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저자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에서 전임연구원으로 일하며 작성한 연구노트를 다시 정리하여 발간한 책이다. 공동자원체제(commons)를 학습하면서 저자가 만난 다양한 글과 쟁점에 관한 노트가 수록되어 있다. 책 제목은 저자가 좋아하는 안토니오 그람시와 스튜어트 홀에 관한 오마주이다. 공동자원체제는 복수의 개인들이 공동으로 특정 자원을 이용하는 걸 보장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자원과 제도 그리고 둘을 매개하는 인간 실천의 결합 양식을 말한다. 이때 제도는 단지 자원을 직접 이용하는 이들만의 규칙을 말하지는 않는다.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대부분의 공동자원체제는 이용자들만의 규칙이 아니라 그 자원과 관계하는 다양한 집단의 실천 혹은 다층적 제도와의 상호작용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었다. 체제(regime)라는 개념을 'commons'의 역어에 포함시킨 이유이다. 이런 관점을 택해야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공동자원체제의 구조가 보다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연구노트는 공동자원체제의 역사를 직접 추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1990년대를 거치면서 부활한 현대 공동자원체제 연구의 지형을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연구노트를 총 5부로 나누어 배치했다. 1부에서는 현대 공동자원체제 담론이 준거로 활용하는 역사적 출처를 살펴본다. 2부에서는 현대 공동자원체제 연구의 출발점인 개릿 하딘의 '공동자원체제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을 다시 독해하는 경로가 가능한지 묻는다. 3부와 4부에는 개릿 하딘 이후 현대 공동자원체제 패러다임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엘리너 오스트롬과 동료들의 연구와 사회운동 접근에 관한 글을 묶었다. 마지막으로 5부에서는 공동자원체제에 내재한 공동보장의 윤리를 현대 안전 보장의 정치와 결합하는 새로운 제도 창안의 원리를 모색했다. 완성되지 않은 연구이다. 하지만 누군가에는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묶어 보았다.
공동자원체제(commons)에 관한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공동자원체제 그 자체를 진보적이라거나 혹은 반동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공동자원체제의 정치적 의미는 외부적 환경과 분리된 공동자원체제 본래의 내적이고 독립적인 구조나 그 속성으로부터 곧바로 도출되지 않는다. 공동자원체제가 어떤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면 그것은 공동자원체제와 특정한 정치적 실천과의 접합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공동자원체제 그 자체를 기존 질서에 맞서는 새로운 대안이나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사회성의 요소로 바라보는 건 위험하다. 공동자원체제가 반자본주의 기획의 일부로 작동할 수 있다면 바로 같은 이유로 공동자원체제는 현대 자본주의를 보완하고 교정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다.
공동자원체제에 관한 반본질주의적 접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런 접근 방식은 공동자원체제와 대안적인 정치적 실천을 분리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다만, 공동자원체제를 우리 시대의 유토피아(utopia)로 다루면서 공동자원체제 그 자체와 대안 정치를 동일시하는 낭만적 시선에 반대할 뿐이다. 우리는 공동자원체제 또한 특정한 유형의 권력 관계를 매개로 구성되고 작동한다는 점과 공동자원체제가 다양한 정치 프로젝트의 경합대상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공동자원체제가 우리 사회에서 대안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면, 이는 공동자원체제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창안해낸 새로운 정치적 실천과 공동자원체제가 만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이 택한 반본질주의적 접근의 목표는 바로 그 정치적 실천의 창안에 있다.
