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를 판 나라, 고구려를 침입했다가 살수대첩으로 무너진 나라, 그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수나라다. 상고시대부터 한나라까지의 역사가 『사기(史記)』에 담겨 있다면, 혼란했던 남북조 시대를 통일한 수나라의 역사는 『수서(隋書)』에 담겨 있다.
「식화지」, 「형법지」는 『수서』에 수록된 십지(十志) 중 두 편의 편명이다. 「식화지」는 『수서』 권24에, 「형법지」는 권25에 수록되어 있다. 「식화지」는 한 나라의 경제 관련 제도, 즉 인구·전답·부세 등의 내용을 기록한 편이다. 「형법지」는 말 그대로 형벌과 법에 관한 제도와 내용을 기록한 편이다. 다른 사서의 식화지,형법지가 한 나라의 경제 전반이나 형벌만을 기록한 것인 반면 『수서』 「식화지」,「형법지」는 위진남북조에서 수나라에 이르러 약 300년에 걸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국내 초역이다.
Contents
권24 지 제19
식화
권25 지 제20
형법
부록: 《수서》 전체 구성과 전체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Author
위징,영호덕분,권용호
당나라 초기의 명재상이다. 자는 현성(玄成)이고, 거록군(巨鹿郡) 하곡양현(下曲陽縣) 사람이다. 일찍이 수(隋)나라의 위공(魏公) 이밀(李密)을 따라 수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당(唐) 고조(高祖) 무덕(武德) 원년(618년)에 당나라에 귀순했다. 정관(貞觀) 원년(627년)에 간의대부(諫議大夫)·비서감(秘書監) 등을 지냈고, 고적(古籍)을 정리하고 『수서(隋書)』의 편찬 작업에도 참여했다. 후에 시중(侍中)·태자태사(太子太師)에 임명되었고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졌다. 직언을 잘했고 왕도정치를 주창했다. 태종(太宗)을 보좌해 정관지치(貞觀之治)를 이룩했다. 정관 17년(643년)에 세상을 떠났다. 저작으로는 『수서』를 비롯해 『정관정요(貞觀政要)』·『군서치요(群書治要)』 등이 있다.
당나라 초기의 명재상이다. 자는 현성(玄成)이고, 거록군(巨鹿郡) 하곡양현(下曲陽縣) 사람이다. 일찍이 수(隋)나라의 위공(魏公) 이밀(李密)을 따라 수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당(唐) 고조(高祖) 무덕(武德) 원년(618년)에 당나라에 귀순했다. 정관(貞觀) 원년(627년)에 간의대부(諫議大夫)·비서감(秘書監) 등을 지냈고, 고적(古籍)을 정리하고 『수서(隋書)』의 편찬 작업에도 참여했다. 후에 시중(侍中)·태자태사(太子太師)에 임명되었고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졌다. 직언을 잘했고 왕도정치를 주창했다. 태종(太宗)을 보좌해 정관지치(貞觀之治)를 이룩했다. 정관 17년(643년)에 세상을 떠났다. 저작으로는 『수서』를 비롯해 『정관정요(貞觀政要)』·『군서치요(群書治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