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때의 저명한 희곡 이론가이자 희곡과 소설의 작가이기도 하다. 자는 입옹(笠翁)으로 절강성(浙江省) 난계현(蘭溪縣) 출신이다. 전당(錢塘)에 산 적이 있어서, 이어가 전당 사람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이어는 자칭 호상입옹(湖上笠翁)이라 했고, 수암주인(隨菴主人), 신정객초(新亭客樵)라고도 했다. 명나라 신종(神宗) 만력(萬曆) 39년(1611년)에 치고(雉皐)에서 출생했으나, 그가 세상을 떠난 해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청나라 강희(康熙) 16년(1677년)까지는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금릉의 별장에서 지낼 때, 그곳의 이름을 ‘개자원(芥子園)’이라 하고 그곳에서 열었던 책방 역시 ‘개자원’이라 불렀다. 이 ‘개자원’에서 출판된 책들은 지금까지도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다.
이어는 젊어서 누차 과거 시험에 떨어지자, 청 왕조가 들어서서는 출사의 뜻을 접고 여러 지역을 편력하며 많은 명사들과 교류했다. 명나라 말엽에 문학 활동을 시작했는데 특히 소설과 희곡에 재능이 있었다. 일찍부터 가기(家妓)들에게 희곡을 연습시켜 여러 지역에서 공연을 해 희곡 창작과 연출에 풍부한 경험을 쌓기도 했다. 그의 희곡 작품으로는 『내하천(奈何天)』, 『비목어(比目魚)』, 『신중루(蜃中樓)』, 『연향반(憐香伴)』, 『풍쟁오(風箏誤)』, 『신란교(愼鸞交)』, 『황구봉(凰求鳳)』, 『교단원(巧團圓)』, 『옥소두(玉搔頭)』, 『의중연(意中緣)』 등의 『입옹십종곡(笠翁十種曲)』이 유명하다.
이어의 희곡 작품은 남녀 간의 진한 애정극이나 골계극이 주를 이루어 내용과 대사가 음탕하며 저속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누구나 알기 쉽게 통속적이었고 평범치 않은 제재를 활용했으며, 새롭고도 독특한 풍치와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게다가 날카로운 풍자성을 드러냈고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상연에 적합한 장점을 지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어는 희곡의 비평과 이론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는데, 『한정우기(閑情偶寄)』에 그의 희곡에 대한 이론이 잘 나타나 있다.
이어 이전에도 명대에서 청대에 이르기까지 희곡 이론을 전개한 이들이 있었지만, 이어는 극본의 창작에서 연출에 이르기까지 희곡 전반에 걸쳐 체계적이며 계통적인 이론을 전개했다. 그는 희곡의 연출, 구성, 음률, 빈백(賓白), 무대 설치와 도구 등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두루 다루었으며, 일반적으로 희곡을 평가할 때 곡사(曲辭)와 음률에 중점을 두는 데 반해, 이어는 실제 무대 연출을 전제로 희곡의 구성이나 대사의 사용, 사건 전개, 연출 효과 등을 모두 중시했다. 이어는 희곡뿐 아니라 소설에서도 두각을 드러내, 『무성희(無聲戱)』와 『열두 누각 이야기(十二樓)』 등의 단편소설집과 장편소설 『합금회문전(合錦回文傳)』을 창작했다.
청나라 때의 저명한 희곡 이론가이자 희곡과 소설의 작가이기도 하다. 자는 입옹(笠翁)으로 절강성(浙江省) 난계현(蘭溪縣) 출신이다. 전당(錢塘)에 산 적이 있어서, 이어가 전당 사람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이어는 자칭 호상입옹(湖上笠翁)이라 했고, 수암주인(隨菴主人), 신정객초(新亭客樵)라고도 했다. 명나라 신종(神宗) 만력(萬曆) 39년(1611년)에 치고(雉皐)에서 출생했으나, 그가 세상을 떠난 해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청나라 강희(康熙) 16년(1677년)까지는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금릉의 별장에서 지낼 때, 그곳의 이름을 ‘개자원(芥子園)’이라 하고 그곳에서 열었던 책방 역시 ‘개자원’이라 불렀다. 이 ‘개자원’에서 출판된 책들은 지금까지도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다.
이어는 젊어서 누차 과거 시험에 떨어지자, 청 왕조가 들어서서는 출사의 뜻을 접고 여러 지역을 편력하며 많은 명사들과 교류했다. 명나라 말엽에 문학 활동을 시작했는데 특히 소설과 희곡에 재능이 있었다. 일찍부터 가기(家妓)들에게 희곡을 연습시켜 여러 지역에서 공연을 해 희곡 창작과 연출에 풍부한 경험을 쌓기도 했다. 그의 희곡 작품으로는 『내하천(奈何天)』, 『비목어(比目魚)』, 『신중루(蜃中樓)』, 『연향반(憐香伴)』, 『풍쟁오(風箏誤)』, 『신란교(愼鸞交)』, 『황구봉(凰求鳳)』, 『교단원(巧團圓)』, 『옥소두(玉搔頭)』, 『의중연(意中緣)』 등의 『입옹십종곡(笠翁十種曲)』이 유명하다.
이어의 희곡 작품은 남녀 간의 진한 애정극이나 골계극이 주를 이루어 내용과 대사가 음탕하며 저속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누구나 알기 쉽게 통속적이었고 평범치 않은 제재를 활용했으며, 새롭고도 독특한 풍치와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게다가 날카로운 풍자성을 드러냈고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상연에 적합한 장점을 지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어는 희곡의 비평과 이론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는데, 『한정우기(閑情偶寄)』에 그의 희곡에 대한 이론이 잘 나타나 있다.
이어 이전에도 명대에서 청대에 이르기까지 희곡 이론을 전개한 이들이 있었지만, 이어는 극본의 창작에서 연출에 이르기까지 희곡 전반에 걸쳐 체계적이며 계통적인 이론을 전개했다. 그는 희곡의 연출, 구성, 음률, 빈백(賓白), 무대 설치와 도구 등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두루 다루었으며, 일반적으로 희곡을 평가할 때 곡사(曲辭)와 음률에 중점을 두는 데 반해, 이어는 실제 무대 연출을 전제로 희곡의 구성이나 대사의 사용, 사건 전개, 연출 효과 등을 모두 중시했다. 이어는 희곡뿐 아니라 소설에서도 두각을 드러내, 『무성희(無聲戱)』와 『열두 누각 이야기(十二樓)』 등의 단편소설집과 장편소설 『합금회문전(合錦回文傳)』을 창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