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늙은 승려는 나이 팔십이 다 되서야 깨달음을 얻었다. 뒤늦게 깨달음을 얻은 승려는 정말 애처롭게 울었는데, 그 모습을 기이하게 여긴 시자가 물었다. “스님, 이제 깨달으셨는데 어째서 그렇게 울고계십니까?” 승려가 답했다. “인생을 허비했어.”
공자는 오늘 도를 깨치면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지만, 이는 도에 관한 거친 상상의 결과물이다. 도는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도는 이 모든 것들을 초월하게 해주지 않는다.) 불교적 깨달음을 얻는 것, 선에 관한 진정한 안목을 얻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종교적 깨달음에 관한 거친 동경은 삶 자체를 돌아보지 못하도록 만든다. 본질을 너무 깊이 응시하려던 나머지 현상을 잊어버린다. 조심하시길. 본래면목은 언제나 그대로지만, 한 번 지나간 삶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Author
설지
스무살, 친구가 죽었고 나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죽음에 대한 몸부림이 나를 절로 가게 만들었다. 머리를 밀고, 먹물옷을 입고, 선원에서 좌선을 하며 때론 글을 쓰기도 한다. 저서로는 『인생의 허무함에 관한 논고』, 『참선일기』, 『묵조선을 위한 변명』, 『나는 어째서 중이 되었나』가 있다.
스무살, 친구가 죽었고 나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죽음에 대한 몸부림이 나를 절로 가게 만들었다. 머리를 밀고, 먹물옷을 입고, 선원에서 좌선을 하며 때론 글을 쓰기도 한다. 저서로는 『인생의 허무함에 관한 논고』, 『참선일기』, 『묵조선을 위한 변명』, 『나는 어째서 중이 되었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