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마당을 쓸던 제자가 스승에게 말했다.
"스님, 낙엽을 깨끗이 치웠습니다."
이를 본 스승은 나무를 흔들어 낙엽 몇 장을 흩뿌리곤 말했다.
"가을은 원래 이런 것이다."
선불교의 가장 큰 특징은 번뇌를 다루지 않는 것이다. 선불교는 번뇌를 긍정한다. 번뇌의 소멸을 기대하지 않으며, 욕망과 정서로 펼쳐지는 번뇌의 세계에 기꺼이 응한다. 상좌부불교의 아라한들이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절멸하고 있을 때, 선종의 선사들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가득한 저잣거리를 노닐었다. 아라한들이 춤과 노래에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채 분소의와 발우 하나로 금욕적인 삶을 살아갈 때, 선사들은 거문고를 튕기고 차를 즐기며, 깨달음의 시를 지었다. 선종에서는 아내가 있고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그들의 깨달음과 모순되지 않았다. 초기불교에는 깨달은 재가자가 없지만, 선불교에서는 깨달은 재가자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 책은 선불교의 사상, 선불교의 수행, 선불교의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아와 욕망과 정서를 그려나가는 선불교의 세계를 담았다.
Contents
1부
참선의 민낯
불완전한 열반
선불교는 번뇌를 다루지 않는다
철저히 자아가 된다
출세간, 세간
깨달음의 위험성
앉아있는 삶
깨달음에는 윤리가 없지만
감정의 문제
현상과 현상의 바탕
부모미생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만
욕망 속으로
고통에 관하여
완벽한 재료
참선의 섬뜩함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삶의 미장센
도겐의 좌선
종교는 피로 쓰여진다
선불교적인 삶
뜯겨져 나오는 것들
간화선과 조사선 수행에 관한 고찰
본래면목의 함성
공 도리 조금 봤을 뿐이오
본래면목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
1인칭의 실존적 체험
풍요롭게 하는 것들
욕망, 분노, 어리석음을 위한 변명
초기불교와 선불교의 철학
선불교를 위한 변명
불교적 수행
선불교의 이단아, 조동종
치매는 깨달음을 앗아가는가
삶의 날 것
쿨하지 못해 미안해
조사선은 어째서 살아남지 못했나
단조로운 삶
깨달음의 값어치
반反깨달음주의
영적 물질주의
수행으로부터의 자유
삶의 바깥
부처도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
내가 이야기하면 곧이 듣겠느냐
깨달은 뒤에도 수행을 해야 합니까?
깨달음과 번뇌
2부
사적인 단상들
어쩔 수 없이 미니멀라이프
죽음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성과 전문성, 그 사이에서
그렇게 불교는 흘러간다
승려로서의 삶에 관하여
읽고 쓰는 사람, 말하고 듣는 사람
일상적인 이야기
정리되지 않은 단상들
다도, 커피, 카페인 그리고 선방
삶의 역설
사는 대로 생각하기
삶을 선택할 수 있는가
먹물옷의 무게
적당히 좋은 삶
잠에서 깨어나는 꿈
미완의 깨달음, 미완의 수행
아이러니
선의 첫 번째 관문
선의 두 번째 관문
깨달음 한탕주의
달마는 아직도 좌선 중
Author
설지
스무살, 친구가 죽었고 나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죽음에 대한 몸부림이 나를 절로 가게 만들었다. 머리를 밀고, 먹물옷을 입고, 선원에서 좌선을 하며 때론 글을 쓰기도 한다. 저서로는 『인생의 허무함에 관한 논고』, 『참선일기』, 『묵조선을 위한 변명』, 『나는 어째서 중이 되었나』가 있다.
스무살, 친구가 죽었고 나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죽음에 대한 몸부림이 나를 절로 가게 만들었다. 머리를 밀고, 먹물옷을 입고, 선원에서 좌선을 하며 때론 글을 쓰기도 한다. 저서로는 『인생의 허무함에 관한 논고』, 『참선일기』, 『묵조선을 위한 변명』, 『나는 어째서 중이 되었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