Contents
01. 분석 방법으로서 ‘Commons’ 번역과 그 정의 = 공동자원체제
02. 현대 공동자원체제 프로젝트의 지형
1부 공동자원체제 접근의 역사적 출처
03. 유스티니아누스 법전과 “레스 코뮤네스”(res communes)
04. 잉글랜드 공용지(common or common land) 개념의 확장: 공동자원체제 설명의 표준 모형 등장
05. 식민화와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
06. 비서구 공동자원체제와 다른 질문들
2부 개릿 하딘과 공동자원체제의 비극
07. 개릿 하딘: 삶과 연구의 궤적
08. 공동자원체제의 비극: 개릿 하딘의 다른 독해를 위한 준비
[추기(追記)] 개릿 하딘의 ‘비극’ 개념
09. 공동자원체제의 비극에 관한 비판 유형과 그 핵심 논지
10. 죄수의 딜레마, 그리고 협력 진화 게임
11. 파편재산체제의 비극(Tragedy of Anticommons): 공동자원체제의 과잉 사유화에 따른 과소이용의 딜레마
3부 엘리너 오스트롬과 그 비판적 독해
12. 공동이용자원(Common Pool Resource) 범주의 확립과 공동자원체제 경제학의 공고화
13. 권리의 다발: 공동자원체제에 관한 배타적인 사적 소유의 사회적 제한과 다중적인 권리체제의 적용
14. 디자인 원리(Design principle)와 그 비판 및 대응
15. 엘리너 오스트롬의 다중심적 접근(polycentric approach)
16. 엘리너 오스트롬의 방법론적 난점과 공백
17. 공동자원체제와 시장, 그리고 비인간 행위성의 상호작용: 어장, 시장, 성게, 그리고 갯녹음
18. 인간 너머의 공동자원체제(The more than human commons)와 공동(재)생산활동(commoning)의 한계
4부 공동자원체제와 사회운동
19. 공동자원화 사회운동과 그 패러다임 진화
20. 새로운 농민 운동과 공동이용자원(Common Pool Resources) 개념의 확장
21. 디자인 원리(Design principle)를 통한 공동자원화 사회운동 분석의 가능성
22. 공동(재)생산활동(commoning): 사회운동의 시각
23. 두려움 없는 도시들: 유럽 새로운 도시자치주의 운동과 공동자원체제
24. 한국 공동자원화 사회운동의 부상: 예비 분석
5부 공동자원체제와 현대 생활안전체제의 재구성을 위한 탐구
25. 공동보장 윤리의 재발견과 현대 돌봄 윤리와의 접합
26. 신호 기반 다중심 조정 체제
27. 공동자원체제의 현대적 제도화를 위한 정책적 정의와 일반적 관리 원칙의 모색
28. 공동자원생활체제(commonfare) 제도 설계를 위한 서설
29. 공동자원체제와 선분배, 그리고 민주주의
30. 장기제도화 이행 관리를 위한 원칙 탐구
참고문헌
Author
장훈교
1975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라고 배웠다. 1994년 한양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하기는 했지만, 졸업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4년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에 들어갔다. 2014년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조절사회 개념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첫 책은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을 다룬 『밀양전쟁: 공통자원 기반 급진민주주의 프로젝트』(2016)이다. 2016년 여름부터 일년 반 정도 《서울혁신센터 사회혁신리서치랩》이란 곳에서 일을 했다. 다음 해 2017년 12월부터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에서 일을 했다. 제주에서 약 4년을 보냈다. 제주에서 두 권의 책을 냈다. 틈틈이 공부하던 노동사회 관련 고민을 정리한 『일을 되찾자: 좋은 시간을 위한 공동자원체계의 시각』(2019)과 《서울혁신센터 사회혁신리서치랩》에서 진행하던 연구조사 활동을 정리하고자 쓴 『비틀리는 사회혁신: 대항헤게모니적 개입을 위한 비판』(2021)이다. 2021년 8월 구리로 이주해 현재 살고 있다. 지금은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강사로 일하며 책을 쓰고 있다. 도서관, 연구소, 작업장이 함께 어우러진 ‘모든이의 민주주의’라는 작은 공간을 꿈꾸고 있다.
1975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라고 배웠다. 1994년 한양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하기는 했지만, 졸업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4년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에 들어갔다. 2014년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조절사회 개념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첫 책은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을 다룬 『밀양전쟁: 공통자원 기반 급진민주주의 프로젝트』(2016)이다. 2016년 여름부터 일년 반 정도 《서울혁신센터 사회혁신리서치랩》이란 곳에서 일을 했다. 다음 해 2017년 12월부터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에서 일을 했다. 제주에서 약 4년을 보냈다. 제주에서 두 권의 책을 냈다. 틈틈이 공부하던 노동사회 관련 고민을 정리한 『일을 되찾자: 좋은 시간을 위한 공동자원체계의 시각』(2019)과 《서울혁신센터 사회혁신리서치랩》에서 진행하던 연구조사 활동을 정리하고자 쓴 『비틀리는 사회혁신: 대항헤게모니적 개입을 위한 비판』(2021)이다. 2021년 8월 구리로 이주해 현재 살고 있다. 지금은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강사로 일하며 책을 쓰고 있다. 도서관, 연구소, 작업장이 함께 어우러진 ‘모든이의 민주주의’라는 작은 공간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