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창령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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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0/07/28
Pages/Weight/Size 125*189*20mm
ISBN 9791128854927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시/희곡
Description
고적, 잠삼과 함께 당나라 변새시파를 대표하는 왕창령의 시를 엮었다. 그는 변방의 이국적이고도 쓸쓸한 풍광, 종군한 병사의 고통과 향수를 섬세한 표현과 치밀한 구성으로 노래했다. 특히 칠언절구에 뛰어나 이백과 더불어 후대 창작의 모범이 되었으며 ‘칠언성수(七言聖手)’ 혹은 ‘칠언장성(七言長城)’이라고 높이 칭송받았다.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출간한 『고적 시선』, 『잠삼 시선』과 함께 읽으면 변새시에 대해 한층 깊이 이해할 수 있다.
Contents
「행로난」을 바꾸어
변경의 노래 4수
변경의 노래
종군의 노래2수
소년의 노래2수
월 땅의 여인
풍입송 금 가락을 듣고 양 보궐에게 드리다
사촌 동생 황소의 「남쪽 서재에서 달을 감상하다가 산음의 최 소부가 생각나」에 화답해
부풍주인을 대신해 답하다
무릉의 원 현승과 이별하며 남기다
잠삼 형제와 이별하며 남기다
배씨의 산장에서 유숙하며
역사를 노래하다
잡흥
가을의 흥취
강에서 피리 소리 들으며
구강 입구에서 쓰다
대량으로 가는 도중에 쓰다
소부곡 용담사에서 쓰다
공후인
성 옆의 노래
호가의 노래
사원 남쪽 나루에서
광릉에서 떠돌며
한식날 ㅆ흐다
중앙절에 높이 올라
아침의 노래
종군의 노래
무릉의 전 태수에게 답하다
파지에 쓰다 2수
승방에 쓰다
석경 두드리는 노인
호대를 보내며
곽 사창을 보내며
종군의 노래 7수
변경으로 나가며 2수
연 따는 노래2수
궁전 앞의 노래 2수
봄 궁궐의 노래
서궁의 봄날 원망
서궁의 가을날 원망
장신궁의 가을 노래 5수
푸른 누각의 노래 2수
빨래하는 여인
여인의 원망
감천궁의 노래
사냥을 구경하다
떠도는 이의 「수조자」곡을 듣고
양왕의 정원
위이를 보내며
부용루에서 신점을 보내며 2수
이 평사와 거듭 이별하며
곽팔과 이별하며 남겨주다
신점과 이별하며
시 시어를 보내며
봄날의 원망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Author
왕창령,주기평
왕창령(王昌齡, 698?∼757?)은 당(唐)나라 경조(京兆) 장안[長安, 지금의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사람으로, 자(字)가 소백(少伯)이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15년(727)에 진사(進士)에 급제해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에 제수되었다가, 개원 22년(734)에 박학굉사과(博學宏辭科)에 합격해 사수위(?水尉, 사수는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싱양시(滎陽市) 서북쪽]에 제수되었다. 개원 25년(737)에 죄를 얻어 영남(嶺南)으로 폄적되었다가 사면되어 개원 28년(740)에 장안(長安)으로 돌아왔으며, 이듬해 강녕승[江寧丞, 강녕은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난징시(南京市)]으로 임명되었다. 천보(天寶) 6년(747)에 다시 죄를 얻어 용표위[龍標尉, 용표는 지금의 후난성(湖南省) 화이화 지구(懷化地區)]로 좌천되었으며, 천보 14년(755)에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자 난을 피해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일대에 머물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호주자사(濠州刺史) 여구효(閭丘曉)에게 피살되었다. 왕지환(王之渙), 고적(高適), 잠삼(岑參), 왕유(王維), 이백(李白) 등과 교유했으며 개원(開元)·천보(天寶) 연간에 시로 명성이 높았다. ‘변새(邊塞)’, ‘궁원(宮怨)’, ‘규원(閨怨)’, ‘송별(送別)’을 노래한 작품들의 성취가 매우 높으며, 특히 칠언절구(七言絶句)에 뛰어나 후인들에게 ‘칠절성수(七絶聖手)’라고 불린다. 저서로 『왕창령집(王昌齡集)』 4권이 있다.
왕창령(王昌齡, 698?∼757?)은 당(唐)나라 경조(京兆) 장안[長安, 지금의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사람으로, 자(字)가 소백(少伯)이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15년(727)에 진사(進士)에 급제해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에 제수되었다가, 개원 22년(734)에 박학굉사과(博學宏辭科)에 합격해 사수위(?水尉, 사수는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싱양시(滎陽市) 서북쪽]에 제수되었다. 개원 25년(737)에 죄를 얻어 영남(嶺南)으로 폄적되었다가 사면되어 개원 28년(740)에 장안(長安)으로 돌아왔으며, 이듬해 강녕승[江寧丞, 강녕은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난징시(南京市)]으로 임명되었다. 천보(天寶) 6년(747)에 다시 죄를 얻어 용표위[龍標尉, 용표는 지금의 후난성(湖南省) 화이화 지구(懷化地區)]로 좌천되었으며, 천보 14년(755)에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자 난을 피해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일대에 머물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호주자사(濠州刺史) 여구효(閭丘曉)에게 피살되었다. 왕지환(王之渙), 고적(高適), 잠삼(岑參), 왕유(王維), 이백(李白) 등과 교유했으며 개원(開元)·천보(天寶) 연간에 시로 명성이 높았다. ‘변새(邊塞)’, ‘궁원(宮怨)’, ‘규원(閨怨)’, ‘송별(送別)’을 노래한 작품들의 성취가 매우 높으며, 특히 칠언절구(七言絶句)에 뛰어나 후인들에게 ‘칠절성수(七絶聖手)’라고 불린다. 저서로 『왕창령집(王昌齡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