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사례가식

실시학사 실학번역총서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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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55501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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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5/05/20
Pages/Weight/Size 152*223*30mm
ISBN 9791155501085
Categories 인문 > 한국철학
Description
다산 정약용이 정리한, ‘관혼상제’ 실용 예법서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의 가례(家禮) 관련 저술은 예송(禮訟)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에서부터 관혼상제에 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왕조례(王朝禮)부터 사대부례(士大夫禮)에 이르기까지 그 연구의 폭도 상당히 넓었으며, 이를 위해 다산은 상당한 기간을 예학(禮學) 연구에 매진했다. [사례가식(四禮家式)]은 바로 이러한 성과의 한 예로서, 다산은 이를 통해 조선의 실상에 맞는 관?혼?상?제례의 예식을 정비하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했다.
이 책은 재단법인 실시학사에서 펴내는 ‘실학번역총서’의 여섯 번째 책으로, 정약용의 [사례가식]를 현대어로 처음 옮긴 번역서다. 상세한 역주를 달았으며, 또한 해제를 붙였다. 후미의 부록에는 그 원문을 표점과 함께 실어, 학인들에게 제대로 된 독서 환경을 제공하고자 했다.
Contents
간행사 실학번역총서를 펴내며
해제

Ⅰ. [관례작의(冠禮酌儀)]
1. 고묘(告廟) | 2. 계빈(戒賓) | 3. 숙빈(宿賓) | 4. 세(洗)·복(服)·즐(櫛)·관(冠)의 진설 | 5. 초례(醮禮) 도구의 진설 | 6. 주인·빈·찬·장관자의 위치 | 7. 빈·찬·장관자의 시가례 이전 의절 | 8. 시가례(始加禮) | 9. 재가례(再加禮) | 10. 삼가례(三加禮) | 11. 초례(醮禮) | 12. 부(父)·제부(諸父) 등을 알현(謁見) | 13. 자관(字冠) | 14. 예빈(醴賓) | 15. 모(母)·고자(姑 ) 등을 알현(謁見)

Ⅱ. [혼례작의(婚禮酌儀)]
1. 납채(納采) | 2. 문명(問名)과 예빈(醴賓) | 3. 납길(納吉) | 4. 청기(請期) | 5. 납징(納徵) | 6. 전안례(奠雁禮) | 7. 합근례(合 禮) | 8. 초자(醮子) 및 친영(親迎) | 9. 공뢰(共牢) | 10. 현구고(見舅姑) | 11. 예부(醴婦) | 12. 관궤( 饋) | 13. 향부(饗婦) | 14. 현묘(見廟) | 15. 현조묘(見祖廟) | 16. 척제비리지속(滌除鄙俚之俗)

Ⅲ. [상의절요(喪儀節要)]
1. 시졸(始卒) | 2. 습함(襲含) | 3. 소렴(小斂) | 4. 대렴(大斂) | 5. 성복(成服) | 6. 성빈(成殯) | 7. 계빈(啓殯) | 8. 조전(祖奠) | 9. 발인(發引) | 10. 폄( )·반곡(反哭) | 11. 우제(虞祭) | 12. 졸곡(卒哭)·부( ) | 13. 소상(小祥) | 14. 대상(大祥) | 15. 담제( 祭) | 16. 분상(奔喪) | 17. 거상지제(居喪之制)

Ⅳ. [제례고정(祭禮考定)]
1. 제법고(祭法考) | 2. 제기고(祭期考) | 3. 제의고(祭儀考) | 4. 제찬고(祭饌考)

[부견가례지식(附見嘉禮之式)]
[부견가례지식(附見嘉禮之式)]

[길제설(吉祭說)]
길제(吉祭) | [시용길제의(時用吉祭儀)]

부록
Ⅰ. [관례작의(冠禮酌儀)] 원문 | Ⅱ. [혼례작의(婚禮酌儀)] 원문 | Ⅲ. [상의절요(喪儀節要)] 원문 | Ⅳ. [제례고정(祭禮考定)] 원문 | [부견가례지식(附見嘉禮之式)] 원문 | [길제설(吉祭說)]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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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정약용,전성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