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수문(班秀文) 부인과의론의안

반슈원 선생, 부인과 질환 113임상례를 해설하다
$59.40
SKU
9788998038854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Fri 05/31 - Thu 06/6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Tue 05/28 - Thu 05/30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23/08/16
Pages/Weight/Size 172*224*17mm
ISBN 9788998038854
Categories 대학교재 > 의약학/간호 계열
Description
임상에서 흔하게 접하는 부인과 질환에 대한 임상례와 친절한 설명이 있다. 반수문 선생의 처방에는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지역의 수입되지 않는 약재가 적다. 처방 구성에서 형이상학적인 부분이 적고, 그 의안에서 얻을 수 있는 임상적인 힌트가 있다. 부인과에서 상용하는 처방인 소요산이나 사물탕에 대해 자세히 배울 수 있다. 금궤요략과 상한방을 부인과에서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Contents
상편 의론

01 포궁胞宮에 대한 논술 _12
02 기경奇經에 대한 논술 _17
03 장부학설臟腑學說과 부인과의 관계에 대한 논설 _23
04 임신맥妊脈에 대해 논함 _31
05 부인과 질환에서 육경변증六經辨證의 운용에 대해 논함 _34
06 간肝 치료의 특징 및 부인과 질환에서의 응용에 대해 논함 _50
07 부인과 질환에 활혈화어법活血化瘀法을 응용하고 얻은 깨달음 _61
08 월경병의 예방치료 _71
09 신腎과 월경병의 치료 _84
10 붕루崩漏의 치법 _95
11 대하병帶下病의 치료 _103
12 신장腎과 대하치료 _110
13 태전병胎前病의 예방치료에 대한 깨달음 _114
14 산후병 치료의 몇 가지 문제 _122
15 《금궤요략金?要略》의 부인과 세 편에 대해 논함 _128
16 부인병에서 《금궤金?》 처방의 운용 _137
17 부인과에서 소요산逍遙散의 임상 응용 _151
18 사물탕四物湯에 대한 논설 _158
19 장경악張景岳의 부인과 학술사상에 대한 초보적인 탐구 _167
20 태교에 대해 시험 삼아 논하다 _174

