된 뒤, 재기를 모색하는 때이다. 부친이 귀양을 간 뒤 그는 궁궐 앞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억울함을 알리는 꽹과리를 울렸다. 그런 오기와 격정의 시대에, 빈섬은 신문의 위기를 맞아 한 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다. 시와 역사를 공부하고 신문과 책들을 읽으며 잠을 줄여 글을 쓰면서 나름의 문제의식을 벼르고 있다. 그리고 김노경이 풀려나는 9월 이전에, 빈섬은 추사를 쫓아다닌 10년의 흔적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고 있으리라.

현재 한국언론재단의 편집 전문 교수로 10여 년째 활동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에서 편집 강의를 맡았고, 2009년 하반기부터 건국대학교에서 스토리텔링 강의를 한다. 현재 중앙일보에 정기 칼럼을 쓰고 있고, 월간중앙의 기획 취재와 편집을 맡아서 하고 있다. 신문사의 컨설팅도 하러 다니고, 블로그네이버'옛날다방'http://blog.naver.com/isomis에 글도 부지런히 쓴다. 같은 경주 출신인 아내와 재기 발랄한 딸 둘, 속이 넓은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저서로 『누드김밥의 노래』, 『러브레터 읽어주는 남자』(이상 산문집), 『옛 공부의 즐거움』, 『추사에 미치다』, 『눈물이 빗물처럼』(역사서), 『신문, 세상을 편집하라』, 『1인 미디어, 기획에서 제작까지』『옛 사람들의 걷기』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