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역사를 읽는 것은 과거의 경험을 반추하면서 지금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따라 역사학은 과거의 경험을 지금 여기로 어떻게 소환할 것인가에 관심이 많다. 그 때문일까. 선비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거나, 망국적 사대주의의 잔재를 청산하여 더 주체적인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선비정신과 사대주의라는 두 단어가 썩 어울린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중 하나를 되살리고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할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눈으로 보면 사대를 말한 것은 바로 선비였다. 선비와 사대 두 단어 아래를 관통하는 공통의 심연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은이가 지금 여기에서 중화를 다시 읽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은이는 중화를 매개항으로 하여 그 심연의 역사를 치밀하게 독해하고, 선비정신이나 사대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의 현재적 의의를 밝혀 보려 한다.
Contents
책머리에
왜 중화인가
서설_중화론의 시대적 변천
화이지변과 대일통의 중국사│석개와 구양수│주자와 진량│왕부지│유사배와 강유위│‘화이’와 ‘민족국가’ 구상│중심 · 주변의 의제와 한국사│책의 구성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에서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다. 역사학자의 이름으로 살고 있다. 오랫동안 조선 후기 역사에 관한 글을 써 왔지만, 간간이 그 시대를 벗어나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다. 좀 더 긴 호흡으로 읽어 내는 역사상을 추구해 왔기 때문이다. 주로 사상과 문화를 그 시대의 문맥 위에서 묘사해 왔지만, 때로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 시대 속 깊이 들어가 보고 싶기도 했다. 개성이 살아 있는 역사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글이 사람을 말해 주는 그런 글쓰기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인가는 장소 친화적인 역사학의 가능성에 눈을 돌리기도 했다. 장소가 무대나 용기가 아니라 시간 속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역사적 실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에서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다. 역사학자의 이름으로 살고 있다. 오랫동안 조선 후기 역사에 관한 글을 써 왔지만, 간간이 그 시대를 벗어나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다. 좀 더 긴 호흡으로 읽어 내는 역사상을 추구해 왔기 때문이다. 주로 사상과 문화를 그 시대의 문맥 위에서 묘사해 왔지만, 때로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 시대 속 깊이 들어가 보고 싶기도 했다. 개성이 살아 있는 역사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글이 사람을 말해 주는 그런 글쓰기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인가는 장소 친화적인 역사학의 가능성에 눈을 돌리기도 했다. 장소가 무대나 용기가 아니라 시간 속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역사적 실체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