하편 의안

제1장 월경병 _181
01 월경이 고르지 않은 증 8례 _182
02 월경통 6례 _202
03 무월경經閉 4례 _217
04 경행토뉵經行吐?2례 _226
05 붕루崩漏 5례 _230
06 월경전 증후군(PMS) 1례 _243
07 경행부종經行浮腫 1례 _245
08 경행발열經行發熱 1례 _248
09 경행감모經行感冒 2례 _251
10 경행추축經行抽?1례 _255
11 갱년기증후군 2례 _258
제2장 대하병 _263
12 비허대하脾虛帶下 2례 _264
13 양허대하陽虛帶下 3례 _268
14 습어대하濕瘀帶下 2례 _274
15 습열대하濕熱帶下 4례 _279
16 임신부 대하 1례 _287
제3장 임신, 출산의 병 _291
17 오조惡阻 2례 _292
18 태동불안胎動不安 2례 _296
19 태루胎漏 3례 _299
20 습관성 유산滑胎 2례 _304
21 조산早産 1례 _308
22 임신감모妊娠感冒 1례 _311
23 임신 불면 1례 _313
24 오로부절惡露不?4례 _314
25 산후발열産後發熱 1례 _320
제4장 부인과 잡병 _323
26 난임不孕 7례 _324
27 음부소양증陰痒 2례 _345
28 수술 후 증후군 1례 _348
29 단유양진斷乳痒疹 1례 _351
30 장조臟躁 1례 _353
31 성교출혈性交出血 1례 _357
32 음취陰吹 2례 _359
33 유옹乳癰 2례 _364
Author
반슈원,조수연
1920년 1월 광시{廣西}성 룽안{隆安}현에서 태어났다. 조부 반이룽{班義隆}과 부친 반징찬{班景燦}은 지역 향촌의 유명한 골상과 의사였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반 선생은 수시로 조부를 따라 산을 오르며 약초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약초를 채집하였다. 반 선생이 7세가 되던 해, 그 지역에 역병이 돌아 조부와 부친이 모두 급성 열병으로 사망하였고, 이로 인해 가세가 기울면서 반 선생은 가족과 떨어져 이모 집에서 살게 되었다. 반 선생의 조부는 손자 반슈원이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는데, 반 선생은 이러한 조부의 유언을 마음에 새기며 소를 키우면서도 근학각고{勤學刻苦}, 학의제세{學醫濟世}의 마음가짐으로 공부하였다.
반 선생은 1937년 광시성이 설립한 난닝{南寧} 의학연구소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국비장학생이 되었고, 1940년 가을 난닝의학연구소를 졸업한 후, 링윈현{?雲縣}에 배치되어 둥허{東和}의무소에서 소장과 의사를 겸직하며 3개 향진{鄕鎭}의 방역과 치료업무를 담당하였다. 1941년 여름, 반 선생은 당국이 인민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민중의 건강에 관해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여 의무소 소장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1946년 궈더현{果德縣}에 개인 진료소를 차리게 되었다. 이후 반 선생은 궈더현 의무소를 설립하고, 현{縣} 중등학교 의무실과 현{縣} 위생원에 재직하면서 지역사회를 위해 열심히 활동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반 선생은 지역에서 높은 의료기술과 환자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태도를 가진 명망 있는 의사가 되었고, 25세에 현{縣} 중의사조합 이사장이 되었다.
중국 해방 이후, 반 선생은 1951년 추천을 통해 광시성 제6의사학교와 중난항학반{中南抗?班}에서 수학하며 서의 지식을 배웠다. 1952년에는 광시민족위생공작에 배속되어 의사로 재직하였으며, 1955년부터 광시성 바이써시{百色市} 인민병원에서 근무하며 중의과 설립을 책임졌다. 1957년에는 광시성 난닝{南寧}중의학교(현 광시중의학원)로 옮겨서 중의교육과 의료 업무에 종사했다.
반 선생은 젊은 시절 의료활동을 하며 노동이 많은 장족 부녀자들의 고단하고 어려운 생활상과 경{經}, 대{帶}, 태{胎}, 산{産}과 관련된 질병을 앓으며 고통받는 현장을 생생히 목격하고 부녀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반 선생은 수십 년간 부인과 질병을 연구하고 치료하며 경험을 쌓아서 저명한 부인과 명의가 되었으며 전통의학 발전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제1기 국의대사에 선정되었다.
학습에 있어서 반 선생은 부지런히 묻고, 부지런히 쓰는 것을 중시하였다. 또한 의사는 허심{虛心}한 태도로 민간의 단방이든, 경험방이든 끊임없이 배워 자신의 이론체계를 형성해야 하며, 경험을 기록하고 연구하여 규칙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반 선생은 1985년부터 연구생 교육을 진행하여 30여 명의 석사를 배양하였고 이들 학생들 중 상당수는 장의약{狀醫藥} 발전을 이끌어나가는 인재가 되었다. 반 선생은 일생 동안 의료, 중의사업, 후학교육, 학술연구 등 전통의학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2014년 4월 14일 병환으로 난닝에서 향년 95세 나이로 타계하였다.
학술저서로는 《班秀文婦科醫論醫案選》·《壯族醫藥》·《婦科奇難病論治》·《壯鄕醫話》·《班秀文臨床經驗輯要》 등이 있고, 강의강고로는 《中醫基本理論》·《婦科講義》·《婦科發展史講義》 등이 있다.
1920년 1월 광시{廣西}성 룽안{隆安}현에서 태어났다. 조부 반이룽{班義隆}과 부친 반징찬{班景燦}은 지역 향촌의 유명한 골상과 의사였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반 선생은 수시로 조부를 따라 산을 오르며 약초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약초를 채집하였다. 반 선생이 7세가 되던 해, 그 지역에 역병이 돌아 조부와 부친이 모두 급성 열병으로 사망하였고, 이로 인해 가세가 기울면서 반 선생은 가족과 떨어져 이모 집에서 살게 되었다. 반 선생의 조부는 손자 반슈원이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는데, 반 선생은 이러한 조부의 유언을 마음에 새기며 소를 키우면서도 근학각고{勤學刻苦}, 학의제세{學醫濟世}의 마음가짐으로 공부하였다.
반 선생은 1937년 광시성이 설립한 난닝{南寧} 의학연구소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국비장학생이 되었고, 1940년 가을 난닝의학연구소를 졸업한 후, 링윈현{?雲縣}에 배치되어 둥허{東和}의무소에서 소장과 의사를 겸직하며 3개 향진{鄕鎭}의 방역과 치료업무를 담당하였다. 1941년 여름, 반 선생은 당국이 인민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민중의 건강에 관해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여 의무소 소장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1946년 궈더현{果德縣}에 개인 진료소를 차리게 되었다. 이후 반 선생은 궈더현 의무소를 설립하고, 현{縣} 중등학교 의무실과 현{縣} 위생원에 재직하면서 지역사회를 위해 열심히 활동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반 선생은 지역에서 높은 의료기술과 환자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태도를 가진 명망 있는 의사가 되었고, 25세에 현{縣} 중의사조합 이사장이 되었다.
중국 해방 이후, 반 선생은 1951년 추천을 통해 광시성 제6의사학교와 중난항학반{中南抗?班}에서 수학하며 서의 지식을 배웠다. 1952년에는 광시민족위생공작에 배속되어 의사로 재직하였으며, 1955년부터 광시성 바이써시{百色市} 인민병원에서 근무하며 중의과 설립을 책임졌다. 1957년에는 광시성 난닝{南寧}중의학교(현 광시중의학원)로 옮겨서 중의교육과 의료 업무에 종사했다.
반 선생은 젊은 시절 의료활동을 하며 노동이 많은 장족 부녀자들의 고단하고 어려운 생활상과 경{經}, 대{帶}, 태{胎}, 산{産}과 관련된 질병을 앓으며 고통받는 현장을 생생히 목격하고 부녀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반 선생은 수십 년간 부인과 질병을 연구하고 치료하며 경험을 쌓아서 저명한 부인과 명의가 되었으며 전통의학 발전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제1기 국의대사에 선정되었다.
학습에 있어서 반 선생은 부지런히 묻고, 부지런히 쓰는 것을 중시하였다. 또한 의사는 허심{虛心}한 태도로 민간의 단방이든, 경험방이든 끊임없이 배워 자신의 이론체계를 형성해야 하며, 경험을 기록하고 연구하여 규칙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반 선생은 1985년부터 연구생 교육을 진행하여 30여 명의 석사를 배양하였고 이들 학생들 중 상당수는 장의약{狀醫藥} 발전을 이끌어나가는 인재가 되었다. 반 선생은 일생 동안 의료, 중의사업, 후학교육, 학술연구 등 전통의학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2014년 4월 14일 병환으로 난닝에서 향년 95세 나이로 타계하였다.
학술저서로는 《班秀文婦科醫論醫案選》·《壯族醫藥》·《婦科奇難病論治》·《壯鄕醫話》·《班秀文臨床經驗輯要》 등이 있고, 강의강고로는 《中醫基本理論》·《婦科講義》·《婦科發展史講義》 등이 있다.