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언각비(雅言覺非) 큰글씨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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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1/04/28
Pages/Weight/Size 210*297*30mm
ISBN 9791128856464
Categories 인문 > 철학/사상
Description
다산 정약용이 사람들이 자주 쓰지만 잘못 쓰고 있는 말과 글을 골라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헌 연구를 통해 바른 어원을 밝힌 어원 연구서다. 일상생활에서 잘못 쓰고 있는 200여 항목을 조사, 정리했다. 지명, 나무 이름, 벼슬 이름, 음식 이름 등 다양한 방면의 단어들을 고찰하고 있어 작은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조선 후기 당시 자주 쓰던 말과 그 말의 어원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시 어떻게 잘못 전승되어 왔는지도 알 수 있어 한문학과 국어, 문화사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된다. 옮긴이는 정약용이 참고했던 각종 중국 자료들을 모두 확인하여 각종 오류와 오역을 바로잡았다.
Contents
아언각비 1(雅言覺非 一)
소인(小引)
서문
1. 장안(長安)·낙양(洛陽)
2. 경구(京口)
3. 태수(太守)·사군(使君)
4. 쉬(?)
5. 방백(方伯)
6. 감무(監務)
7. 독우(督郵)
8. 원외랑(員外郞)
9. 금오(金吾)
10. 제학(提學)
11. 사마(司馬)
12. 국자(國子)
13. 장원(狀元)
14. 발개(發解)
15. 빈공(賓貢)
16. 수역(水驛)
17. 행단(杏壇)
18. 동백[山茶]
19. 백나무[柏]
20. 회나무[檜]
21. 삼나무[杉]
22. 박달나무[檀]
23. 계수나무[桂]
24. 갈대[蘆竹]
25. 싸리나무[杻]·가시나무[荊]
26. 가래나무[?]
27. 여공(藜?)
28. 두중(杜仲)
29. 해당(海棠)
30. 단풍나무[楓]
31. 느릅나무[楡]
32 사삼(沙蔘)·깽깽이풀[黃連]
33. 후박(厚朴)·모란(牡丹)
34. 박하(薄荷)·패랭이꽃[瞿麥]
35. 기장[稷]
36. 참깨[胡麻]·들깨[靑蘇]
37. 수수[?黍]
38. 메밀[蕎麥]
39. 모시[?]
40. 자초(紫草)
41. 차(茶)
42. 율무[薏苡]
43. 면(?)
44. 장(醬)
45. 두부(豆腐)
46. 젓국[醯]
47. 제(?)
48. 새앙[薑]·사양[讓]
49. 솔[?]·솔[松]
50. 쓴[辛]·쓴[苦]
51. 김(金)·금(金)
52. 한(澣)·완(浣)
53. 환(宦)·환(?)
54. 석력(淅瀝)
55. 솔(刷)·차(箚)
56. 아(阿)
57. 일급(一級)
58. 천금(千金)
59. 1관(一貫)
60. 한 발(一?)
61. 1파(一把)
62. 3촌(三寸)

아언각비 2(雅言覺非 二)
63. 납채(納采)
64. 초례[醮]
65. 형수[嫂]
66. 고모[姑]
67. 빙군(聘君)
68. 처남[?]
69. 어보(漁父)
70. 화옹(化翁)
71. 친척[戚]
72. 향(鄕)
73. 고을·골[洞]
74. 골짜기[峽]
75. 암(巖)
76. 항(巷)
77. 호(湖)
78. 강(江)·하(河)
79. 한수(漢水)
80. 벼랑[遷]
81. 봉(峯)·빈(濱)
82. 원(原)·옥(屋)
83. 바퀴[輪]·꽃봉오리[?]
84. 술잔(盞)·삿대[?]
85. 선(鐥)
86. 장군[缶]
87. 슬(瑟)
88. 기러기발[琴徽]
89. 퉁소[洞簫]
90. 경쇠[磬]
91. 각(角)
92. 고깔[弁]
93. 삿갓[笠]
94. 상관(喪冠)
95. 철릭[帖裏]
96. 아얌[額掩]
97. 휘양[護項]
98. 토시[套袖]
99. 감투[?頭]
100. 면포(棉布)
101. 누비[衲衣]
102. 봉액(逢掖)
103. 탑련(搭連)
104. 대패[推?]
105. 솥[鼎]
106. 규(圭)·홀(笏)
107. 고삐[?]
108. 상여 줄[引]
109. 재갈[銜]
110. 짐[任]
111. 유사(遺事)
112. 패자(牌子)
113. 구(句)
114. 고풍(古風)
115. 풍월(風月)
116. 여(儷)·율(律)
117. 시전(詩傳)·서전(書傳)
118. 사기(史記)·통감(通鑑)
119. 반절(反切)
120. 도목(都目)
121. 향소(鄕所)
122. 귀향(歸鄕)
123. 기인(其人)
124. 양반(兩班)
125. 생원(生員)
126. 추고(推考)
127. 욕(辱)
128. 태(笞)·장(杖)
129. 기추(箕?)
131. 허리띠[帶子]
131. 공연(公然)

아언각비 3(雅言覺非 三)
132. 태묘(太廟)
133. 시동(尸童)
134. 태복(太僕)
135. 선마(洗馬)
136. 좨주(祭酒)
137. 글단(契丹)·묵특(冒頓)
138. 범저(范雎)
139. 조조(?錯)
140. 용골대(龍骨大)
141. 부처[佛]·보처(補處)
142. 중[僧]
143. 발[趾]·기둥[棟]
144. 시(媤)·사(査)
145. 녹(?)·축(軸)
146. 조(?)·적(?)
147. 섬(?)
148. 송순(松?)
149. 송진(松津)
150. 서통(犀通)
151. 소의 위장[牛胃]
152. 밀자(蜜炙)
153. 아도(阿堵)
154. 권척(拳?)
155. 견(?)
156. 변기(?棄)
157. 재숙(齊宿)
158. 합문(闔門)
159. 효자(孝子)
160. 애자(哀子)
161. 작설(綽楔)
162. 정사(精舍)
163. 헌(軒)·청(廳)
164. 사랑(斜廊)
165. 아(衙)
166. 유(?)
167. 계(?)
168. 상사(上巳)
169. 파일(破日)
170. 노을[霞]
171. 탄기(彈?)
172. 잔탁(盞托)
173. 탕병(湯?)
174. 약과(藥果)
175. 분견(粉繭)
176. 인단(印團)
177. 수단(水團)
178. 산자(?子)
179. 조고(棗?)
180. 각서(角黍)
181. 전과(煎果)
182. 호구(?口)
183. 면어(?魚)
184. 해즉(海?)
185. 노(?)
186. 긴맛[?]
187. 그리마[?]
188. 포합(蒲?)
189. 수표(水豹)
190. 맥(貊)·예(濊)
191. 화랑(花郞)
192. 수척(水尺)
193. 노비[臧獲]
194. 걸사(乞士)
195. 삼한(三澣)
196. 사(?)
197. 세(貰)
198. 배교(杯?)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Author
정약용,박상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