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폴란드 남부와 우크라이나의 서쪽 지역에 해당하는 동갈리치아의 소도시 브로디에서 태어났다. 브로디는 1918년까지는 오스트리아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와해된 뒤에 폴란드 땅이 되었다가 1939년에 소비에트 연방에 귀속됐다. 어머니 마리아는 주민의 90퍼센트가 유대인으로 구성된 브로디에 근거를 둔 유대계 상인 집안의 딸이었다. 아버지는 결혼 당시 함부르크 회사에서 곡물 거래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출장 중에 정신 분열을 일으켜서 정신병원에 이송된 후 실종된 것으로 전해진다.
로트는 이후 외가의 도움으로 학교 교육을 마친다. 김나지움에서 독일어로 교육을 받고, 갈리치아의 수도 렘베르크 대학에서 한 학기를 마친 후, 1914년 여름 학기에 빈 대학에 등록한다. 빈 대학에서 독문학 공부를 시작한 로트는 교수직을 꿈꾸지만 좌절되고, 가정교사 일과 장학금으로 생활하면서 1916년 첫 단편 〈모범생(Vorzugsschuler)〉을 발표한다.
전쟁 초기,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던 로트는 곧 군에 자원입대 후 참전하고, 1917년부터 전쟁이 끝날 무렵까지 브로디가 속한 리비우 지역에 종군 기자로 파견된다. 1918년 사회주의 잡지인 《앞으로(Vorwarts)》에 ‘붉은 로트(der rote Roth)’라는 이름으로 글을 게재했고, 1929년에는 2년간 뮌헨의 국수주의적 신문에 좋은 보수를 받고 기고함으로써 주변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후 로트는 세계사의 격동기 한가운데에서 언론과 창작을 오가면서 정처 없이 떠도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평생을 여러 지역과 도시, 여러 장소를 전전했고 나이가 들어서도 호텔이나 여관에서 거주했다. 가진 것이라곤 여행 가방 몇 개가 전부였고, 밤낮을 카페와 술집에서 술과 담배로 보냈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마자 베를린을 떠나 파리로 망명길에 나섰는데 1939년 파리의 카페에서 유대인 작가 에른스트 톨러(Ernst Toller, 1893∼1939)가 미국에서 망명 중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쓰러진다. 이후 빈민 구호소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실제로는 복통으로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결국 폐렴으로 죽음을 맞았다.
대표작으로 소설 《거미줄(Das Spinnennetz)》(1923), 《호텔 사보이(Hotel Savoy)》(1923), 《반란(Rebellion)》(1924), 《욥》(1930), 《라데츠키 행진곡(Radetzky Marsch)》(1932), 《타라바스(Tarabas)》(1933), 《어느 살인자의 고백(Beichte eines Morders)》(1936), 《엉터리 저울추(Das falsche Gewicht)》(1937), 《카푸친 황제 묘(Die Kapuzinergruft)》(1938) 등이 있다.
오늘날 폴란드 남부와 우크라이나의 서쪽 지역에 해당하는 동갈리치아의 소도시 브로디에서 태어났다. 브로디는 1918년까지는 오스트리아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와해된 뒤에 폴란드 땅이 되었다가 1939년에 소비에트 연방에 귀속됐다. 어머니 마리아는 주민의 90퍼센트가 유대인으로 구성된 브로디에 근거를 둔 유대계 상인 집안의 딸이었다. 아버지는 결혼 당시 함부르크 회사에서 곡물 거래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출장 중에 정신 분열을 일으켜서 정신병원에 이송된 후 실종된 것으로 전해진다.
로트는 이후 외가의 도움으로 학교 교육을 마친다. 김나지움에서 독일어로 교육을 받고, 갈리치아의 수도 렘베르크 대학에서 한 학기를 마친 후, 1914년 여름 학기에 빈 대학에 등록한다. 빈 대학에서 독문학 공부를 시작한 로트는 교수직을 꿈꾸지만 좌절되고, 가정교사 일과 장학금으로 생활하면서 1916년 첫 단편 〈모범생(Vorzugsschuler)〉을 발표한다.
전쟁 초기,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던 로트는 곧 군에 자원입대 후 참전하고, 1917년부터 전쟁이 끝날 무렵까지 브로디가 속한 리비우 지역에 종군 기자로 파견된다. 1918년 사회주의 잡지인 《앞으로(Vorwarts)》에 ‘붉은 로트(der rote Roth)’라는 이름으로 글을 게재했고, 1929년에는 2년간 뮌헨의 국수주의적 신문에 좋은 보수를 받고 기고함으로써 주변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후 로트는 세계사의 격동기 한가운데에서 언론과 창작을 오가면서 정처 없이 떠도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평생을 여러 지역과 도시, 여러 장소를 전전했고 나이가 들어서도 호텔이나 여관에서 거주했다. 가진 것이라곤 여행 가방 몇 개가 전부였고, 밤낮을 카페와 술집에서 술과 담배로 보냈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마자 베를린을 떠나 파리로 망명길에 나섰는데 1939년 파리의 카페에서 유대인 작가 에른스트 톨러(Ernst Toller, 1893∼1939)가 미국에서 망명 중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쓰러진다. 이후 빈민 구호소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실제로는 복통으로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결국 폐렴으로 죽음을 맞았다.
대표작으로 소설 《거미줄(Das Spinnennetz)》(1923), 《호텔 사보이(Hotel Savoy)》(1923), 《반란(Rebellion)》(1924), 《욥》(1930), 《라데츠키 행진곡(Radetzky Marsch)》(1932), 《타라바스(Tarabas)》(1933), 《어느 살인자의 고백(Beichte eines Morders)》(1936), 《엉터리 저울추(Das falsche Gewicht)》(1937), 《카푸친 황제 묘(Die Kapuzinergruft)》(193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