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읽는다는 것이며 세상을 읽는다는 것은 곧 나를 읽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인간은 항상 마음을 쓰며 살아가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존재이다. 아무리 감추어도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천성이 있게 마련이며 이러한 자신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모습들이 얼굴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인간은 나름대로 상대방의 상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대부분 인상을 보는 것이요, 관상을 본다고 하지는 않는다. 인상이 좋다 할지라도 관상학적으로는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관상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창구요, 과거와 미래의 삶을 읽어내는 척도로서의 실천 철학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관상학의 목적이 단지 길흉화복에 매달려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판단 기준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봄으로써 부족함을 살피고 보완해 가는 학문이라 하겠다. 운명이란 마치 깊은 산 속에서 솟아나 바다로 흘러가는 물줄기와 같은 것이다. 살아가면서 삶의 파란과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그 물줄기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힘에 의해서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바다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이처럼 누구나 타고난 선천적인 운명은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천성이 드러나는 것이 바로 관상이다. 하지만 절반은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 관상은 변하는 것이고 그 영향 또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후천적 환경이 우리의 관상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다. 관상은 마음을 다스리는 학문이다. 한날한시의 사주를 지니고 태어난 쌍둥이 일지라도 다른 환경에 의해 마음을 쓰는 것에 따라 차이가 나는 변화가 관상에 그대로 남음으로써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관상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본인의 관상의 변화를 세밀히 살피고 삶을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마음을 쓰는 자세가 중요하다. 한마디로 관상 위에 심상이 있다는 걸 인식하고 마음을 다스려 인생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관상학의 근본 목적인 것이다.
관상학이란 반복을 거듭하면서 이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중복되어 나타나는 것도 많을 것이다. 무조건 외우는 것보다는 어째서 그런 가를 이해하도록 중점을 두어 설명하고자 한다. 거두절미하고 사주도 풀어가는 순서에 입각하여 살피듯이 관상도 역시 사람을 볼 때 순서가 있다. 즉, 귀→ 이마→ 눈썹→ 눈→ 코→ 인중→ 입→ 턱의 순으로 살펴야 하며, 귀부터 시작한 후 얼굴 전체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보면 된다. 왜냐하면 귀는 좌우로 초년 15세 이전을 담당하며 16세에서 30세 까지가 청년기인 이마, 얼굴의 중앙부가 중년에 해당되고 입과 턱의 아랫부분이 말년에 해당되면서 순차적으로 밑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