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삼경 중 가장 많이 읽는 『논어』,
한국인의 필독서 『논어』 완역본을 소설처럼 쉽게 읽는다!
유가(儒家)의 대표 경전인 공자(孔子)의 『논어(論語)』는 대부분이 대화체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도가(道家)의 대표 경전인 노자의 『도덕경(道德經)』(5,200여 글자로 구성)이 ‘무위자연(無爲自然)’과 같은 사상을 일관되게 주장한 반면 『논어』(1만 5,900여 글자로 구성)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일상을 담아 묶어낸 ‘어록(語錄)’에 가깝다. 즉 제자들이 스승 공자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발췌하고 편집한 담화집이다.
『논어』는 공자의 언행과 습관뿐만 아니라 춘추시대의 생활상, 더 나아가 인간과 삶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냈다. 다른 경전들이 대부분 알맹이만을 가려내어 담아낸 반면 『논어』는 공자의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그대로 수록하고 있으니 담백한 일상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조선왕조 5백여 년 동안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는데, 사서(四書)인 『대학(大學)』·『중용(中庸)』·『논어』·『맹자(孟子)』와 삼경(三經)인 『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은 필독서였으며 과거시험의 필수과목이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논어』는 사서삼경 중 가장 많이 읽는 책이고, 인생에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인문고전이다.
그렇다면 『논어』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논어』의 전반부에는 공자의 핵심사상인 ‘학(學)·정(政)·인(仁)’ 등이 기술되어 있고, 후반부에는 공자와 제자 등 인물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 공자는 엄격한 시각으로 춘추시대 인물들을 파악하고, 제자들의 언행을 예로 들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일깨우고 있어,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자양분이 되어준다. 따라서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에도 그대로 응용한다면 여러모로 유용한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아버지 숙양홀(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둘레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이름을 구(丘: 언 덕 구)라고 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季氏) 가문의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8살 때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 기원전 497년 이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기원전 479년 73살 때 세상을 떠나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언덕)에 묻혔다.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아버지 숙양홀(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둘레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이름을 구(丘: 언 덕 구)라고 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季氏) 가문의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8살 때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 기원전 497년 이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기원전 479년 73살 때 세상을 떠나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언덕)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