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먹는 음식도 영화에만 나오면 특별하다. 별것 아닌 김치찌개, 짜장면, 국수 한 그릇이 영화 속 인물이 먹으면 웃음과 눈물, 질투와 서러움의 음식이 된다. 눈으로 느꼈던 감정이 따뜻한 국물과 함께 목을 타고 넘어가 온몸에 퍼진다. ‘영화의 맛’은 영화 속 인물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영매이다. 아지랑이처럼 솟는 얼큰한 냄새, 손끝에 전해지는 따뜻한 그릇의 온기, 살짝 누르는 이에 전달되는 몰캉한 고기의 탄력, 혀끝에 느껴지는 단맛 짠맛 감칠맛. 매일 먹는 음식인데, 영화 속 음식을 먹는 날은 왜 그렇게 다를까? 그건 바로 영화 속 인물이 밥상에 함께 앉아 먹기 때문이다. '영화의 맛'이라는 소스를 잔뜩 쳐서 말이다.
이 책에서는 영화에 나온 ‘그 음식’이 맛있는 이유를 영화적 맥락과 인물의 성격, 요리의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애니메이션 [메밀꽃 필 무렵]을 통해 막국수의 시원한 맛을 알아보고, 굶주림을 덜어주던 조선 시대를 거쳐 일제 강점기와 고도 성장기로 이어지는 메밀의 변신, 구황음식에서 별미의 상징, 웰빙의 일상음식으로 진화하는 메밀 요리를 통해 서민들의 식생활도 살펴본다.
우디 알렌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는 2000년대의 파리에서 1920년대와 19세기 말의 파리로 시간을 거슬러 이동하는 기발한 상상력의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파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와인 시음회를 통해 프랑스 음식과 와인의 매력을 들여다본다. 또한 와인이 등장하는 다양한 영화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충돌, 노스탤지어와 모더니즘의 대비도 섬세하게 살펴본다. 프랑스의 교양과 오만함, 미국의 실용과 뻔뻔함에 대한 신랄하고 재치 있는 묘사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만두 삼국지가 어떤 양상으로 펼쳐지는지도 알아보고,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는 중국 음식이 미국으로 건너가 야근하며 고픈 배나 채우는 배달 음식이 된 사연도 영화 속 인물과 함께 살펴본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해리슨 포드가 먹던 포장마차의 아시안 누들은 30년이 지난 지금 전혀 낯설지 않은 현실 풍경이 되었다. 역사적 사실이나 설명으로는 느낄 수 없는 음식의 맛과 사연을 영화 속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더욱 애틋하고 절실하게 실감할 수 있다.
“영화를 실제로 볼 때보다 ‘얼마나 재미있을까’ 상상할 때 더 재미있고 짜릿한 경우가 있습니다. 영화 속 음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Contents
추천의 글 ([만추]의 김태용 감독 +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프로듀서)
글을 시작하며
1. 지친 마음마저 따뜻하게 위로한다 - [변호인]과 국밥 이야기
2. 짜장면은 정말 중국 음식일까 - [김씨 표류기]와 짜장면
3. 부자들은 뭘 먹고 마실까 - [맨발의 청춘]과 오렌지 주스
4.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설렁탕
5. 화려하지만 고독한 왕의 수라상 - [광해]와 왕의 음식
6. 다시 찾아온 메밀의 전성기 - [메밀꽃 필 무렵]과 막국수 그리고 냉면
7. 남과 북을 하나로 이어 준 음식 - [강철비]의 잔치국수와 [택시운전사]의 갓김치
8. 하정우는 왜 감자를 먹었을까 - [황해]에서 만나는 배고픔의 해결사
9. 인류 최후의 식량, 옥수수 - [인터스텔라]와 미래 식량
10. 중국 요리의 진수를 만나는 즐거움 - [음식남녀]와 중국 음식 변천사
11. 최고의 라멘을 향한 맛있는 여정 - [담포포]와 일본의 음식 문화 이야기
12. 한중일 만두 삼국지 - [올드보이]와 15년 동안 먹은 군만두
13. 마피아 영화 속 이탈리아 요리의 매력 - [대부]의 총과 요리의 하모니
14. 이민자와 하이웨이가 만든 아메리칸 라이프 스타일 -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델리와 다이너
15.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음식 - [바베트의 만찬]과 유럽의 미식 이야기
16. 세계 미식의 꽃, 프랑스 와인과 요리 - [미드나잇 인 파리]와 음식의 교양
17. 잊혀지지 않는 치명적인 달콤함 - [아마데우스]와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18. 체 게바라를 따라가며 맛보는 혁명의 맛 -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 중남미의 음식 문화
19. 칼로리 풍부한 러시아의 뜨거운 음식 - [닥터 지바고]와 카페 푸시킨
20. 중동의 맛있는 유혹 -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케밥 그리고 후무스
글을 마치며
Author
이주익
음식을 좋아한다. 역마살이 꼈다. 영화를 무엇보다 사랑한다. 팔자가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되는 이유로 이십여 년을 미국, 일본, 중국을 오가며 살았다.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만들고 싶었던 <만추>를 제작하며 가슴 뛰게 하고 눈물 흐르게 하는 이야기의 힘을 새삼 느꼈다. 말도, 생김새도, 사는 곳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시너지가 좋았다. <칠검>과 <묵공>은 중국, 일본의 영화인들과, <워리어스 웨이Warrior’s Way>는 미국, 뉴질랜드의 영화인들과 함께 만들었다. 지금은 러시아, 페루, 아르헨티나의 영화인들과 함께 하는 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음식도 여럿이 함께 먹어야 훨씬 더 맛있기는 했다. 새벽 국밥집, 점심 백반집, 비 오는 주말 국수 한 그릇에 영화 속 인물의 울고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LA 다이너의 아침 햄버거, 도쿄 지하식당의 라멘 국물, 아르헨티나의 스테이크를 앞에 두고 영화 속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친구와 나눴다.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며 보고 느끼고 공부했던 이야기를 여기 내놓는다. 오늘도 새벽 국밥집에서 예전 할리우드 영화가 떠올랐다.
음식을 좋아한다. 역마살이 꼈다. 영화를 무엇보다 사랑한다. 팔자가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되는 이유로 이십여 년을 미국, 일본, 중국을 오가며 살았다.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만들고 싶었던 <만추>를 제작하며 가슴 뛰게 하고 눈물 흐르게 하는 이야기의 힘을 새삼 느꼈다. 말도, 생김새도, 사는 곳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시너지가 좋았다. <칠검>과 <묵공>은 중국, 일본의 영화인들과, <워리어스 웨이Warrior’s Way>는 미국, 뉴질랜드의 영화인들과 함께 만들었다. 지금은 러시아, 페루, 아르헨티나의 영화인들과 함께 하는 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음식도 여럿이 함께 먹어야 훨씬 더 맛있기는 했다. 새벽 국밥집, 점심 백반집, 비 오는 주말 국수 한 그릇에 영화 속 인물의 울고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LA 다이너의 아침 햄버거, 도쿄 지하식당의 라멘 국물, 아르헨티나의 스테이크를 앞에 두고 영화 속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친구와 나눴다.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며 보고 느끼고 공부했던 이야기를 여기 내놓는다. 오늘도 새벽 국밥집에서 예전 할리우드 영화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